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 작업에 마침표를 찍은 가운데 일각에서는 업황이 어려운 시기에 무리한 인수합병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더팩트 DB |
인수 후 재무구조 악화 가능성 커져…'무리한 인수합병' 지적도
[더팩트|한예주 기자]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품으면서 국내 항공사 중 최대 규모의 저비용항공사(LCC)가 탄생했다. 양사는 이번 결정이 동종업계 사업자간 최초 결합이라는 점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양사의 기대와 달리 업계 일각에서는 일본 불매운동과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가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 만큼 두 회사의 경영 정상화 과정이 험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부실한 이스타항공의 재무구조로 제주항공의 미래 역시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제주항공은 이사회를 열고 이스타항공을 545억 원에 인수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주식 한 주당 1만963원으로 평가했다. 인수 주식수는 이스타항공 보통주 497만1000주이며 지분비율은 51.17%다.
이에 따라 제주항공은 지난해 12월 18일 양해각서 체결과 동시에 이스타홀딩스에 이행보증금으로 지급한 115억 원을 제외한 차액 약 430억 원을 취득예정일자인 4월 29일에 전액 납입할 예정이다.
인수가액은 당초 매각 예정금액인 약 695억 원보다는 150억 원 가량 낮아졌지만, 다소 시장 기대치보다는 높게 책정됐다는 평가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항공 시장이 전반적으로 악화된 데다 이스타항공의 높은 부채비율을 고려하면 제주항공에도 부담이 가는 액수이기 때문이다.
이스타항공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낮아진 인수가격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스타항공은 지난 2018년 기준 자본잠식률 47.9%로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항공시장에서 퇴출될 우려가 컸다. 항공사업법에 따르면 사업개선 명령 2분의1 이상 자본잠식이 2년 이상 지속되면 정부는 항공운송사업자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확정한 것은 항공업계의 구조조정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제주항공의 최대주주는 애경유화, 애경화학 등을 거느린 AK홀딩스다.
이석주 제주항공 사장은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항공사 간 인수 추진인 만큼 미지의 길이지만 당면한 항공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더 희망찬 미래를 위해 도전을 선택했다"고 인수 배경을 설명했다.
이석주 제주항공 사장(사진)은 사내이메일을 통해 "이스타항공 인수에 대한 직원들의 우려가 크다는 것을 경여진도 알고 있다"며 "국내 항공업계는 조만간 공급재편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제주항공 제공 |
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로 판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2위 항공사 아시아나항공과 몸집이 비슷해지면서 본격적인 경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주항공(14.8%)과 이스타항공(9.5%)의 국내 여객시장 점유율은 24.3%로, 아시아나항공(19.3%)·에어부산(9.2%)·에어서울(0.3%) 등 아시아나 계열(28.7%)과 비슷해진다. 항공기 보유 대수도 68대로 아시아나항공(86대)에 바짝 다가선다.
운항노선은 아시아나항공을 앞선다. 특히 국제선의 경우 제주항공 82개로 아시아나항공의 국제선 74개보다 많은 상황이다. 여기에 이스타항공의 27개 등을 더하면 모두 109개로 늘어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분간은 비용절감, 노선 감축 등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로 '빅3'에 한 발 다가섰다"고 설명했다.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업황 때문에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수 이후 이스타항공에 대한 추가 투자 과정에서 재무구조가 악화될 우려가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스타항공의 경영난이 장기화되면서 인수 이후 투입할 금액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고비용 항공기 리스료, 주기료, 인건비 등의 비용도 부담이다. 2018년 기준 이스타항공이 향후 5년 내 갚아야할 항공기 리스료만 262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제주항공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영업손실 329억 원을 기록했으며, 당기순손실은 341억 원에 달한다. 이대로라면 올해 1분기 적자는 불 보듯 뻔 한 상황이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스타항공은 상당한 규모의 증자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이는 제주항공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며 "제주항공은 올해 1월 말 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 자산 약 1500억 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지만, 1분기 말 기준으로는 현금이 대부분 소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두 기업 간 시너지가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이스타항공 인수는 제주항공 연간 영업이익 전망의 큰 불확실성 요인"이라며 "이스타항공은 2018년 감사보고서 공시 이후 영업손익에 대해 공시한 바 없어 이스타항공 인수 시 연결손익에 미칠 영향을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제주항공과 AK홀딩스가 이스타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자금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면서 "제주항공뿐 아니라 모든 LCC의 존폐여부가 불투명한 시점에서 무리한 인수합병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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