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에 지급할 공사비를 절반만 지급하고 인사권에도 관여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오른쪽 위는 하청업체 대한기업이 제공한 현대중공업의 인사권 개입 내용. /더팩트 DB, 대한기업 제공 |
현대重 "계약에 따라 공사비 지급하고 인사 개입 없다" 부인
[더팩트ㅣ울산=장병문 기자] "인건비 후려친 돈으로 배를 만들고 있어요."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현장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직원들 입에서 나온 말이다. 현대중공업이 오래전부터 지적 받아온 하청업체 '쥐어짜기'가 그동안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이번엔 하청업체 인사권에도 개입한다는 주장도 나와 충격을 더한다.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에 지급할 공사비를 절반만 지급하고 인사권에도 관여했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행 하도급법은 원청업자가 하청업체 인사권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이 부당한 경영간섭으로 실정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대한기업 김도협 사장은 현대중공업이 실제 공사비의 절반만 지급해 3년간 20억 원가량의 빚이 쌓였다며 지난달 청와대에 청원을 넣었다. 그는 최근 청와대 행정관과 면담을 하고 후속 조치를 준비중이다.
김도협(오른쪽) 대한기업 사장이 지난 16일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 공사비 삭감과 인사개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병문 기자 |
김 사장은 지난 16일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현대중공업의 공사비 산정 방식이 기준이 없고 공정하지 않다며 공사 견적서를 공개했다. 견적서를 보면 각 작업마다 물량과 단위, 단가 등이 적혀있는데 물량과 단가를 곱하면 실제 공사비가 나온다. 작업장 물량 '610'에 단가 3만4624원을 적용하면 공사비는 2112만640원이 된다. 하지만 대한기업은 해당 공사를 완료하고 딱 절반인 1056만320원을 받았다.
대한기업은 지난 6월 27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33번의 공사 중 2건을 제외하고 50%의 공사비를 받았다. 나머지 2건에서는 각각 302%, 80%의 공사비를 받았다. 대한기업은 한 건의 공사를 제외하고 적정 공사비보다 적게 받은 것이다.
김 사장은 "공사비를 산출하는데 명확한 기준이 없고 대부분 절반 수준으로 통일하고 있다. 간혹 절반보다 많게 책정하기도 하지만 회사가 적자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공사비를 적게 받아도 불평할 수 없는 게 향후 일감 문제도 있지만 지원금 때문"이라며 "업체마다 평가를 통해 지원금이 나오는데 이 돈을 받기 위해 작업 반장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한기업이 공개한 현대중공업 견적서를 보면 공사비는 실제공사비(물량 X 단가)의 50%만 받은 것으로 나온다. /대한기업 제공 |
지원금이 있다고 하지만 김 사장이 대한기업을 3년간 이끌면서 남은 건 수십억 원의 빚뿐이다. 그는 "주간 스케줄이 나오면 직영 업체 세팅 작업이 시작된다. 이때 보통 공사기간이 1.5일 정도 늘어나는데 이후에 투입되는 우리들이 특근을 해가며 공기를 맞춘다. 짧은 시간에 공사를 마치기 위해 인력을 더 쓰게 되고 결국 인건비가 증가한다. 만약 재검사를 받는다면 계약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게 되고 지원금은 더욱 받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 쥐어짜기 의혹과 더불어 경영까지 간섭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한기업에서 총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 A 씨는 "현대중공업은 협력사 고유 권한인 인사권에도 개입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대중공업은 자질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회사 총무·소장·반장 등의 교체 지시를 수시로 했다. 반복되는 인사권 개입으로 회사가 안정화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A 씨는 그동안 현대중공업이 인사에 개입한 정황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자료를 보면 대한기업 현장 소장 4명, 현장 반장 5명, 총무 2명이 현대중공업 관계자들로부터 채용 금지와 퇴사 압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기업이 작성한 자료를 보면 회사가 선임한 근로자를 현대중공업 관계자(공사과장)가 '캔슬'했다고 적혀있다. /대한기업 제공 |
또 대한기업은 회사 근로자를 모두 해고하고 폐업한 다른 업체 인력으로 대체하라는 부당한 지시를 받기도 했다. 대한기업이 건조3부에서 건조1부로 이관하는 과정에서 B업체 근로자 전체를 고용하라는 현대중공업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이러한 현대중공업 지시를 거절했지만 향후 불이익을 우려해 B업체 인력을 모두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A 씨는 당시 회사 인사권에 개입한 현대중공업 관계자 실명을 모두 기록해 두었다.
김 사장은 "현대중공업이 일당 20만 원으로 책정한 인력을 채용하도록 강요해 왔다. 우리 직원 평균 일당이 14만~15만 원 수준이라 이들을 채용할 경우 내부에서 반발할 수 있다. 공사비를 더 준다는 말에 고용하고 이를 품위서로 올리지만 반려되기 일쑤다. 결국 임금 체불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더팩트>에 "하도급법 제18조에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 경영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정상적인 도급관계에서는 원청업체와 업무의 완성만을 놓고 계약을 맺기 때문에 하청업체 경영과에 개입할 수 없다. 인사 개입도 경영 간섭으로 볼 수 있는데 사안 경중에 따라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실형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도협 대한기업 사장은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 인사권에도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전경. /더팩트 DB |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부당한 공사비 지급이나 인사 개입은 없다고 부인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공사마다 지급하는 공사비가 다를 수 있겠지만 도급계약서상의 지급해야 할 공사비는 모두 지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하청업체 인사권 개입에 대해 "일부 업체 주장일 뿐 그런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