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마련된 '소비자 분쟁 조정 기능'을 악용하는 일부 소비자들에 따른 피해가 늘면서 항공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더팩트 DB |
항공업계 "소비자 분쟁 조정 기능, '블랙 컨슈머' 구분 장치 갖춰야"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최근 국적 항공사를 이용한 승객 A 씨는 실수로 들고 있던 커피를 아이에게 쏟았다. 기내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A 씨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돌연 "승무원이 (아이에게) 커피를 쏟았다"며 항공사에 보상을 요구했다. 거짓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A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소송을 언급하며 항공사를 압박했다.
2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최근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마련된 '소비자 분쟁 조정 기능'을 악용하는 일부 소비자들에 따른 피해가 늘면서 항공사마다 이른바 막무가내 '떼법'에 대한 대응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7 항공교통서비스 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되는 피해구제 현황은 지난해 주춤하긴 했지만, 매년 30% 이상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급증하는 소비자 피해구제 신청 가운데 실제 피해를 입은 것보다 더 많은 보상 금액을 요구하거나, 정해진 법률과 기준에서 벗어나 막무가내로 무리한 보상을 요구하는 '블랙 컨슈머'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데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해 접수된 소비자 분쟁 조정 접수 건수는 모두 23건이다. 이 가운데 과반인 12건은 환불 위약금 또는 환불 서비스 수수료를 면제해달라는 요청이고, 8건은 정비에 따른 지연에 대해 보상해달라는 요구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권 구매 시 운임 규정에 따른 안내가 이뤄졌음에도 개인적인 사정을 내세우며 막무가내로 위약금이나 수수료를 면제해달라는 요구가 대부분이다"며 "특히 특가 운임의 경우 이미 일정 부분 소비자 편익을 위한 것임에도 특가 항공권에도 수수료를 면제해 달라는 요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항공업계 안팎에서는 소비자 피해 접수 건수로만 분석하는 소비자 분쟁 관련 조사 결과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
정비 지연에 따른 보상도 마찬가지다. 항공 관련법에 따르면 정비로 운항이 지연된 경우 항공사가 합리적 조치를 다 했다고 증명할 수 있는 경우에는 책임을 면하도록 하고 있다. 항공사들의 다자간 조약인 몬트리올 협약에 따르면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조치를 다 하거나, 합리적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항공운송사업자의 면책 범위를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법 역시 몬트리올 협약을 준용하고 있다. 상법 제907조 1항에 따르면 항공운송사업자가 손해 방지를 위한 합리적 조치를 다 했거나, 그 조치가 불가능했다는 것을 증명할 때 책임을 면한다. 항공사업법 12조 1항에도 안전운항을 위한 정비로써 예견하지 못한 정비에 대해서는 면책이 적용된다고 명기한다.
또 다른 항공업계 관계자는 "초법적인 요구를 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소비자 피해 접수 건수로만 분석하는 조사 결과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소비자의 권리에 관해 정확히 알리고, 이에 더해 그 권리의 한계까지 알려야 소비자의 권익이 전반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소비자 분쟁 해결기준 고시 등을 개선해 다양한 방식을 통해 항공사 고객들의 권익 증진에 나서고 있고, 항공사들도 이에 맞춰 항공사 귀책으로 탑승이 거절된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보상금을 증액하는 등 적극적으로 승객들의 권리 향상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며 "그런데도 소비자 피해구제 접수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소비자 분쟁 조정 기능이 일부 블랙 컨슈머들의 요구 창구로 악용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