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업계가 환경부의 '유색 페트병 사용금지 방침'에 동참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갈색 페트병 맥주가 시장에서 퇴출될 예정이다. 사진은 잠실에 위치한 한 편의점에 비치된 갈색 페트병 맥주들의 모습. /정소양 기자 |
전체 맥주 판매량 중 약15% 차지...대안은 "글쎄"
[더팩트ㅣ정소양 기자] '가성비'가 높아 대학교 엠티(M.T, Membership Trainning), 캠핑 등에 필수품이었던 갈색 페트병 맥주가 조만간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환경부의 '유색 페트병 사용금지 방침'에 맥주업계가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유예기간, 대책 등 향후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다.
3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국내 맥주기업 임원급 실무자들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국 포장재 재활용 사업공제 조합 회의실에서 환경부 실무자들과 갈색 맥주병 폐기를 내용으로 하는 'PET(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 맥주병 재질·구조 자율적 개선 합의서 서명식'을 가졌다. 이날 서명식에는 하이트진로 장인섭 전무, 오비맥주 장유택 부사장, 롯데칠성음료 주류비지 이원표 상무 등이 참석했다.
국내 빅3 맥주기업이 환경 정책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 시장 판매량 약15%에 달하는 '갈색 페트병 맥주'가 조만간 시장에서 퇴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색(갈색) 페트병의 경우 투병 페트병과 달리 섬유로 재활용할 때 '저급' 원료로 분류되기 때문에 재활용이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그러나 맥주업계는 제품의 품질을 보전하려면 직사광선에 노출되지 않도록 페트병에 갈색을 입힐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왔다. 맥주는 자외선에 취약해 쉽게 변질되고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맥주 기업들이 환경부의 '유색 페트병 사용 금지' 방침에 따른다는 것은 사실상 페트병 폐기 수순을 밟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환경부는 이런 상황을 감안해 당분간 갈색 페트병을 유지하되 맥주 업계와 전문가 연구 용역 등을 거쳐 갈색 페트병의 퇴출 시기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올해 연말까지 정할 방침이다. 환경부는 외부 업체에 연구 용역을 주기로 했으며, 6개월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연구 결과가 나오면 환경부와 맥주업체들이 본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국내 맥주업체와 환경부가 30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국 포장재 재활용 사업공제 조합 회의실에서 갈색 맥주 페트병 폐기를 내용으로 하는 사전 협약을 체결했다. (왼쪽부터) 하이트진로 장인섭 전무, 롯데칠성음료 주류비지 이원표 상무,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최민지 과장, 오비맥주 장유택 부사장,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송재용 이사장 /환경부 제공 |
오비맥주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아직 조율 중인 단계로 정해진 바는 없지만 환경부 정책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며 "본협약 체결 전 대안이 나올지의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만약 적당한 대안이 없다면 폐기 수순을 밟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전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 역시 "아직까지 정해진 것이 없다"며 "기본적인 기조는 환경부 정책에 따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들 모두 아직 정해진 것이 없어 밝힐 입장이 없다면서도 환경 정책에 동참하겠다는 의지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환경 정책에 대한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불편함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 국산 맥주에 대한 이미지가 또다시 실추될까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특히, 가성비와 대용량을 대체할만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암감도 내비쳤다.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등 관계자에 따르면 갈색 페트병 맥주의 판매 비중은 전체 맥주 판매량의 10~20% 사이다. 갈색 페트병은 보통 브랜드별로 가장 큰 용기로, 1L 혹은 1.6L의 맥주가 들어가며, 가볍고 잘 깨지지 않아 소비자들도 선호했다. 특히, 대용량, 가성비 등의 측면에서 소비자들의 꾸준한 선택을 받아왔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 없이 이에 대한 폐기 절차를 밟는다면 소비자들의 불만은 고스란히 기업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맥주업계의 한 관계자는 "갈색 페트병 맥주는 그동안 대학교 엠티나 캠핑 장소 등에서 마시는 상징성을 지닌 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며 "가성비가 좋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도 꾸준히 선택을 받아왔는데 이를 대체할 만한 제품 없이 이를 폐기한다면 불편함을 겪는 것은 소비자들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카스, 참이슬 등의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들이 국산 '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라나고 있는 데, 가성비를 내세운 제품마저 사라지면 국산 맥주에 대한 이미지에 타격이 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