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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의 상암토크] '태국 동굴 소년' 구조에서 보는 '제복의 가치'
입력: 2018.07.19 05:00 / 수정: 2018.07.19 05:00

동굴에 고립됐다 극적으로 구조된 태국 소년 축구클럽 선수들이 15일(현지시간) 치앙라이의 한 병원에서 자신들을 하다 숨진 태국 네이비씰 출신 다이버 사만 쿠난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치앙라이(태국)=AP.뉴시스

동굴에 고립됐다 극적으로 구조된 태국 소년 축구클럽 선수들이 15일(현지시간) 치앙라이의 한 병원에서 자신들을 하다 숨진 태국 네이비씰 출신 다이버 사만 쿠난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치앙라이(태국)=AP.뉴시스

희생적 리더십 중요성 일깨워...'세월호 비극' 되풀이해선 안돼

[더팩트ㅣ김민구 기자] 일주일이 지났지만 감동의 여운은 아직 남아 있다. 한 편의 감동 드라마가 따로 없다. 지난 한 달간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2018 러시아 월드컵' 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월드컵 열기에 가려졌지만 태국 치앙라이 동굴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소년들 얘기다.

태국 치앙라이주(州) '무 빠'('야생 멧돼지'라는 뜻) 축구클럽 소속 선수와 코치 등 13명은 지난 6월 23일(현지시간) 탐루엉 동굴에 들어갔다가 폭우로 갑자기 불어난 물에 고립됐다. 이들은 동굴에 무려 17일간 갇혔다가 7월 10일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약 3주간에 걸친 사투 끝에 태국 동굴소년이 전원 구출된 것은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시원한 청량제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소년들의 사고 소식이 처음 전해지자 전 세계에서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이 동굴탐사 전문가와 구조대를 보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독일, 캐나다, 덴마크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달려와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인류애의 승리다.

그렇다고 동굴소년들 구조작업이 탄탄대로만 걸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탐루엉 동굴 입구에서 4.5㎞ 지점에 머물고 있었는데 동굴에서 나오기 위해 침수구간 4곳을 통과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지역은 길이 800m, 폭이 60㎝로 좁은 구간이 있어 소년들은 물론 구조대가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당시 이들을 구조한 총책임자가 "이런 구조는 전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겠는가.

조선 정조 때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가 문득 떠오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그대로 황천길로 향할지 모르는 위기처럼 이들 소년들의 생사(生死)는 종이 한 장 차이로 뒤바뀔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영웅은 위기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이번 구조 과정에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 사람은 축구팀 코치 엑까뽄 찬따웡이다. 그는 자기가 먹을 음식을 소년들에게 나눠주고 소년들이 어두운 동굴 속에서 불안해하지 않도록 믿음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만일 코치 찬따웡이 희망과 용기를 잃어 불안해하거나 자기 음식을 챙겨 먹고 아이들을 보살피지 않았다면 소년들은 겁에 질려 죽거나 병이 생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생사가 달린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인이 가슴을 졸이며 지켜본 '태국 소년 드라마'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막은 내렸지만 이들을 향한 박수갈채는 그칠 줄을 모른다.

태국 소년들 구조를 바라보면서 여객선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을 비탄의 바다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4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아픈 상흔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찬따웡 코치와 이준석 전(前) 세월호 선장은 대척점에 서 있었다. 찬따웡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위험 요인을 최소화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준석 전 선장과 그의 추종자들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승객 안전은 도외시하고 '제복(직위)의 가치'를 벗어던지며 자신만 살겠다며 도망친 치졸함을 보여줬다.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승객들을 남겨두고 혼자 대피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4년이 지난 지금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찬따웡 코치가 보여준 원칙과 침착한 위기대응 전략이 세월호 사태에도 발휘했다면 꽃다운 청춘이 우리 곁을 떠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 종교개혁자 칼뱅은 직업을 '소명(Calling:하늘의 부름)'으로 알고 자신 직업에 충실하는 것이 올바른 정신이라고 역설했다. 직업에 대한 이 같은 소명의식은 조직은 물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비타민이다. 한국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직업 소명의식 부족'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했다.

현대 정책학(政策學) 체계를 세운 미국 학자 헤럴드 라스웰(Harold Lasswell)의 진심어린 충고가 뇌리를 스친다. 라스웰은 1951년 '정책 지향(The policy orientation)'이라는 논문에서 "‘정책은 세상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인간의 삶을 더 좋게 혹은 더 나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세월호 사태는 선장의 리더십 부재와 해안당국 등 국가 공권력 실패가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세월호 참사는 또한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었다. 한국사회라는 '공유지’에서 구성원들은 규정을 안 지켜도 문제없다는 식으로 너나 할 것 없이 규칙을 어겼다. 물에만 뜨면 된다는 식으로 화물을 과적하고 승선 인원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해양경찰청은 세월호에서 300여명의 소중한 목숨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도 수수방관만 했다.

영국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는 국가권력이 반드시 갖춰야 할 요건으로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강조했다.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도 '국민의 자연권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역설했지만 사고 당시 진도 앞바다에는 이러한 철학이 눈을 씼고 찾아봐도 안보인다.

정부 규제가 줄어들고 시민정신이 축적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육성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관련당국이 '안전 불감증'과 '적당주의'로 일관하는 공유지의 비극을 연출한다면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 메커니즘보다는 '보이는 손'인 정부 규제가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꼭 필요한 규제'는 매우 엄격하게 해 시장 규율을 살리면서 국가를 안전하게 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gentlemin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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