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피해 복구를 위해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부터) /더팩트 DB |
기업 외면하는 정부의 경제 살리기는 '연목구어'
[더팩트 | 서재근 기자] 백화점과 대형 마트는 물론 주요 대기업 사무실마저 곳곳이 문을 닫았고,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끝없는 행렬은 수일째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할퀸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이다.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내에서의 방역 관리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단계로 들어선 것 같다"라며 코로나19 '진압 선언'을 한 지 2주 만에 국내 확진자 수는 30여 명에서 28일 오전 9시 기준 2022명으로 폭증했다. 매일 수백여 명씩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사이 여론은 어느덧 크게 '정부의 무능력'을 탓하는 쪽과 이와 반대되는 쪽으로 갈라지며 빠르게 분열되고 있다.
정부 대응에 대한 평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사이 나라 경제는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나라 경제의 허리를 맡고 있는 제조업계는 단 하루 만에 경제적 손실만 수백억에서 많게는 수조 원에 달하는 피해가 불가피한 '셧다운' 공포와 한 달 가까이 씨름하고 있다. 심지어 항공업계는 임직원들이 급여를 토해내는 것도 모자라 기름값이 모자라 정유사로부터 급유 중단 통보를 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직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 세계적으로 '코리아 포비아'(한국 공포증) 확산세가 뚜렷해지면서 한국인 입국 절차를 강화하는 국가 수도 덩달아 급증, 이날 기준 전 세계 국가 4분의 1이 이상이 한국발 입국을 금지했다.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사업에도 비상이 걸린 셈이다.
국내 기업들이 직면한 위기는 각종 지표의 '숫자'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코로나 쇼크'로 한 달 새 국내 주요 그룹 시총은 50조 원 이상 증발했고, 스탠더드앤푸어스(S&P)와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일제히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대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은행도 27일 "과거 어느 때보다 충격이 클 것"이라며 올해 경제성장률을 2.3%에서 2.1%로 낮췄다.
이스타항공은 코로나19 사태로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대구·경북 지역의 혈액 수급난 해소를 위해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헌혈 봉사를 진행했다. /이스타항공 제공 |
저마다 더는 졸라맬 여유도 없는 허리띠를 부여잡은 처지임에도 기업들이 앞다퉈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피해 복구를 위해 온정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LG, 롯데그룹을 비롯해 제조·유통·금융·IT서비스 등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지원에 나선 기업의 수만 헤아리기도 어렵다.
심지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존폐 위기에 몰린 저비용항공사(LCC) 티웨이항공은 올해 달력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고, 이스타항공은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헌혈 봉사까지 나섰다. 자금 여력이 없어도 어떤 방식으로든 위기 극복에 동참하겠다는 의지가 눈물겹다.
이 같은 자발적 지원 외에도 이미 경제계는 경제 살리기에 보탬이 되라는 정부의 주문에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의지를 보였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80조 원 규모의 신규투자와 4만 명 고용 창출을 공언했고, 올해 차세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13조 원 규모의 신규투자를 추진하며 계획을 더욱 구체화했다.
더욱이 이번 코로나 사태와 관련 300억 원을 긴급지원할 때도 이 부회장은 오늘날 삼성의 성장 배경으로 '국민의 성원'을 꼽으며 사회에 보탬이 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피력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6일 "국민의 성원으로 성장한 삼성은 지금과 같은 때에 마땅히 우리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 해야 한다"며 코로나19 피해 회복을 위한 300억 원 규모 지원금 기부 결정을 내렸다. /더팩트 DB |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도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낙점한 '수소산업' 분야에 오는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7조6000억 원 규모의 신규투자를 약속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올해 전년 수준의 투자와 고용 유지와 더불어 매년 그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골든 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확진자 수가 줄어들며 진정 국면에 접어들더라도 경제계가 입은 피해를 수습할 때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정부의 주문대로 경제를 살리는 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 창출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이 실행으로 옮겨지는 것은 기업이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냉각수가 다 떨어진 자동차가 엔진과열로 멈춰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물이라도 넣어야 마땅하지만, 오늘날 기업을 향한 정부의 시선에서는 물마저도 넣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무리 기업 스스로 '비상경영'으로 태세 전환을 하더라도 각종 규제를 비롯한 외부 환경의 변화를 꾀하려는 정부의 움직임 없이는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법인세 감세와 노동개혁 등 기업 경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적인 규제와 제도 개혁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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