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주요 그룹에 영입된 외부 인재들이 본격적인 경영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은 지난 1일부로 LG화학 대표로 취임한 3M 출신 신학철 부회장. /LG그룹 제공 |
외부 출신 인재들 경영 활동 시작…사업 경쟁력 강화·조직문화 변화 '기대'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세대교체와 함께 국내 주요 그룹 임원인사를 관통한 키워드는 '순혈주의 타파'였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내부 육성뿐만 아니라 과감히 외부 인재를 영입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인사 기조가 한층 강화된 것이다. 특히 순혈주의 문화가 강했던 LG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외부 인재 영입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나선 상황이다. 재계는 해당 기업에 수혈된 '용병'들의 올해 활약에 주목하고 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첫 외부 출신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돼 화제를 모은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이달부터 본격적인 경영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2일 서울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새해 모임'에 참석하며 'LG맨'으로 첫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이후 LG화학 시무식에도 참석해 직원들과 만났다. 혁신 기업 3M의 2인자인 수석부회장까지 지낸 신 부회장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영입한 첫 외부 인재다.
신 부회장의 영입은 LG그룹 특유 보수적인 기업 문화의 변화를 암시했다. 실제로 이후 구 회장은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구광모 체제'를 완성한 상태다. 문제는 성과다. '젊은 총수' 구 회장이 올해 '경영 능력 시험대'에 오른 만큼 구 회장이 영입한 인물들의 활약이 절실한 상황이다. 구 회장이 믿고 영입한 신 부회장이 눈에 띄는 성과를 낸다면, 그는 '구광모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게 재계 판단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중 무역 분쟁 등 대외적 불안 요인으로 인해 석유화학업황이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LG화학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수익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바이오·신소재 등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신 부회장은 투자를 강화하고 있는 신사업 부문에서의 성장을 주도할 인물로 꼽힌다. 물론 LG화학의 본업인 기초소재 부문의 실적을 안정화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독일 BMW 출신 알버트 비어만 사장은 올해부터 현대·기아차 개발을 총괄하는 연구개발본부장으로 일한다. /더팩트 DB |
신 부회장과 함께 '구광모 체제'에 힘을 실을 외부 영입 인재는 홍범식 사장이다. 베인&컴퍼니코리아 대표를 지난 홍 사장은 지주사인 ㈜LG에서 경영전략팀장으로서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짜는 역할을 맡는다. 한국타이어에서 온 김형남 부사장 역시 ㈜LG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인물이다. 김 부사장은 자동차부품을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두 외부 영입 인재 모두 구 회장이 신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LG그룹만큼이나 외부 영입을 통한 순혈주의 타파 기조가 뚜렷했던 그룹은 현대차다. 마찬가지로 경영 능력 시험대에 오른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조직 혁신'을 위해 주요 보직에 용병을 기용하는 과감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정 부회장은 삼성전자 출신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과 언론인 출신 공영운 홍보실장을 승진시키며 전진 배치했다. 특히 올해 활약이 기대되는 인물은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사장이다.
BMW 출신인 비어만 사장은 외국인 임원으로 처음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이를 놓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실력'을 최우선시하는 대표적인 인사였다는 게 현대차 내부 평가다. 비어만 사장의 역할은 '자율주행 시스템 강화' 등 실적 부진에 빠진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신사업 영역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최근 비어만 사장은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기술인 실시간 감정반응 차량제어 시스템을 'CES'에서 세계 최초 공개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재계는 LG그룹과 현대차그룹이 용병을 적극 투입한 건 사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회사 전반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외부에서 경쟁자(메기)가 등장함으로써 내부 경쟁자(미꾸라지)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메기 효과'를 기대했다는 의견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실에 안주하는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외부 인재를 영입하는 전략은 이전에도 활용돼왔다"며 "단지 실행력의 문제였다. 이번에 새롭게 LG·현대차의 얼굴로 올라선 젊은 총수들이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이를 과감하게 실행해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