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부터)이 그룹의 주요 경영 거점인 글로벌 시장에서 미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분주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 DB |
삼성·현대차·SK '새 먹거리' 전략적 요충지 글로벌 시장 정조준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삼성,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SK그룹의 총수가 그룹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의 전략적 요충지로 글로벌 주요 시장을 낙점하고, 체질 개선을 위한 담금질에 나서고 있다. 4차 산업 혁명을 앞두고 기업 간 경쟁이 국경을 넘어 치열해지는 만큼 그룹별로 총수들이 선봉에 나서 신수종 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로 한발 앞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 '특별수행' 마친 이재용 부회장, '4대 미래 먹거리' 집중 케어
2박 3일 동안 평양에서 치러진 남북 정상회담 일정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시계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간다.
이재용 부회장이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낙점한 분야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중심의 자동차용 전자장비, 5세대(5G) 통신과 바이오 분야다. 삼성이 총수 일가의 사상 첫 방북 일정을 공언하기 전까지도 이 부회장은 국내외 주요 무대에서 관련 사업 추진 현황 등을 점검하며 쉼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 10일에는 삼성전자의 선행 기술 연구개발(R&D)을 주관하는 종합기술원을 방문해 '4대 미래 먹거리' 사업 관련 연구 진행 현황 등을 점검하며 차세대 기술 역량 강화로 4차 산업 혁명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 2월 집행유예 석방 후 홍콩과 일본, 유럽과 북미 등 글로벌 주요 시장을 잇달아 방문한 이 부회장의 '동선' 역시 미래 사업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출장길에 오른 이 부회장은 프랑스의 AI 관련 중요 인사는 물론, 중국의 BYD와 화웨이, 샤오미, 일본의 NTT도코모, KDDI 등 글로벌 파트너와 스킨십에 나섰다.
이재용 부회장은 AI와 반도체 중심의 자동차 전장, 5G 통신과 바이오 분야를 '4대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국내외 주요 무대에서 관련 사업 추진 현황 등을 점검하며 쉼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특히, 이 부회장의 신성장동력 발굴 전략은 단순히 해외 시장 점검을 넘어 글로벌 인재영입과 스타트업 투자 목적의 전용 펀드 조성, AI 연구센터 설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방위에 걸쳐 진행 중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AI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 영국 케임브리지, 캐나다 토론토, 러시아 모스크바 등 글로벌 주요 거점에 'AI 연구센터'를 잇달아 세우고 오는 2020년까지 1000여 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지난 6월 삼성전자는 AI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넥스트 Q 펀드'를 조성하고, 같은 달 AI 분야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세바스찬 승 교수와 펜실베니아대학교의 다니엘 리 교수를 전격 영입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AI·5G·바이오·반도체 등 '4대 미래 성장사업'을 골자로 한 이 부회장의 미래 사업 전략은 지난달 삼성이 공표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통해 이미 가이드라인이 정해졌다"며 "최근 이 부회장이 4차 산업 혁명을 앞두고 '기술 초격자'를 화두로 던졌던 만큼 새 먹거리를 찾기 위한 삼성의 공격적인 투자는 더욱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은 최근 인도에서 열린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 기조 연설을 통해 "현대차는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업체로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더팩트 DB |
◆ '완성차 제조사→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업체' 정의선표 '체질 개선' 초읽기
국내 주요 그룹 가운데 가장 뚜렷하게 미래 비전을 제시한 곳은 현대차그룹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은 최근 인도에서 열린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 현대차를 기존 '완성차 제조사'가 아닌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업체로 탈바꿈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의선 부회장이 집중 육성을 계획하는 분야는 '차량전동화'와 '스마트카(자율주행·커넥티드카)','로봇·AI', '미래 에너지', '스타트업 육성' 등 크게 5가지로 압축된다. 정 부회장이 주도하는 변화의 속도 역시 빠르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관련 분야를 선도하는 주요 업체들과 파트너십은 재계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현대차가 올 들어 AI, 신재생에너지, ICT 등 '미래혁신 기술' 관련 업체와 맺은 전략적 투자 건수는 독일 폭스바겐그룹의 아우디와 맺은 수소전기차 관련 연료전지 기술 파트너십을 비롯해 미국의 '사운드하운드'와 음악정보 검색 및 음성인식 서비스, 중국 '바이두'와 커넥티드 카 서비스, '딥글린트'와 AI 기술 개발, 핀란드 '바르질라'와 에너지저장장치(ESS) 개발, 스위스 홀로그램 전문 기업 '웨이레이'와 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 개발 등 10건을 훌쩍 넘는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글로벌 주요 업체를 상대로 신규 투자에 나선 셈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현대차의 발 빠른 체질 개선이 최근 그룹 총괄수석부회장으로 선임된 정 부회장의 '리더십'과 무관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그룹이 주관하는 국내외 주요 행사는 물론 정부 차원의 경제계 행사에서도 아버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대신해 그룹의 얼굴을 자처하며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보여준 그의 리더십은 독보적이다. 방북도 마다한 채 미국발(發) 관세 폭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 및 의회 고위 인사들과 마주한 것도, 미국과 중국에 이어 현대차의 최대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는 인도에서 그룹 대표자격으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업체로의 전환을 공언한 것 역시 정 부회장이다.
현대차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 부회장의 '권한'이 확대된 배경과 관련해 현대차그룹 측은 '그룹의 미래 경쟁력 강화와 더불어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그룹 차원의 역량 강화의 일환'이라는 설명을 내놨지만, 이미 정 부회장이 국내외 주요 무대에서 보여준 행보를 고려하면 현대차 그룹의 변화는 새 수석부회장의 주도로 발 빠르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으로 꼽히는 마산그룹 지분 인수 계약을 체결하며, 연초부터 추진해 온 동남아 교두보 확보 전략 추진에 청신호를 켰다. /더팩트 DB |
◆ 최태원 SK 회장, '신성장동력' 발굴 새 요충지 '동남아' 낙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신(新)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동남아지역을 낙점하고 대규모 인수합병(M&A)에 시동을 걸었다.
SK그룹은 최근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으로 꼽히는 마산그룹의 지분 9.5%를 5300억 원에 사들이는 계약을 체결했다. 연초부터 최 회장이 추진해 온 동남아 교두보 확보 전략의 가시적 성과라는 게 그룹 측의 설명이다.
이항수 SK그룹 PR팀장(전무) 역시 마산그룹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성사된 배경에 대해 "최태원 회장이 올 초 신년사에서 강조한 것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 기반 확보를 위한 그룹차원의 교두보 구축에 그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SK그룹은 이번 투자를 계기로 베트남 현지 국영기업 민영화나 전략적 대형 M&A 등을 공동으로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영역을 확대하고,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최 회장의 행보는 올해 초부터 속도를 더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최대 마켓으로 꼽히는 중국 시장을 정조준한 그의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아시아의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중국의 '보아오 포럼'에 이어 5월 '베이징 포럼', 6월 '제1회 한·중 고위 기업인 대화' 등에 빠짐없이 참석, 러우친젠 장쑤성 당위원회 서기와 다이허우량 시노펙 사장 등 중국의 고위급 정치인 및 경제 인사들과 소통하며 SK가 추진하는 현지 사업 전략의 비전을 공유했다.
이 같은 그의 노력에 힘입어 SK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배터리 사업의 중국 합작 파트너인 중국 베이징자동차, 베이징전공과 합작을 통해 장쑤성 창저우시 금탄경제개발구 내 최첨단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을 착공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자동차 제조사와 해외 배터리업체가 합작으로 중대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하는 최초 사례다.
이 외에도 최 회장의 M&A 최대 성과물로 평가받는 SK하이닉스는 최근 신성장 동력 발굴을 목적으로 중국 법인을 통해 현지 투자 회사에 540억 원 출자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오는 2022년까지 약 3억 달러(약 3372억 원)를 투자해 현지에 종합병원을 설립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중국 현지에서 바이오와 헬스케어 등 신수종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