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더팩트 DB |
9부 능선 넘은 '정의선 체제' 엘리엇 사태 수습으로 마침표 찍을까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에 오른다. 지난해 9월 그룹 수석부회장에 선임된 지 5개월여 만이다.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체제' 구축이 9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재계 안팎에서는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메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의 공세 속에 '책임 경영' 전면에 나선 정 수석부회장이 보여줄 리더십에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27일 현대차에 따르면 엘리엇은 다음 달로 예정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 양사가 제시한 주당 배당금의 최대 6배에 달하는 7조 원(현대차 보통주 기준 4조5000억 원, 현대모비스 2조5000억 원) 이상을 배당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현대차는 주당 2만1967원, 현대모비스 2만6399원 배당에 해당하는 수치로 현대차의 경우 우선주 배당까지 고려하면 배당금 규모만 약 5.8조 원에 달한다. 지난해 현대차가 1조645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려 353%에 달하는 금액을 배당금으로 내놔야 하는 셈이다. 보통주 배당 총액 4조5000억 원만 놓고 보더라도 보통주 기준 시가 총액의 최대 20%에 달한다.
엘리엇 측의 요구에 현대차는 전날 입장 자료를 통해 "보통주 1주당 2만1967원 배당 요구는 회사의 투자 확대 필요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안건이다"면서 "특히, 배당 총액 4조5000억 원은 지난 5년 동안 회사 배당 총액을 넘어서는 선다"고 반박했다.
현대차는 26일 이사회에서 보통주 1주당 기말배당 3000원을 주주총회 목적 사항으로 상정, 지난해 중간배당 1000원을 포함해 보통주 1주당 4000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
특히,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양사는 이날 이사회를 통해 결정한 배당금 규모에 관해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대차는 주주가치 제고 방안의 일환으로 이사회에서 보통주 1주당 기말배당 3000원을 주주총회 목적 사항으로 상정, 지난해 중간배당 1000원을 포함해 보통주 1주당 4000원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고 주주 환원으로 선순환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정 수석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이번 결정으로 배당 규모만 1조1000여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양측의 견해차가 좀처럼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주주총회 '표 대결'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정 수석부회장이 이미 오는 2030년까지 7조6000억 원을 투자해 연간 50만 대 규모의 친환경차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중장기 투자 로드맵을 제시한 상황에서 엘리엇의 주장은 현대차로서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서는 엘리엇의 요구가 수용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데 무게가 쏠린다.
한 IB투자업계 관계자는 "당기순이익을 넘어서는 배당이 현실화할 경우 대규모 현금유출이 발생, 중장기적으로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며 "가능성은 낮지만 엘리엇의 배당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엘리엇은 배당금으로 단번에 2000억 이상을 손에 쥘 수 있겠지만, 이들이 단기 투자 차익을 챙기고 지분을 모두 팔아버릴 경우 심각한 국부유출 우려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26일 이사회를 통해 향후 3년간 총 1조1000억 원 규모 배당, 3년간 총 1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4600억 원 규모의 기존 보유 자사주 매각, 3년간 총 4조 원 이상의 미래투자 등을 골자로 한 주주가치 극대화 방안도 내놨다. |
일각에서는 엘리엇의 고배당 요구와 관련해 주가하락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나머지 주주 환원 등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엘리엇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공개한 지난해 4월 이후 현재까지 주가하락으로 약 3400억 원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며 "무리한 요구를 감행하는 것 역시 이 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의 국내 의결권 행사 세부기준에 따르면 배당금 지급 수준이 회사의 이익규모, 재무상황 등을 고려해 주주가치를 훼손할 정도로 과소 또는 과다할 경우 반대표를 행사하도록 돼 있다"며 "엘리엇의 주장이 수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배당 요구 외에도 엘리엇이 주장한 사외이사 선임 등의 요구에 대한 시장의 반응 역시 싸늘하다.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각각 3명과 2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제안하고, 정관 변경을 통해 이사회 내 위원회로 보수위원회 신설 및 투명경영위원회를 정관에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엘리엇이 제안한 인사들도 지명도가 있지만, 특정 산업에 경력이 치우쳐 있거나 현대차그룹의 경쟁업체에 근무하고 있어 이들이 사외이사로 활동할 경우 핵심 기술 유출이나 이해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엘리엇이 2~3%에 불과한 양사 지분율로 기업의 중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 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 주주총회는 오는 3월 22일 현대차 양재사옥 대강당에서 개최되며, 현대모비스는 같은 날 서울 강남구에 있는 현대해상화재보험 대강당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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