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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별세, 공장 청소부터 시작해 '글로벌 두산' 기틀 마련
입력: 2019.03.04 17:31 / 수정: 2019.03.04 17:31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3일 밤 노환으로 별세했다. /두산 제공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3일 밤 노환으로 별세했다. /두산 제공

6·25전쟁 참전용사…'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

[더팩트ㅣ장병문 기자]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87세다. 가족 외에는 조문과 조화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남겼다. 박 명예회장은 6.25전쟁 참전용사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고, 경청의 리더십, 인재를 중시한 경영인 등으로 기억되고 있다.

박 명예회장은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장남이다. 1960년 한국산업은행에 공채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해 1963년 동양맥주 평사원으로 두산에 발을 들였다. 49세가 된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고인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것이다. 그는 통신병으로 해군 함정을 타고 함경북도 청진 앞바다까지 북진하는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박 명예회장의 이 같은 공적은 뒤늦게 인정을 받아 2014년 5월 6·25전쟁 참전용사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 받았다.

박 명예회장의 첫 사회생활은 두산그룹이 아닌 한국산업은행이다. 그는 1960년 4월 한국산업은행 공채 6기로 입행했다. "남의 밑에 가서 남의 밥을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 것이요, 장차 아랫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다"라는 박두병 초대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96년 8월 두산그룹 창업 100주년 축하 리셉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두산 제공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96년 8월 두산그룹 창업 100주년 축하 리셉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두산 제공

3년 동안 은행 생활을 하고 1963년 4월 동양맥주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했다. 첫 업무는 공장 청소와 맥주병 씻기였다. 이후 선진적인 경영을 잇따라 도입하며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했고 한양식품,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쳐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박 명예회장은 인화를 강조했다. 그는 "인화로 뭉쳐 개개인의 능력을 집약할 때 자기실현의 발판이 마련되고, 여기에서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 '모든 사원이 일생을 걸어도 후회 없는 직장이 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가졌던 고인은 "인재가 두산의 미래를 만드는 힘이다"라고 항상 강조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선친에게 "늘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라 "내가 먼저 양보하면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또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수분가화(守分家和, 자신의 분수를 지켜야 가정이 화목하다)'를가훈으로 삼았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2010년 10월 열린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 사진전을 둘러보고 있다. /두산 제공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2010년 10월 열린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 사진전을 둘러보고 있다. /두산 제공

고인은 경청의 리더십 보여준 '침묵의 거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었지만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뒤 자신의 뜻을 짧고 간결하게 전했다. 사업적 결단의 순간 때도 그는 실무진의 의견을 먼저 경청했고 다 듣고 나서야 입을 열어 방향을 정했다. 상대방을 신뢰하고 오래도록 지켜보는 '믿음의 경영'을 실천했다.

박 명예회장은 늘 새로운 시도와 부단한 혁신으로 '글로벌 두산'의 기틀을 마련했다. 동양맥주에 재직중이던 1964년에는 당시 국내 기업에서는 생소하던 조사과라는 참모 조직을 신설해 회사 전반에 걸친 전략 수립, 예산 편성, 조사 업무 등을 수행하며 현대적 경영체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두산그룹 출신 한 원로 경영인은 "바꾸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던 분"이라며 "새로운 경영기법이나 제도가 등장하면 남들보다 먼저 해보자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혁신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도 있었다. 창업 100주년을 한 해 앞둔 1995년의 혁신이 대표적이다. 경영위기 타개를 위해 당시 주력이던 식음료 비중을 낮추면서 유사업종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단행, 33개에 이르던 계열사 수를 20개 사로 재편했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68년 6월 한양식품 독산동 공장에서국내에서 첫 생산되는 코카콜라 제품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두산 제공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68년 6월 한양식품 독산동 공장에서국내에서 첫 생산되는 코카콜라 제품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두산 제공

이어 두산의 대표사업이었던 OB맥주 매각을 추진하는 등 획기적인 체질 개선작업을 주도해 나갔다. 이 같은 선제적인 조치에 힘입어 두산은 2000년대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미국 밥캣 등을 인수하면서 소비재 기업을 넘어 산업재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가정에서는 '아내에 대해 평생 각별한 사랑을 쏟은 남자'로 기억되고 있다고 한다. 박 명예회장의 아내 고 이응숙 여사와는 1960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 여사는 박 명예회장에게 있어 인생의 '동반자'이자 '조언자'였다. 하지만, 이 여사는 1996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박 명예회장은 암 투병 중이던 부인의 병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오랜 기간 간병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일찍 떠나 보낸 아내를 한결 같이 그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23년 간의 '사부곡(思婦曲)'을 써내려 왔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1995년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두산 제공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1995년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두산 제공

<아래는 고인 생전 일화와 어록>

◇ 재계에서 모든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과묵한 성품이었던 고인은 생전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죠."

◇ 언젠가 면접 시험장에서 고인은 입사 지원자에게 부친의 직업을 물었다. '목수'라는 답변을 듣고는 '고생하신 분이니 잘해드리세요'라며 등을 두드려줬다. 그 지원자는 합격해 중견 간부로 성장했으며 그때의 기억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 하루는 박 명예회장이 직접 차를 몰고 회사로 출근했다. 운전기사가 아파서 결근을 했던 것이다. 주차장에서 이 모습을 본 직원의 보고에 사무실은 난리가 났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조용히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 운전기사는 선대 때부터 일을 한 사람으로 박 명예회장과도 40여 년을 함께 했다.

◇ 고인은 야구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때 가장 먼저 야구단(OB베어스)을 창단했고, 어린이 회원 모집을 가장 먼저 시작했으며 2군을 제일 먼저 창단했다.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베어스 전지훈련장을 찾아 선수들 손을 일일이 맞잡았으며, 이전 시즌 기록을 줄줄이 외우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2008년 4월 17일 77세 희수연 때 자녀들로부터 등번호 77번이 찍힌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받아 든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을 지었다.

◇ 박 명예회장의 어린 시절 집안이 큰 포목상을 하는 데도 무명옷을 색이 바랠 때까지 입었고 고무신도 닳아서 물이 샐 때까지 신었다. 경성사범학교 부속보통학교 다닐 때는 끼니를 제대로 못 잇는 급우들을 위해 어머니가 챙겨준 도시락을 한 가방씩 들고 등교했다.

◆ 고인 약력

박용곤(朴容昆)1932년 서울 출생. 경동고등학교 졸업, 미국 워싱턴 대 경영대학 졸업(1959), 충남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1982), 연세대학교 명예법학 박사(1995)

jangb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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