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의 BMW 520d의 전면부 보닛을 개방한 모습. A씨는 BMW의 리콜 프로그램을 모두 마친 상황이다. /이한림 기자 |
BMW 차주 "K5타고 고향 간다"…리콜 진행률은 28%에 그쳐
[더팩트 | 이한림 기자]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 날인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커피숍에서 BMW 차주 2명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이번 추석 연휴 때 자가 차량을 이용해 귀성길에 오른다.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쁘지만 각 자의 이유로 불안함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BMW 차주 2명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리콜 대상인 BMW '520d'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한 명은 BMW의 리콜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애마'를 돌려받았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은 현재 기아자동차의 세단 'K5'를 몰고 있다. 아직 리콜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차주 "리콜 마쳐도 불안…K5 타고 고향간다"
먼저 A씨(41)는 지난 2016년에 2015년식 BMW 520d를 구매했다. A씨가 보유한 BMW 520d는 이번 BMW의 리콜 대상 차량 10만 여대 중 가장 많은 비중인 33%(3만5155대)를 차지한 모델이다. BMW가 실시한 긴급안전점검을 받았으며 지난달 20일부터 진행된 리콜까지 모두 완료했다.
그러나 A씨는 "리콜을 다 마쳤어도 불안하다"고 운을 뗐다. A씨의 520d는 EGR 모듈이 교체되고 서비스센터로부터 "이상이 없으니 안심하라"는 말도 들었다.
실제로 A씨는 리콜을 받은 후에도 여느때처럼 출퇴근 시 차량을 사용했으나 문제가 없었다. BMW 리콜을 받게되면 차량 내 소프트웨어 관련 프로그램도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설정해놓은 코딩이 리셋(운전자 편의에 맞게 사이드미러나 시트 등의 위치를 조정 후 고정해 놓은 설정이 초기화된 상황)돼 재설정해야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주행 중 기능적인 문제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A씨는 4살 아이를 둔 결혼 5년차 가장이다. 추석 때 서울에서 고향(경남 사천시)까지 가족들을 데리고 자차를 운전해야 한다. 장거리 주행을 앞두고 BMW는 여전히 '골칫거리'라는 입장이다.
A씨는 "직업 특성 상 출장이 잦아 장거리 운행을 자주 한다. 그러나 올해 7월부터 출장 때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며 "혹시 내차도 불이 날까 스스로 불안한 점도 있었지만 고속도로와 휴게소 등에서 느꼈던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정부의 운행정지명령도 부담이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국토부는 지난달 8일 긴급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BMW 리콜 대상 차량에 대해 지자체 승인을 통한 운행정지명령을 조치했다. 그러나 도로 위를 주행하는 다른 차주들은 A씨가 운전하고 있는 520d가 안전진단을 받은 차량인 지 알 턱이 없었다.
A씨는 "'안전점검 완료된 차량입니다'이라는 스티커를 만들어 마치 '초보 운전' 스티커처럼 뒤쪽 창문에 붙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이번 추석 때 오랜만에 다시 고속도로를 타지만 '리콜 완료된 차량입니다'는 스티커를 붙이고 갈 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A씨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BMW 차주 B씨(29)는 "K5 타고 고향 간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개인 사업을 하는 B씨는 2014년식 BMW 520d의 차주다. 그러나 B씨는 현재 K5를 끌고 있다.
올해 B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위시리스트(구매하고 싶은 목록)' 중 하나였던 BMW 520d를 중고로 구입했다. B씨가 520d를 구매했던 시기인 올해 3월은 지난해 국토교통부 인증 '올해의 안전한 차 1위'에 오른 탓에 중고차 가격이 상승했을 때이다. 당시 B씨가 지불했던 가격은 4000만 원 초반 대. 다만 중고차거래업체 SK엔카의 중고차 시세(이달 22일 기준)에 따르면 520d의 가격은 연식과 주행거리에 따라 상이하지만 최대 3500만 원에서 최저 1700만 원 선에 형성되고 있다.
B씨의 씁쓸함은 이 뿐만이 아니다. B씨는 지난달 10일경 안전진단을 받기 위해 서울의 한 BMW 서비스센터를 방문했고 렌트카를 지급받기를 요청했다. 업무 상 차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B씨는 당장 운전할 차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B씨는 "K5가 안 좋은 차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다만 수입차를 입고했는데 국산차가 렌트카로 지급되니 좀 당황스러웠다"며 "이번 추석에도 차를 몰아야하는데 내차는 리콜이 완료 시점이 11월이다. 고객센터에 전화해 보면 대기자가 많아 시간이 소요되고 있으며 빠른 시일 내로 완료하겠다고 하는데 시점이 앞당겨지진 않았다"고 토로했다.
BMW가 EGR 모듈 리콜을 시작한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구의 한 BMW 서비스센터에서 BMW 320d, 520d 등 리콜 대상 차량들이 수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동률 기자 |
◆ BMW코리아 "고객 불편 통감…규정 상 문제는 없어"
이에 BMW코리아는 고객 불편을 통감하면서도 렌트카 지급 등에 관련된 규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국내에서 안전진단이나 리콜 등이 발생했을 때 고객 편의를 위해 렌트카를 지급하는 것 자체가 최초라는 설명이다. 리콜 시기가 늦어지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수리 인력을 확충하고 교대 근무량도 늘렸으나 워낙 리콜 물량이 많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21일 BMW코리아에 따르면 이날 기준 리콜 대상 차량 10만여대 중 3만 여대가 리콜이 완료됐고 차주들에게 돌아갔다. 앞서 실시한 긴급안전진단의 경우 99%가 완료됐으며 800~900대 정도 남아있는 상황이다. 해외에 나가있거나 연락이 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리콜 대상 차주들은 BMW의 리콜 솔루션을 받고 있다.
또한 BMW코리아는 긴급안전진단이나 리콜 등과 관련해 차량이 일정 기간 입고돼야할 경우 동급 배기량에 맞는 렌트카를 지급하고 있다. 물론 서비스센터 내 동일 차량이 있는 경우 해당 모델이 지급될 수 있지만 현재 리콜 중이기 때문에 지급될 수 없다. 이에 인근 렌트카업체에서 차량을 공수해 고객에게 지급한다. B씨의 상황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서울의 한 BMW 서비스센터 관계자는 "긴급안전점검 당시 입고 후 수리 기간이 이틀 이상 소요된다고 판단될 경우 요청한 고객들에 한해 렌트카를 지급하지만 렌트카업체에서 보유하고 있는 차량도 상이하기 때문에 K5나 소나타, 그랜저 등 국산차가 나갈 수 있다"며 "점검 기간에 입고된 차량들은 자동적으로 리콜 프로그램으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BMW코리아 관계자는 "서비스센터에 차량이 입고되는 경우 의무적으로 고객에게 렌트카를 지급해야하는 규정은 없다"며 "리콜은 입고가 되면 통상적으로 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게 정상이지만 아직 이상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기간이 좀 더 소요될 수는 있다. 부품 수급 자체에 대한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리콜 대상 차주들에게 재차 연락을 취하고 있지만 리콜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고객들이 직접 센터를 내방해줘야한다. 다만 아직 오지 않은 고객도 많기 때문에 속도가 좀 더딘 것 같다"며 "고객 불편을 통감하며 이번 추석에도 12개 서비스센터에서 비상대기 근무를 한다. 빠른 시일 내로 관련된 문제들을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서울에 있는 한 주차장에 리콜 대상 차량뿐만 아니라 BMW 모든 차량의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이동률 기자 |
◆ '화재부터 리콜까지' BMW 차주들의 속타는 계절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해 6월부터 8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20년 간 '명차'로 불렸던 BMW는 시장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 도로를 질주하던 BMW 차량에서 연달아 불이 나며 올해에만 40건이 넘는 차량 전소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인명 피해는 1건도 없었지만 '내차'가 시꺼멓게 타버린 모습을 보고 견딜 수 있는 차주는 많지 않았다.
올해 7월 26일, BMW 독일 본사와 BMW코리아는 화재 원인에 대해 디젤 모델에 탑재되는 배기가스재순환장치(ERG)의 결함이 원인이라며 BMW 디젤 모델 10만6317대를 전면 리콜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BMW 차량은 이후에도 하루에 한 건 꼴(29·30·31일)로 또다시 불길에 휩싸였다.
8월로 접어들자 BMW를 보유한 차주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BMW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BMW 차량에 대해 사상 초유의 운행정지 명령을 내렸고 일부 아파트 지하주차장, 상가 건물, 사유지 등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BMW를 외면했다. 중고차 시세도 3개월 만에 최대 1000만 원 이상 뚝 떨어졌다.
BMW 차주들은 본의 아닌 '피해자 신세'가 됐다. 일부 BMW 차주들은 BMW에 물질적·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소송도 불사하고 있다.
BMW코리아는 지난달 20일부터 전국 61개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무상 리콜을 진행 중이다. 이달 21일 기준 28%(2만9700여 대)의 리콜 대상 차량에 대한 EGR 부품 교체를 완료했다. 밸브, 파이프 클리닝 작업과 그 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의 점검도 실시한 후 고객에게 차량을 다시 돌려주고 있다.
그러나 화재는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심지어 추석을 하루 앞둔 23일에도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낮 1시경 남해고속도로를 질주하던 520d가 불이 났다. BMW 차주들의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2kuns@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