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왼쪽)이 7일 오후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해 음료수를 QR코드로 결제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청와대 제공 |
정부 규제와 反기업 정서 족쇄 풀어야...文대통령 규제혁파 이어지길
[더팩트ㅣ김민구 기자] 자본주의의 본고장 미국에는 수많은 기업체 못지않게 '톡톡 튀는' 기업인이 있어 눈길을 모은다.
대표적인 인물이 엘론 머스크다. 머스크는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전기자동차 사업 못지않게 광활한 우주를 늘 응시한다.
우주에 대한 그의 관심은 2002년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 설립으로 본격화했다. 그는 또 올해 2월 미국 플로리다주(州)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테슬라 전기차를 실은 초대형 로켓 '팰컨헤비'를 화성 궤도에 진입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머스크는 우주여행을 뛰어넘어 내년 상반기에 화성 탐사선을 쏘아 올려 '화성 식민지'를 개척하겠다는 '황당한 계획'도 선보였다. 이런 정도라면 '오지랖이 넓은 재계 이단아' 라며 그에 붙은 꼬리표를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머스크가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한 것도 아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평범한 문과학생에 불과했다.
제프 베조스도 오십보백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 CEO 베조스는 우주개발 사업에 푹 빠져 민간 우주개발 기업 '블루 오리진'을 설립했다. 그는 내년부터 우주여행 티켓을 20만~30만 달러(약 2억3000만~3억4000만원)에 판매할 것이라고 밝혀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우주 사랑'은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브랜슨 회장은 2004년 우주개발업체 버진갤럭틱을 설립하고 우주여행선 개발에 나섰다. 버진갤럭틱은 일반 비행기에 실려 지상 1만5000m 상공까지 올라간 뒤 공중에서 발사되는 우주왕복선 모양의 로켓을 개발 중이다.
머스크와 베조스, 브랜슨은 대표적인 '괴짜 경영인'이다. 스페인 작가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가 쓴 소설 '돈키호테'의 주인공 돈키호테가 떠오른다. 거대한 풍차를 마치 대적해야 할 거인으로 착각하고 무모하게 돌진하는 돈키호테 모습을 바라보면 '또라이'가 따로 없다. 무모함의 극치라고 해야 할까.
머스크가 2003년에 설립한 테슬라는 설립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올해 쌓인 적자만 해도 15억달러(약 1조 6804억 원)가 넘는다. 더욱이 테슬라는 뉴욕증시 상장기업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주주총회에서 사업 부진에 따른 경영진 퇴진의 목소리가 이미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15년이 넘도록 전기차 대중화에 주력해온 경영전략과 이제는 우주개발까지 용인하는 미국 기업생태계가 테슬라를 세계적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비결이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조달러(약 1경1542조원)가 넘는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산업구조가 대기업 중심으로 재정립하고 있다. 대기업이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에서 머스크와 베조스처럼 혁신적 기업인이 등장해 미국 경제를 역동적으로 만드는 산업 생태계를 일궈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공 가능성이 아주 낮은 분야인 우주개발에 손실을 무릎 쓰고 뛰어드는 이들 괴짜 경영인의 투지와 열정이 미국을 세계 최고의 ‘혁신의 본고장’으로 만든 원동력이 됐다.
미국에 비해 우리 산업 생태계는 특유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사라진지 오래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936년 그의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 일반이론'에서 소개한 야성적 충동은 동물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본능적으로 사냥을 하듯이 기업인도 사업 경험과 직관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적 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기업을 경영할 때 이성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본능에 따라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업가정신을 뜻한다.
한국이 야성적 충동과 기업가정신의 불모지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는 한 때 세계인이 부러워할 정도로 기업가정신이 충일하는 현장이었다. 한국경제를 일궈낸 창업 1세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반도체사업이 13년간 적자를 기록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사업을 밀어붙여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 반도체업체로 만들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자동차 독자개발을 포기하라는 미국 정부 압력에도 불구하고 개발을 밀어붙여 현대·기아차를 세계 5위 자동차업체로 육성했다.
만일 두 창업자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주판알만 튕겼거나 외압에 못 이겨 쉬운 길을 택했다면 오늘의 한국경제 신화는 없었을 것이다.
최근 우리 현실은 과거 영광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인공지능(AI)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지만 요즘 대다수 기업인들은 미래를 위한 신(新)기술 개발이나 투자는 뒷전으로 미루고 재무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단기 성과주의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가오는 새 시대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기업인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업이 마음껏 경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 데 반(反)기업 정서에 매몰된 시민단체와 정당이 기업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규제와 반기업 정서에 휘둘린 기업이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매고 뛰어나갈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이 경기침체에 굴하지 않고 투자와 고용확대에 앞장서서 경제를 되살리는 야성적 충동을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규제개혁의 물꼬를 트겠다는 약속을 한 것은 박수칠 만한 일이다. 문 대통령의 규제혁파 행보의 첫 걸음은 인터넷전문은행이었지만 규제개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신(新)산업과 고용창출을 위해서라면 이들을 가로막는 규제부터 과감히 없애야 한다.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야말로 어떻게 보면 적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특정 이념에 매몰된 정치세력이나 시민단체 반발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민 전체 이익만 바라보고 규제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한국경제의 활력을 되찾고 ‘한국판 머스크’의 등장을 앞당기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