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규제개혁'을 주장하지만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움직임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금융규제 샌드박스' 도입에 앞서 진행된 설명회의 모습. /지예은 기자 |
대통령이 외치는 규제개혁 혁신성장, 현장 공무원은 '오불관언'
[더팩트ㅣ조연행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은 연일 경제를 살리는 길은 '규제개혁'이라며 장관들을 불러 강조하고, 현장을 누비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기업인들은 '규제' 때문에 일을 못 하겠다고 아우성이다.
대기업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경험이 있는 친구가 있다. 그는 지난해 6월 어쩌다가 민선 7기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으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어쩌다 공무원이 된 '어공'이었다. 하지만 그는 공무원 자리를 반 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내고 돌아왔다.
그가 사표를 던지고 나온 이유는 '늘공'인 부하직원들이 '복지부동'의 전형을 보여주며 "할 테면 해봐라" 하는 식의 업무태도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공무원의 행태에 대해 부하직원과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보고 실제 상황을 직접 들어 보니,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직속 상관한테도 그랬는데, '민간인'한테는 어찌했을까? 하는 참담한 생각이 든다.
문재인 정부가 과감한 규제 개혁을 기반으로 한 혁신성장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많다. 그 중간에는 오직 대한민국의 '주인은 공무원'이라고 생각하는 '늘공'이 있다. 대통령은 5년 임기만 지나가면 그뿐이라는 생각에 만에 하나라도 책임질 만한 일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가죽을 벗겨내는 아픔이 따르는 '개혁'은 더욱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현장에서는 개혁의 '개(改)'자도 찾아볼 수 없다. 만나는 기업인마다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다'는 불만이 크다. 규제개혁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법과 규정에 있는 것만이라도 방해하지 말고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인천의 한 중소업체 대표는 "업무상 관계되는 일이 많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현장에 나오면 아무리 수십억 원, 수백억 원 매출을 올리는 업체 대표들도 '열중쉬어' 자세로 뛰어다닌다. 한 번 찍히면 어떤 일을 당할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라며 "식약처의 경우 규제와 통제를 위해 나오는 경우도 있고, 규제개혁은 차치하고서라도 기업 현장의 애로사항조차 들어줄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서울 한 의약품 개발업체 간부는 "의약품과 기능성 식품의 중간지대를 활용해 많은 수익을 내는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의 기술 발전 속도를 정부 규제가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다른 바이오 업체는 중국 시장 진출 등을 위해 경기도 구리에서 인천 송도국제도시로 회사를 옮기기로 했다. 회사 이전을 앞두고 100명 정도의 직원이 이미 인천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그런데 지자체 공무원들이 공장건물 준공 검사를 내주지 않아 직원들이 인천에서 구리로 출근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만 그런 게 아니고 중앙 부처의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과거 공급자 위주의 정책으로 금융소비자들이 권익을 침해받거나 불편을 느끼는 불합리한 규제나 관행은 무수히 많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똑바로 하자는 '금융 규제개혁'을 아무리 외쳐도, 국회의원이 법안 발의를 해도,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의 공무원들은 여전히 복지부동이다.
금융당국이나 감독당국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혁신' 노력이 있어야 금융 개혁도 성공할 수 있다. /더팩트 DB |
혁신을 꾀하기는커녕 지금 불합리한 제도도 고칠 생각이 없다. 시중금리가 2%대인 시대에 10%의 약관 대출이자를 받아 챙기는 불합리한 보험약관대출 이율이 있어도, 유배당 상품의 이익을 계약자에게 배당하지 않고 재벌 주주가 다 챙겨가도, 이차배당금 적립이율을 속여 회계 부정을 저질러도, 유배당 계약자 몫의 자산을 주주 몫으로 돌려놓아도, 허울뿐인 자문 의사나 손해사정사를 내세워 보험금을 깎거나 지급 거부해도, 이자를 더 준다며 보험금을 예치시키고 소멸시효 운운하며 이자를 주지 않아도, 소비자에게 소송을 마구 제기해도, 근거 없이 손해율이 높다며 차보험료를 올려도 고치겠다고 나서는 공무원은 없다.
여론에 밀려 '겨우' 한다는 일은 공급자들을 끌어모아 TF팀을 만들어 놓고 시간을 끌다가 실효성 없는 '맹탕' 대책 하나 발표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비자 손해사정권 부여' 문제다. 비용을 보험사가 부담한다고 해서 소비자 손해사정사 선임권을 보험사가 빼앗아가도록 만드는 바람에 보험 민원이 대량으로 발생했다. 하지만 결국 금융위는 손해사정이 필요 없는 단독실손보험에만 시범적으로 소비자가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도록 적용해보겠다는 알맹이 없는 대책을 내놓는데 그쳤다.
금융당국은 또한 보험사들이 '직접적인 치료, 자살보험금, 즉시연금'등 약관을 마음대로 해석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대량 소비자 분쟁이 발생해도 대통령에게 약관이 어려워서 그렇다고 허위로 보고해, 대통령이 '어려운 약관을 쉽게 고치라'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으며 금융당국이 책임을 벗어나는 행태도 있었다.
공정을 제1의 기치로 내세우는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소비자단체 보조금을 기존단체끼리만 나눠 가지는 가장 불공정한 행위가 벌어져도, 산하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 대해 건보공단이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개인정보보호법을 어기고 불법 감사를 자행해도, 억울하게 폐업을 당해도, 나몰라라 수수방관이다. 법과 시행령에 있는 사업을 단지 정관에 추가하려 해도 공정위는 공무원 마음대로 '정관변경 불가'하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해서든지 규제개혁으로 기업의 일자리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를 살려 보겠다고, 장관들을 불러 모아 다그치고, 간섭하지 않고 규제하지 않겠다며 과감한 규제 개혁을 약속하고 현장을 찾고 있다. 그런데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때문에 현장은 이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규제개혁을 외치고,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만들어도, 중간의 공무원들이 '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나오면 이번 문재인 정부도 규제개혁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개혁'보다 먼저 풀어야 할 일은 '공무원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