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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라이벌下] '재벌2세' 김남구vs'자수성가' 박현주, 성공 배경은?
입력: 2018.07.03 05:03 / 수정: 2018.07.03 05:03

금융투자업계 1위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왼쪽)과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의 행보에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국금융지주, 미래에셋 제공
금융투자업계 1위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왼쪽)과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의 행보에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국금융지주, 미래에셋 제공

금융투자업계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과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의 행보는 업계 안팎의 주요 관심사다. 두 금융사는 비슷한 실적을 내면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시작은 판이하다. 이들 그룹의 성장 배경과 그 과정을 돌아보고, 실적 등을 비교해 경쟁 구도가 어떻게 흘러갈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회장 아들' 김남구 vs '농부 아들' 박현주

[더팩트ㅣ서민지·이지선 기자]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과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한국판 골드만삭스'로 거듭나기 위해 열심히 달려오고 있다. 이들은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인 데다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동원증권에서 함께 몸을 담은 적이 있고, 현재 금융투자업계 1·2위에 올라있는 등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김 부회장이 동원그룹 '재벌 2세' 출신인 데 비해 박 회장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배경은 확연히 다르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동원산업과 동원금융지주가 분리된 2003년부터 그룹을 이끌고 있다. /더팩트 DB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동원산업과 동원금융지주가 분리된 2003년부터 그룹을 이끌고 있다. /더팩트 DB

◆'금수저' 김남구, 혹독한 경영수업 뒤 금융지주사를 이끌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국내에서 유일한 증권사 중심의 금융지주사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2003년 동원산업과 동원금융지주를 분리하면서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 한국금융을 이끌어왔다. 이에 따라 김 부회장은 이른바 '금수저'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밑바닥부터 경험해야 한다"는 김 회장의 철학에 따라 김 부회장도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특히 대학교 졸업 후 6개월간 신분을 속이고 명태잡이 원양어선에서 일을 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하루에 잠자는 시간을 빼고 16시간씩 일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김 부회장은 1963년생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동원산업에 입사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게이오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1991년 동원증권 대리로 입사했다. 상무이사부터 전무이사, 부사장, 전략기획실장 등을 두루 거쳤다.

2003년부터 동원산업 분리돼 동원증권·투신운용·저축은행·캐피탈 등을 거느린 금융지주사를 이끌게 됐다. 2005년에는 한국투자증권과 합병하며 몸집을 키웠다. 당시 '동원'이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동원금융지주를 한국투자금융지주로 이름을 바꾸는 과감한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성장 과정이 무난하게 흘러간 것만은 아니다. 동원증권은 2000년 KTB네트워크 지분 12%가량을 매수해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하지만 종전 최대주주인 미래와사람(권성문 전 KTB투자증권 회장 측)이 동원증권의 경영참여를 거부하면서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다. 결국 동원증권은 2005년 KTB네트워크 지분 대부분을 처분했는데, 5년 전 매입 단가는 1만 원이 넘었지만 매도 단가는 2700원 선에 그쳤다.

한동안 M&A 시장에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5년 KDB대우증권 인수에 뛰어들었지만 미래에셋증권(현 미래에셋대우)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고, 2016년 현대증권 인수전에서는 KB금융지주에 밀렸다.

은행업 진출에도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2002년 서울은행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하나은행에 밀리면서 인수협상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이후 조흥은행과 하나은행 인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이 역시 무산됐다. 결국 2016년 인터넷 전문은행 카카오뱅크 대주주를 참여하면서 은행업에 진출하게 됐다.

지난해에는 초대형 투자은행(IB) 중에서 유일하게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를 받았다. 발행어음이 초대형 IB의 핵심사업인데,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NH투자증권이 두 번째로 발행어음 인가를 받으면서 선점효과가 떨어진 상태다. 여기에 KB증권 등도 발행어음 인가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자수성가의 신화로 불리는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1997년 자본금 100억 원으로 시작해 무서운 속도로 그룹을 성장시켰다. /더팩트 DB
'자수성가의 신화'로 불리는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1997년 자본금 100억 원으로 시작해 무서운 속도로 그룹을 성장시켰다. /더팩트 DB

◆'자수성가' 박현주, 무서운 속도로 정상을 향하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의 경우 홀로 성장한 '자수성가'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을 100억 원 규모의 벤처캐피탈로 시작해 지난해 기준 자기자본 13조 원가량을 보유한 그룹으로 무섭게 성장시켰다.

박 회장은 1958년생으로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동양증권에 입사하며 금융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2년 후 동원증권으로 자리를 옮겼고, 30대 초반의 나이로 전국 최연소 지점장이 됐다. 부실 점포를 1년 만에 전국 1등 점포로 오르게 하며 업계 안팎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이후 강남본부장 이사로 승진하며 증권업계에서 또다시 '최연소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그러자 외국에서도 '러브콜'을 보내왔다. 당시 외국계 증권사가 연봉 10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카우트를 제안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경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거절했고, 1997년 당시 동원증권의 최현만 서초지점장, 구재상 압구정지점장 등과 함께 회사를 나와 미래에셋캐피탈을 설립했다. 이어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증권 등을 잇따라 세웠다.

특히 국내 최초로 내놓은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로 성공을 거뒀다. 뮤추얼펀드는 주식을 발행해 투자자를 모집하고, 모집한 투자자산을 전문적인 운용회사에 맡겨 그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금 형태로 돌려주는 투자신탁이다. 대기업 금융사를 중심으로 직접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던 시기에 새로운 투자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박 회장이 모든 사업에 성공하며 탄탄대로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10월에 출시한 인사이트펀드는 한 달 만에 4조 원의 자금을 끌어들이며 또다시 '붐'을 일으켰다. 하지만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해 40% 이상의 손실을 냈고, 투자자는 물론 회사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박 회장은 M&A 시장에서도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줬다. 지난 2005년 SK생명을 인수해 미래에셋생명을 출범했고, 2015년 말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미래에셋대우로 몸집을 더욱 불려 나갔다. 이는 미래에셋대우가 자기자본 기준 국내 1위 증권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2016년에는 PCA생명을 인수하며 미래에셋생명을 생보업계 5위로 뛰어오르게 했다.

부동산 등 대체투자 사업에도 눈에 띄는 성과를 얻었다. 박 회장은 지난 2006년 상하이 미래에셋타워를 시작으로 브라질 호샤베라타워, 호주 시드니 포시즌스호텔, 하와이 페어몬트 오키드 리조트,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호텔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등 국내외 부동산을 사들이며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jisseo@tf.co.kr, atonce51@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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