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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소통경영'과 '탈권위 행보'를 이어가며 임직원들의 일하는 방식 부터 그룹의 조직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룹 안팎의 대대적인 체질 개선 작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
'수기결재' 싫어하는 젊은 리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변해야 산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가족 행사 때는 가족 간 위계질서를 철저하게 구분 짓는다. 설령 한 기업의 총수라고 할지라도 예외는 없다."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보수적인 문화'가 선대 때부터 내려 온 범현대가의 문화라고 평가한다. 물론 '정의선 체제' 전환 전까지 얘기다.
국내 완성차 업계 '맏형'이자 우리나라 제조 산업의 중추를 맡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최근 들어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화의 속도가 가파르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현대차그룹 사옥에서는 올해 3월을 기점으로 샐러리맨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넥타이와 와이셔츠가 사라졌고, 매주 월요일마다 각 부서 및 팀별로 '윗선' 보고용으로 여러 차례 첨삭 과정을 거쳐 완성된 보고서도 자취를 감췄다. 청바지에 운동화, 면티를 입은 직원들은 때마다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스마트폰에 기록하고, 팀원 및 상사에게 사내 메신저나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관련 내용을 공유한다.
연말 정기 인사 시즌이 다가오면서 사업 분야를 막론하고 주요 대기업들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젊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인적 쇄신에 나서는 등 자구 노력이 한창이지만, 재계 서열 2위 현대차그룹의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은 유독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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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 10월 양재동 사옥에서 1200여 명의 임직원들과 나눈 '타운홀 미팅'에서도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 제공 |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그룹 차원의 정기 인사를 단행하지 않는다. 지난 4월 경영환경 및 사업전략 변화와 연계한 연중 수시인사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새 인사제도 도입 이후 7개월여 만에 새로운 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사만 30여 명에 달한다. 50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임원 승진의 문턱도 낮아졌고, '상무급' 이상 임원의 수 역시 최근 1년 새 3배 가까이 늘었다.
현대차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 같은 변화가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정 수석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 조직의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에 변화와 혁신 추진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정 수석부회장의 의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10월 양재동 사옥에서 1200여 명의 임직원들과 나눈 '타운홀 미팅'에서도 그는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신속한 의사결정의 전제인 '효율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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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 2월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 자율주행차를 직접 타고 제작한 '셀프 영상'을 통해 과장 및 책임연구원으로 승진한 직원들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현대차그룹 제공 |
"예전부터 수기결제 방식을 싫어했다. 메일을 보낼 때도 단 몇 줄이라도 뜻만 전달되면 된다"라는 당시 정 수석부회장의 발언 역시 현대차의 달라질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단초가 됐다는 평가다.
'자율성', '효율성', '유연성'에 초점을 맞춘 '정의선식(式) 변화'는 현대차그룹 안팎의 크고 작은 행사는 물론 정 수석부회장의 국내외 출장 행보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오후 부산 힐튼호텔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환영 만찬 당시 정 수석부회장은 별도의 경호 및 수행원 없이 부산으로 가는 수서발 고속철도(SRT) 일반석에 몸을 실었다. 그룹 내부에서조차 그의 이동 수단에 관해서 별도의 보고나 공유가 없었다는 게 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의 '탈권위' 행보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됐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2017년 6월 현대차 소형 SUV '코나' 신차발표회에서 청바지에 차명이 새겨진 흰 면티를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이후 지난 2월에는 현대차의 최초 수소전기차 '넥쏘'의 자율주행차를 직접 타고, 올해 과장 및 책임연구원으로 승진한 직원들을 위한 '셀프 영상'을 공개하며 임직원과 소통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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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 2017년 6월 현대차 소형 SUV '코나' 신차발표회 당시 청바지에 차명이 새겨진 흰 면티를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끈 바 있다. /더팩트 DB |
정 수석부회장이 강조한 '소통'의 범위는 신차 마케팅 분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현대기아차는 신차 출시 당시 차량 이름이나 포지션에만 집착한 광고로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전 시장조사를 토대로 한 스토리텔링, '2030세대'와 소통의 일환으로 인기 아이돌을 비롯한 K-POP 콘텐츠 연계 마케팅 등 연일 새로운 시도에 나서며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출시한 현대차의 준대형 세단 '더 뉴 그랜저'의 신차 발표회 때에도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고자 '성공한 40대'를 대변할 인물로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김풍을 낙점한 것 역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미 지난 3월 연중 수시 인사제도를 도입할 때부터 현대차그룹은 외부인사를 수혈하고,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하는 등 인적 쇄신에 시동을 걸었다"라며 "그룹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전면에 나서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공언한 만큼 현대차그룹의 변화 속도는 앞으로 더욱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likehyo85@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