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기업 쉰들러가 지난 11일 한국정부를 상대로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가운데 외국계 자본의 잇따른 ISD가 정부를 궁지로 몰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팩트 DB |
엘리엇·메이슨 등 올들어 네 번째..쉰들러, 현대그룹 유상증자 문제 삼아 한국 정부 소송
[더팩트|고은결 기자] 현대그룹과 세계 2위 승강기 제조업체 쉰들러의 지난 7년간 갈등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Investor-State Dispute)으로 불똥이 튀었다.
외국자본이 올해 들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난 4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6월 미국 헤지펀드 메이슨 캐피털 매니지먼트, 그리고 이달 초 재미 동포 서모씨에 이어 쉰들러가 네 번째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외국계 자본의 잇따른 ISD가 한국 기업은 물론 정부마저 궁지로 몰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쉰들러-현대엘리 '7년 갈등' 정부 소송으로 이어져
스위스 국적의 승강기 제조업체 쉰들러는 지난 11일 우리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하기 위한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지분 15.87%를 보유해 현대엘리베이터(이하 현대엘리) 2대 주주인 쉰들러는 과거 금융감독원이 현대그룹 유상증자를 승인한 것이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엘리는 현대그룹의 주요 계열사 중 하나다.
ISD는 외국에 투자한 투자자가 상대 국가의 위법·부당 조치로 손해를 입은 경우 투자협정에 규정된 분쟁 해결 절차에 따라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는 제도다. 중재의향서는 본격적인 ISD 절차에 돌입하기 전 분쟁 사실 등을 알리기 위해 제출하는 서류다. 본격적인 분쟁 절차는 중재의향서를 내고 90일 후에 중재를 제기하면 시작된다.
쉰들러는 지난 2011년부터 현대엘리를 인수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쉰들러는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현대그룹이 진행한 유상증자를 문제 삼고 있다.
당시 현대그룹이 진행한 유상증자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목적인데 쉰들러측은 이를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쉰들러는 2013년 당시 현대엘리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며 지분을 최고 34%까지 확보했다. 이에 현대그룹은 969억 원 규모의 현대엘리 유상증자를 실시해 지분을 50%까지 확대했다. 신들러는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쉰들러와 현대그룹 측과의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쉰들러는 지난 2014년 현대그룹 측이 현대엘리를 통해 현대상선의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체결해 7000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쉰들러는 지난 2016년 1심에서 패소해 소송이 일단락됐다.
◇외국계 자본의 잇따른 ISD 공세에 정부 맞대응 '빨간불'
쉰들러의 중재의향서 제출 등 외국 자본의 ISD 제기가 이어지면서 정부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지난 12일에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승인 과정과 관련해 8600억 원 규모의 중재신청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했는데,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로 제시된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공정하다며 합병을 반대했다.
또 다른 미국 헤지펀드 메이슨캐피탈매니지먼트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메이슨은 삼성물산 지분 2.2%를 보유하고 있었다. 메이슨도 엘리엇과 함께 합병을 반대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찬성으로 삼성 합병이 성사되자 메이슨은 1880억 원 상당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메이슨은 지난달 8일 2000억 원 규모의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소송을 제기한 근거는 전(前)부의 국정농단이 주된 이유라고 풀이한다. 메이슨은 국정농단 사건 수사와 재판을 언급하며 "복수의 체포와 형사소추, 유죄 선고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포함한 박근혜 정부가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 표결에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엘리엇 또한 지난 4월 중재의향서를 통해 메이슨과 비슷한 주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 법무부 등 6개 부처로 구성된 정부 합동대응단을 구성해 삼성 합병 관련 ISD에 대응할 계획이다. 정부가 외국자본의 공세에 바짝 긴장하는 데에는 지난 6월 이란의 다야니 가문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에서 승소했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은 은 이란 가전회사 엔텍합의 대주주 다야니 가문이 지난 2010년 4월 산관리공사(캠코)가 최대 주주였던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려다 실패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다야니 측은 계약 보증금 578억원을 몰수당하자 이를 돌려달라며 2015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했다. 이에 따라 UN 산하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4일 한국 정부가 다야니 측에 약 73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정부 일각에서는 쉰들러에 강력한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자칫 다야니 재판(再版)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 대응체계를 갖춰 외국계 기업의 ISD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