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6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오토매티카 2018'를 방문해 두산로보틱스 부스에서 독일 로봇시장 딜러업체 대표(오른쪽)와 두산 협동로봇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는 이병서 두산로보틱스 대표. /두산로보틱스 제공 |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최우선 가치도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그룹은 경제적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주요 그룹의 이런 노력은 아직 일반인에게 생소한 편이다. '반도체' 세계 1위 기업 삼성이 다문화 여성을 대상으로 커피 제조 전문가 바리스타 육성 교육을,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나선 현대자동차가 지역 특산물 판매와 유통을, 통신업계의 '맏형' SK가 산림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조림사업을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에 따라 <더팩트>는 국내 주요 그룹의 '이색 계열사'를 살펴보고 왜 이런 기업을 운영하는지에 대한 역사와 배경을 시리즈로 조명한다. <편집자 주>
두산그룹의 신성장 동력사업 '협동로봇'
[더팩트ㅣ수원=장병문 기자] 경기도 수원 산업단지에 두산그룹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계열사가 있다. 협동로봇을 만들고 있는 '두산로보틱스'가 바로 그것이다. 협동로봇(Collaborative robot)은 산업 현장에서 사람을 대신하는 산업용 로봇보다 작지만 좀 더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며 사람과 함께 일을 하는 로봇을 말한다.
두산의 로봇사업은 그룹 업종에서 아주 색다른 분야는 아니다. 두산그룹 대표 계열사인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등에서 건설·제조 현장에서 사용하는 기계 장비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두산로보틱스'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두산그룹 역량이 한 곳에 모아진 현장이라는 점에서 두산그룹 23개 계열사 가운데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두산로보틱스 사업장은 수원3일반 산업단지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공장은 연간 최대 2만 여 대의 협동로봇을 생산할 수 있다. /수원=장병문 기자 |
◆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이끄는 두산그룹 '로봇 新전초 기지'
2015년 협동로봇 시장 진출을 선언한 두산그룹은 지난 2년여 간 연구·개발(R&D)에 몰두해 왔다. 그 결과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4개 모델(M0609, M0617, M1013, M1509) 협동로봇 양산체제를 갖추고 수원3일반 산업단지 사업장에서 신사업 윤곽을 갖췄다.
두산로보틱스 사업장 외관은 직사각형 모양의 일반 산업단지 건물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대표적인 것이 로비에 설치된 대형 화면이다. 여기에 나오는 로봇 영상은 이곳이 어떤 회사인지 쉽게 알려준다.
두산로보틱스의 실내 인테리어나 분위기는 여느 정보기술(IT)기업으로 오해받기 딱 좋다. 자유로운 공간에서 R&D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 복장은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다. 휴식 공간인 카페테리아는 IT기업처럼 아늑하고 깔끔하게 꾸며졌다.
하지만 작업장에 들어서면 이곳이 로봇 생산 공장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만든다. 완성된 협동로봇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테스트를 받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자동화 공장이지만 사람 손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공간에서는 로봇이 할 수 없는 점검을 작업자들이 하고 있었다. 두산로보틱스 관계자는 "이곳에는 근무자 약 100여 명이 있다"며 "계속해서 인력을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왼쪽에서 세번째)과 박지원 부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해 12월 두산로보틱스 공장을 방문해 협동로봇 조립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두산로보틱스 제공 |
협동로봇은 사람 신체와 비교하면 '팔'이라고 할 수 있다. 태블릿PC처럼 생긴 제어장치를 통해 명령을 전달하면 6개 관절을 갖춘 협동로봇이 작업을 수행한다. 협동로봇 마디 끝에 어떤 장비를 부착하느냐에 따라 물건을 옮기거나 용접·조립·분사 등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
두산로보틱스 측이 보여준 영상에는 펜을 부착한 협동로봇이 종이 위에 글자를 반듯하게 써 내려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강약조절을 하지 못하면 종이가 찢어질 수 있다. 종이 표면장력까지 정확하게 감지하는 것을 보면 두산로보틱스 기술력이 어느 정도 인지 잘 알 수 있다.
협동로봇은 사람과 협업하기 때문에 코봇(Cobot : collaborative robot)으로 불린다. 사람을 대신해 작업하는 로봇은 예전부터 산업현장에 있었지만 대부분 독립된 공간에서 홀로 일을 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을 도맡아 했기 때문에 안전 문제도 뒤따랐다.
반면 협동로봇은 작업자가 손쉽게 작동할 수 있고 사람과 함께 업무를 나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작고 가벼운데다 이동도 편리해 제조 라인 배치를 크게 바꾸지 않고도 자동화를 구현할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협동로봇은 전용 작업 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도 사용할 수 있다.
두산그룹이 지난 2015년 협동로봇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2년여간 연구·개발(R&D) 끝에 지난해 양산에 들어갔다. 사진은 두산로보틱스 관계자(왼쪽)가 협동로봇을 시연하고 있는 모습. /수원=장병문 기자 |
두산로보틱스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점은 안전성이다. 두산로보틱스의 협동로봇에는 각 축에 고성능 토크센서가 탑재돼 있다. 이 센서는 섬세한 작업을 가능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물체와 닿을 땐 즉각 반응한다. 두산로보틱스 관계자는 "토크센서가 없으면 모터로 힘을 추정해야 하는데 우리 제품은 센서를 활용해 6개 축에 전해지는 힘을 더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협동로봇은 주변 물체와 미세한 접촉도 감지하고 위험 상황에서는 즉각 멈출 수 있어 작업 안전성을 극대화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러한 기술 차별력 덕분에 두산로보틱스 협동로봇의 충돌감지력은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협동로봇 분야에는 세계 1위 덴마크 기업 유니버셜로봇을 비롯해 쿠카·ABB·덴소·나치·스토블리·산교 등 많은 로봇기업이 뛰어들었다. 두산로보틱스는 후발 주자이지만 성능과 가격에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 4가지 모델로 구성된 두산로보틱스 협동로봇은 6~15kg 가반 중량(로봇이 물건을 들어올릴 수 있는 무게)과 900~1700mm의 작업 반경을 제공해 현장에서 유연하게 업무를 볼 수 있다. 이는 업계 최고 수준 성능이다. 이러한 기술적 특징을 갖추고 있지만 두산로보틱스의 협동로봇 가격은 해외 경쟁 업체의 절반 수준이라는 점에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 박정원 회장 "4차 산업혁명 대비 노력 이젠 가속화할 때"
두산로보틱스가 지난 4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SIMTOS 2018'에 참가해 협동로봇의 작업 시연을 하고 있다. /두산로보틱스 제공 |
미국 벤처 캐피털 기업 루프벤처스에 따르면 오는 2022년 전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 규모는 22조9315억 원이며 연평균 8%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협동로봇은 연평균 약 68%의 초고속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다. 이에 따라 오는 2022년이 되면 협동로봇은 6조5660억 원 규모로 늘어나 미래 로봇산업 성장을 이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전체 산업용 로봇에서 협동로봇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6년 2.1%에서 오는 2022년 28.6%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협동로봇 시장이 가파른 성장이 기대되는 산업인 만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도 글로벌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6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로봇 전시회 '오토매티카 2018'에 직접 참관해 협동로봇 사업을 그룹의 신(新) 성장 동력으로 만들 것을 당부했다. 박 회장은 "두산은 로봇 사업을 포함해 인더스트리(Industry) 4.0과 관련한 여러 과제를 꾸준히 추진해오고 있는데 이제는 그 노력을 가속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각 산업계 최신 기술과 디지털 유행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적극 발굴해 나가자"며 주문했다.
두산로보틱스는 제품 양산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됐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내·외 대기업들이 이 회사 제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로보틱스와 협동로봇 개발 단계부터 협력해 온 현대자동차는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두산로보틱스에 따르면 현대차뿐 아니라 LG전자·LG화학 그리고 독일 자동차 부품 기업 콘티넬탈 등 글로벌 기업들도 두산로보틱스 제품 구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국내 유통망을 늘리고 우수한 성능과 기술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협동로봇 시장의 무한한 잠재력을 확인하고 2015년부터 차근차근 준비한 결과 지난해 정식으로 시장 진출을 선언할 수 있었다"며 "지속적인 R&D와 투자를 통해 협동로봇 시장에서 선도업체 입지를 확보하고 시장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두산로보틱스는 설립 후 지난해까지 매출이 전무한 상태다. 제품 양산이 지난해말부터 시작됐고 그동안 R&D비용이 지속해서 나갔기 때문이다. 영업손실은 2016년 22억 원에서 지난해 95억 원으로 뛰었다.
두산로보틱스는 올해부터 국내·외 유통 채널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반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내년에 연간 1000대 이상, 2022년에는 연간 9000대 이상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연 면적 4451㎡ (약 1346평)규모의 두산로보틱스 공장에선 연간 최대 2만여 대 협동로봇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