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팩트

  • HOME >NEWS >경제 >기획/현장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인쇄하기
    기사제보
[조연행의 소비자시대] '즉시연금'에서 드러난 생보사 '이중성'
입력: 2018.08.12 05:03 / 수정: 2018.08.12 05:03
삼성생명이 즉시연금보험과 관련한 금융감독원 일괄구제안을 거부한데 이어 한화생명도 즉시연금 분쟁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더팩트 DB
삼성생명이 즉시연금보험과 관련한 금융감독원 일괄구제안을 거부한데 이어 한화생명도 즉시연금 분쟁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더팩트 DB

보험상품은 약관 그 자체…약관 표현 그대로 연금 지급 마땅

[더팩트 | 조연행 칼럼니스트] 생명보험사(이하 생보사)의 이중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태가 또 발생했다. 즉시연금 약관 문제다. 삼성생명은 즉시연금보험 약관을 영업에 유리하게 '두루뭉술' 만들어 놓고 금감원 분쟁조정위에서 소비자 주장대로 연금액을 지급하라고 결정하자 이를 수용했다가 이사회 핑계를 대며 '지급거부'를 발표했다. 약관에 있는 연금액을 받아 가려면 소송해서 받아가라는 게 삼성생명측 주장이다.

한화생명도 지난 9일 즉시연금 관련 분쟁 조정안 자체에 대해 불수용 의견서를 전달했다. 법률 자문 결과 사업비를 보험료에서 공제하는 것에 대해 추가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화생명 측은 납입보험료에서 사업비와 위험보험료를 공제하는 것이 보험의 기본 원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은 약관 자체가 상품이다. 보험 상품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무형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보험상품은 또 내용이 법적· 의학적 용어로 가득 채워져 있고 그 분량만 해도 두툼한 책 한 권에 달한다. 이러다 보니 일반 소비자들은 읽어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생보사들은 경비를 절약한다고 종이 약관은 주지 않고 CD로 된 전자 약관만 제공한다. 문제는 대부분 소비자들은 CD 약관을 열어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생보사는 IMF 이후 고금리 시대에 즉시연금을 팔았다. 즉시연금은 고액의 보험료를 일시에 납입하면 가입자는 납입 다음 달부터 공시이율로 계산한 이자로 연금을 받고 10~15년 후 만기 때에는 세금 없이 낸 돈을 그대로 돌려받는 매력적인 상품이다. 이에 따라 부자들은 이를 절세수단으로 활용했다.

문제는 이 시점 부터다.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즉시연금에 대한 세제혜택을 축소하기로 하자 생보사들은 이를 이용해 오히려 '절판 마케팅'을 실시했다. 생보사들은 이자소득세 비과세 기간과 납입보험료 한도가 줄어드니 빨리 가입하라는 마케팅을 펼친 것이다. 그 결과 하루에 수천억 원 규모의 뭉칫돈이 생보사로 몰려들어 회사별로 수조 원이 쌓였다.

시중금리가 6~7%일 때는 연금액에서 만기에 낸 돈을 돌려주기 위한 적립금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비와 위험보험료를 떼어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금리가 1~2%대 저금리로 떨어지면서 최저보증이율(2.5%)에도 미치지 못하자 비용을 공개해 결국 '쥐꼬리' 연금이 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소비자들이 생보사를 상대로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가입설계서와 안내자료에는 "비과세혜택, 고액연금, 만기 시 기납입보험료 환급"이라는 3가지 핵심사항이 적혀있다. 보험설계사들은 판매할 때 대부분 "낸 돈을 공시이율로 계산해 매월 이자로 연금을 지급하고 만기에는 낸 돈을 그대로 세금 없이 돌려준다"고 설명했다. 약관도 연금액 계산을 "연금계약의 적립액을 기준으로 계산한 연금월액"이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해 놓았다.

연금보험 약관에 따르면 적립액에 공시이율을 곱한 금액을 매달 연금으로 지급한다.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 따르면 매달 지급하는 금액(연금월액)의 기준이 되는 적립액은 납입보험료에서 예정사업비와 위험보험료를 공제한 금액이다. 하지만 향후 만기보험금을 지급할 때는 이때 공제한 예정사업비와 위험보험료를 포함한 납입 보험료 전부를 돌려줘야 한다. 이에 만기보험금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연금월액에서 일부를 떼고 지급한다.

그러나 즉시연금 약관을 누가 읽어봐도 "적립액에 공시이율을 곱한 금액을 연금액"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이해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약관을 잘못 표기한 것이다. 영업을 위해 약관을 의도적으로 과장해 표시한 것이거나 불명확하게 표시한 실수를 범한 것이다.

설령 약관이 잘못 표기됐더라도 약관 자체가 상품인 보험에서 상품을 판매한 자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약관규제법 제3조(약관의 작성 및 설명의무)에 따라 사업자는 약관을 알기 쉽게 작성했어야 했고 이를 중요한 사항으로 설명했어야 했다. 또한 제5조(약관의 해석)에 따라 뜻이 명백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어야 하므로 이 건에서도 당연히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공제하지 않고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

삼성생명이 비과세혜택, 고액연금, 만기 시 기납입보험료 환급 등을 내세우며 판매한 즉시연금 상품이 약관 부실로 보험금 지급을 두고 소비자와 분쟁을 벌이고 있다. /조연행
삼성생명이 비과세혜택, 고액연금, 만기 시 기납입보험료 환급 등을 내세우며 판매한 즉시연금 상품이 '약관 부실'로 보험금 지급을 두고 소비자와 분쟁을 벌이고 있다. /조연행

그래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에서는 ‘공제 없는 연금지급’을 결정했고 삼성생명도 이를 수락했다. 약관도 '연금계약의 연금재원을 기준으로 만기보험금 지급을 위한 재원을 제외해 계산한 연금액'이라고 고쳤다. 그러나 연금지급 결정을 번복해 지급을 거부했다. 삼성생명은 또 연금을 받으려면 소송을 통해 찾아가라는 황당한 해법을 내놨다.

소송은 힘들고 소멸시효를 적용하면 금감원이 지급하라는 금액의 1/10만으로도 처리할 수 있을 것을 계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보사의 두루뭉술한 약관표현은 이뿐만이 아니다. 2조 원의 보험금 지급 사태를 불러온 재해사망특약 ‘자살보험금 지급’도 약관 표현상의 문제였다. 일반사망이 없는 재해사망 특약에서 자살 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지만 “2년이 지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표시해 가입 2년 후 자살하면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생보사는 2007년 대법원의 지급판결, 2010년의 약관개정으로 재해사망특약에서 2년 이후에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잘 모르는 소비자들을 속였다. “자살은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일반론을 앞세워 일반사망보험금(해약환급금)만을 지급해왔기 때문이다. 생보사는 이 사건으로 대법원까지 가는 치열한 소송전을 펼친 후 패소하고 모든 보험금까지 지급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암보험의 "직접적인 암치료" 해석상의 문제, 치명적인 질병보험의 "치명적인" 정의 등 두루뭉술한 표현이 약관에 수두룩하다. 모두 다 보험사 잘못으로 대량 보험 민원 발생의 주원인인 셈이다.

생보사는 소비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면 '약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건은 약관에 부합하지만 "소비자가 모르는 산출방법서와 다르다니 보험원리에 안 맞는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이중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웃 나라인 일본은 증권의 보장금액에 0하나를 잘못 기입해 발행한 증권이 있었다. 표기가 잘못 기입됐지만 생보험사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며 0을 하나 더 붙여 1000만 엔이 아니라 1억 엔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보험업은 신뢰산업이다. 약관표현마저 소비자가 믿지 못한다면 보험업의 신뢰는 회복이 불가능하게 될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생보사의 연금액 지급거부는 ‘소탐대실’이다. 몇 푼의 보험금을 아끼려다가 보험 자체에 대한 신뢰를 상실할 우려가 더 크다. 보험사의 '이중성'이 안타까울 뿐이다.

kicf21@gmail.com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 BIZ & GIRL

    • 이전
    • 다음
 
  • TOP NEWS

 
 
  • HOT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