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대외 불확실성 속에서도 대규모 투자를 진두지휘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더팩트 DB |
삼성·현대차 수장 '정공법'…"어려울수록 투자 속도 높인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선제 대응의 일환으로 대규모 투자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단순히 사업 현황을 살피는 차원을 넘어 수조 원 규모에 달하는 '통 큰' 투자를 진두지휘하며 위기 속 '정공법'을 선택한 두 그룹 수장의 위기 극복 방식에는 차이가 없다. 미중 무역 분쟁과 일본 수출 규제 등 불확실성이 확산하면서 '전례 없는 위기'라는 흙빛 전망이 경제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지만, 과감한 투자 등 기민한 선제 대응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르면 다음 달 충남 아산시 탕정 사업장에 QD-OLED 양산을 위한 13조 원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기존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라인을 퀀텀닷 올레드(QD-OLED·양자점 유기발광다이오드) 라인으로 전환하는 데 투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투자 소식은 이 부회장의 현장 경영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충남 아산의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을 방문해 폴더블 디스플레이 등 최신 OLED 제품 생산 라인을 살폈다. 특히 이 부회장은 "현재 LCD사업이 어렵다고 해서 대형 디스플레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충남 아산의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을 방문해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제공 |
QD-OLED는 나노 크기의 반도체 결정물질인 '퀀텀닷(Quantum Dot)'의 전기적 특성을 이용해 스스로 빛을 내는 첨단 디스플레이다. 현재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는 'QLED TV'의 경우는 백라이트가 필요한 LCD TV에 퀀텀닷 소재의 컬러필터를 덧댄 방식으로 최근 LG전자와 '8K TV' 기술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LG전자 측이 "LED백라이트와 LCD 패널이 적용,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QD-OLED 라인 전환이 실제로 이뤄질지 여부는 미지수지만, 이 부회장이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한 데다 중국 업체들의 가파른 성장세 등을 고려했을 때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 및 양산화에 방점을 찍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삼성에서도 이 부회장의 디스플레이 사업장 방문 배경과 관련해 "중국 패널업체들의 공격적인 투자로 수익성 악화가 심화하는 시장 상황 속에서 미래 혁신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당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최근 전자 계열뿐만 아니라 비전자 계열사에 이르기까지 사업 부문을 막론하고 현장 경영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 당시 삼성 전 분야에서 대형 투자가 자취를 감춘 것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180도 달라진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왼쪽)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23일 세계 3대 자율주행 전문 회사 앱티브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차그룹 제공 |
정의선 수석부회장 역시 미래 대응 전략으로 정공법을 선택했다.
지난 24일 정 수석부회장은 자율주행 분야에서 2조4000억 원 규모의 '역대급' 투자를 단행했다. 세계 3대 자율주행 전문 회사 앱티브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합작법인(JV) 설립 계약을 체결한 것.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핵심 계열사 3곳이 JV 전체 지분의 절반인 2조3900억 원을 출자했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업체에 단행한 투자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정의선 체제' 전환 이후 현대차그룹의 변화는 재계에서도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진행 중이다. 특히, 정 수석 부회장이 '자동차 제조사'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업체'로 체질 개선을 공언한 이후 현대차그룹은 미국 인텔과 엔비디아, 중국의 바이두, 고성능 레이더 전문 개발 미국 스타트업 메타웨이브, 이스라엘의 라이다 전문 개발 스타트업 옵시스, 미국의 AI 전문 스타트업 퍼셉티브 오토마타, 자율주행기술 전문 업체 오로라, 러시아 최대 IT기업 얀덱스 등 글로벌 유수 업체들과 쉼 없이 협력을 이어가며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정의선 수석 부회장은 '자동차 제조사'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업체'로 체질 개선을 공언한 이후 AI, 자율주행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유수 업체들과 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현대차 제공 |
신흥국의 경제 부진, 미국 정부의 자동차 관세 리스크 요인 등 위험 요소가 산재해 있지만, 미래 기술력을 확보해 산업 전반의 급속한 패러다임 변화 속에 '게임 체인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정 수석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이번 JV 설립 역시 마찬가지다. 정 수석부회장은 '단순히 SW를 공급받을 경우 근본적인 자율주행 솔루션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협업 수준을 넘어 SW 분야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와 JV를 통해 공동 개발하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은 글로벌 현장경영, 파트너십 확대에 비중을 높게 두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며 "삼성의 '초격차', 현대차의 '게임 체인저' 전략 모두 빠르게 변하는 시장 생태계에 선제 대응을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역시 두 사람의 경영 스타일과 맥을 같이 한다. 위기 극복 카드로 정공법을 선택한 이들의 글로벌 현장 경영 속도는 더욱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ikehyo85@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