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울먹이며 "자식 도리 하고싶다"
[더팩트|서울고등법원=고은결 기자] "저희 그룹을 포함해 많은 기업들이 이미 출연했던 공익재단(K스포츠재단), 그 재단 위에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경영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동빈(63) 롯데그룹 회장이 과거 K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을 출연한 배경에 대해 사회공헌 차원이며,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씨의 존재는 몰랐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검찰은 29일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 강승준) 심리로 열린 신 회장 등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 혐의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신 회장에 징역 14년, 벌금 1000억 원, 추징금 70억 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검찰은 "피고인 신동빈은 회사의 이익과 대의를 저버리고 총수일가의 사익을 우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 엄중한 처벌을 물어 기업의 알짜배기 영업을 총수일가가 일방적으로 빼먹는 범행이 다시 나올 수 없도록 막아야 한다"며 이같이 구형했다.
신 회장은 총수 일가에 508억 원의 부당 급여를 지급하고, 아버지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57) 씨가 운영하던 유원실업 및 신영자(75) 전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권을 몰아줘 회사에 778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근혜(66)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도 받고 있다.
롯데그룹 총수 일가 경영 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29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신 회장은 경영비리 혐의 1심에선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지만 뇌물공여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 및 추징금 70억 원이 선고돼 구속됐다. 검찰 구형은 각각 징역 10년·벌금 1000억 원, 징역 4년·추징금 70억 원이었다. 이날 항소심은 두 혐의 1심 구형이 병합됐다.
구치소 생활로 인해 한층 야윈 모습으로 등장한 신 회장은 피고인 최후진술 순서에서 준비한 입장문을 꺼내 읽었다. 신 회장은 "지난 2월 법정구속된 이래 그동안 제가 살아온 환경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6개월 가까이 지내며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다"면서 "아버지를 보좌해 그룹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빨리 바꾸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2015년 경영권 분쟁이 시작돼 사회적 물의와 비난이 있어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활동을 해서 우리 그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사회공헌 차원에서 공익재단에 출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또 "경영권 분쟁 해결은 그 당시 저와 그룹에게 가장 큰 문제였다. 잠실롯데월드 면세점 특허는 제 입장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권한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 전 대통령과 독대 시에도 경영권 분쟁에 대해 질책할 줄 알고 사죄하러 갔으며 그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면세점 문제를 말씀 들어야 하는 시급한 상황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은 뇌물 혐의가 얽힌 K스포츠 재단 추가 지원에 대해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어 문제가 됐는지, 제가 박 전 대통령과 독대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단도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적극적·명시적 청탁은 없었다며 선처를 간청했다. 변호인은 "대통령 지원 요구에 응했다는 게 전부다. 적극적·명시적 청탁을 한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현장에서 대가 관련 언급을 한 것도 아니다"며 "우리가 그 자리에서 피고인 자리에 있었다면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답답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영비리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행위는 소극적 행위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롯데그룹 총수 일가 경영 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29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이날 재판부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검찰과 다른 피고인의 양해를 구하고 결심공판을 가장 먼저 진행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것으로 알려진 신 명예회장은 재판부의 질문에 대부분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신 명예회장은 자신의 기본 신상부터 현재 있는 장소, 가족들을 알아보느냐 등의 질문에 "기억이 안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신 명예회장은 퇴정 전 "내가 롯데의 대주주인데 횡령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라며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주장했다.
신 회장을 비롯해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였던 서미경 씨도 최후 변론 순서를 통해 참회의 뜻을 밝혔다. 개인비리 사건과 함께 재판을 받은 신영자 이사장은 "법적책임에 대해서는 재판부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긴다"면서 "남은 바람은 아들 딸과 손주들을 좀 더 자주보고 아껴주는 것이며 더 늦기 전 아버지를 뵙고 자식의 도리를 하고싶다"며 흐느꼈다.
서미경 씨는 "20대 초반 폐결핵으로 건강이 나빠졌을 때 치료받게 한 신격호 회장을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신 회장과 인연을 맺었지만 다른 가족들이 있어 그저 지시에 따르며 조심스럽게 지냈다"며 "회장님이 하시는 일이라 그대로 따른 것이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폐가 될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 씨는 이어 "지난 2년 간 재판을 받으며 무지에서 나온 행동임을 깨닫고 반성하고 사죄드린다"고 전했다.
검찰은 이날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해 징역 10년, 신동주 전 부회장에 대해서는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신영자 이사장에게는 징역 10년과 벌금 2200억 원을, 서미경 씨에게는 징역 7년을 구형했다. 함께 기소된 채정병(66) 롯데카드 대표, 황각규(63) 롯데그룹 경영혁신실장(사장), 소진세(67) 롯데그룹 사회공헌위원장(사장), 강현구(57) 롯데홈쇼핑 사장은 각각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 재판부는 오는 10월 5일 오후 2시 30분 롯데 일가의 항소심 선고를 내리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