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취임 1주년을 맞았다. /LG그룹 제공 |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그룹 수장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지 1년이 지났다. 40대 젊은 총수를 향한 재계 안팎의 시선에 기대와 불안이 공존했지만, 과감한 외부 인사 수혈과 사업 구조 재편 등 최근 LG그룹을 둘러싼 변화는 '구광모 체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 재계 4위 LG그룹 사령탑에 오른 구광모 회장의 지난 1년간 행보와 그가 그리는 '뉴LG'의 모습을 '조직과 사업 변화' 중심으로 정리해봤다. <편집자주>
조직 전반에 유연성·창의성 주입 "LG그룹 젊어졌다"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지난해 6월 29일 ㈜LG 이사회를 통해 출발한 구광모호(號)는 초반부터 속도를 내기보단 안정을 택했다. 고(故) 구본무 전 회장의 별세로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잡은 탓에 기존 전문경영진을 그대로 유지하며 업무 파악에만 매진했다. 그는 곧바로 공개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전자·화학·통신 등 주력 사업의 내실을 다지면서 미래 먹거리 발굴 구상에 주력했다.
구광모 회장이 외부로부터 처음 큰 관심을 받은 사건은 상속세 부담에 대한 입장 전달이었다. 구광모 회장은 역대 최대 규모인 상속세 약 7000억 원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납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상속세와 관련된 뒷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 정면돌파를 택한 것이다. 이후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전 회장이 보유했던 ㈜LG 주식 11.3%를 상속받아 최대주주에 올라서며 '뉴LG' 경영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구광모 회장의 진가가 발휘된 순간은 연말 임원인사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구광모 회장은 기존 틀에 박힌 형식을 깨는 임원인사를 단행하며 그룹의 변화를 알렸다. 대표적인 구광모식 인사로는 미국 3M 출신 신학철 부회장을 영입해 LG화학 최고경영자(CEO)를 맡긴 것이 꼽힌다. 이는 LG화학 창립 71년 만에 이뤄진 첫 외부 인사 영입이었다. 필요하다면 '순혈주의'를 깨고 조직에 새로운 시각을 더해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판단이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정도 경영'이라는 고 구본무 전 회장의 경영 철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전통을 깨는 과감한 인사 등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더팩트 DB |
구광모 회장은 지주회사인 ㈜LG에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담당하는 경영전략팀 사장으로 베인&컴퍼니 홍범식 대표를 과감하게 영입하기도 했다. 또 역대 LG 임원 인사 가운데 최대 규모인 134명의 신규 임원을 발탁하면서 미래 사업을 책임질 인재풀을 대폭 확대했다. '새로운 LG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단순한 구호로 남겨두지 않고 실제로 젊은 인재를 등용하면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구광모 회장은 큰 틀에서 형식을 깨는 조직 개편을 시도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 '수평적 소통'을 강조했다. 우선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임직원들에게 자신을 회장이 아닌 대표로 불러 달라고 요청한 것이 대표적인 일화다. 구광모 회장은 연초 시무식에서도 캐주얼 차림으로 참석해 과거 서열에 따라 순차 악수하던 딱딱한 방식을 버리고 자유롭게 인사를 나눴다.
구광모 회장이 직접 자유롭고 유연한 조직 분위기 조성에 나서다 보니 LG그룹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도 조직 문화가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었다. 실제로 구광모 회장 취임 기간 동안 LG그룹과 계열사 조직에는 ▲사원·선임·책임 등 직무 중심 간소화된 직급 체계 ▲완전자유복장 제도 확대 ▲회장의 일방적 메시지 전달이 아닌 자유로운 토론 방식 세미나 등의 변화가 나타났다.
재계 관계자는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소탈할 것으로 유명하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경영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며 조직에 실용주의적 문화를 심고 있는 중"이라며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LG 전반에 불필요한 형식·격식이 사라지고 창의와 자율을 중시하는 수평적이고 역동적인 조직 문화가 확산된 점"이라고 밝혔다.
구광모 회장의 경영 기조 아래 LG 계열사들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LG 대표 계열사인 LG전자는 이달 서초R&D캠퍼스에 소속이나 직급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생각과 지식을 공유하고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살롱 드 서초'를 열었다. 또 앞서 지난 3월에는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서관 33층에 LG전자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경영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통 공간 '다락'을 만들기도 했다. 다락은 직원들이 동아리 활동 공간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고객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경영 활동을 펼쳐달라는 메시지를 조직 내부에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열린 'LG 어워즈'에서 구광모 회장(가운데)이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LG그룹 제공 |
현재 구광모 회장은 '고객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경영 철학을 퍼트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고객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감동을 주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선친의 경영 이념을 더욱 강화하는 차원에서 '고객 DNA'를 조직과 사업 전반에 주입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LG가 나아갈 방향을 수없이 고민해 보았지만, 결국 그 답은 고객에 있었다"며 "LG만의 진정한 고객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 3월 열린 'LG 어워즈'에서도 '고객 가치 창출'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LG가 하는 혁신은 혁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고객 가치를 높이는 일에 철저하게 집중된 것이어야 한다. 과감히 도전하는 시도와 노력들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며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항상 고객 관점에서 접근하라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구광모 회장이 그리는 '뉴LG'는 아직 미완성 단계다. 다소 보수적인 조직 문화로 위축돼 있던 LG를 도전하는 LG로 바꾸는 작업은 단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2년 차에 접어든 구광모 회장이 자율적·창의적 조직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앞으로 더욱 과감한 시도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조직 내 세대교체 폭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구광모 회장은 편법을 쓰지 않고 불필요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통해 조직 내외부적으로 신뢰를 쌓았다. 하지만 분명한 구광모의 색깔을 진하게 드러내지 않고 다소 안정적으로 조직을 운영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는 좀 더 자신의 색을 드러내면서 조직 자체를 젊고 창의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광모 회장이 취임 직후 보여준 인적 쇄신은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