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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의 상암토크] 제4차산업혁명 '총아'를 위협하는 한국 정치
입력: 2018.06.21 05:00 / 수정: 2018.06.21 09:28

한국이 4차산업혁명 총아로 불리는 드론(drone:소형 무인항공기) 기술을 앞서 개발했지만 정부의 규제와 이에 따른 상용화 실패로 이제는 미국은 물론 중국에도 뒤지는 신세가 됐다.  사진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드론이 하늘에 하트(Heart) 모양을 만드는 장면./더팩트 DB
한국이 4차산업혁명 '총아'로 불리는 드론(drone:소형 무인항공기) 기술을 앞서 개발했지만 정부의 규제와 이에 따른 상용화 실패로 이제는 미국은 물론 중국에도 뒤지는 신세가 됐다. 사진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드론이 하늘에 하트(Heart) 모양을 만드는 장면./더팩트 DB

'한국판 적기조례'에 드론·AI 상용화 발목 잡혀...규제 완화 시급

[더팩트ㅣ김민구 기자] '최대의 적(敵)은 내부에 있다'는 말은 시대를 관통하는 금언임에 틀림없다. 도약의 발목을 잡아 발전이 아닌 퇴보의 길로 이끄는 암적 존재가 조직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공자 왈 맹자 왈' 하자는 게 아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로운 진화의 여정에 꽃길만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걸림돌이 수두룩하다.

192 년 전 일도 이를 잘 보여준다. 산업혁명 발원지인 영국은 1826년 세계 최초로 28인승 증기기관 자동차를 선보였다. 증기기관 자동차는 당시 기술 수준을 감안하면 혁신의 집약체였다. 그러나 나의 행복은 남의 불행일까. 영국인들은 증기 자동차 출현에 환호했지만 안절부절못하며 밤잠을 설치는 이들도 있었다.

증기 자동차가 런던 거리에 등장하자 마차업자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 이들은 밥그릇이 빼앗길 수 있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느꼈다. 결국 마차업자들은 들고 일어섰다. 이들은 자동차 때문에 말(馬)이 놀라고 자동차가 도로를 망친다는 황당한 논리를 펼쳤다.

영국정부는 마차업자 압력에 굴복해 1865년 '적기 조례(Red Flag Act)'라는 기상천외한 법을 선포했다. 이른바 '빨간 깃발 법'으로 불리는 이 법규는 마차가 55m 전방에서 붉은 깃발을 꽂고 달리면 자동차는 그 뒤를 따라가야 했다. 법규에 따라 자동차 최고속도는 시속 6.4㎞로 묶었다. 당시 자동차는 시속 30km를 넘게 달릴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이 법은 자동차라는 신(新)기술 등장에 생존의 위협을 느낀 마차 업주들이 로비를 펼쳐 만든 대표적인 '대못 규제'였다. '적기조례의 저주'는 희생양을 낳았다. 적기조례는 31년이 지난 1896년 폐지됐지만 어처구니가 없는 규제의 대가는 혹독했다.

영국이 적기조례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사이에 독일과 프랑스 등 경쟁국 자동차 산업은 본궤도에 올랐다. 자동차산업 선두주자였던 영국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마부들도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초라해지는 마찬가지였다.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적기조례는 유망산업이 정부의 황당한 규제에 발목이 잡혀 '폭망(폭삭 망함)'한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영국 자동차산업 경쟁력을 갉아먹은 적기조례가 약 200년 전 일어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라고 폄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기조례의 망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드론(drone:소형 무인항공기)산업이다. 전 세계 시청자들은 지난 2월 25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평창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드론 쇼를 목격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약 1200개가 넘는 드론을 하늘에 동시에 띄우는 이른바 '군집(群集) 드론 기술'은 한국 드론 회사가 아닌 미국 인텔사 작품이었다. 우리 무대를 남의 손에 맡긴 처지가 된 셈이다.

주먹으로 땅을 치며 통탄해야 할 대목은 우리가 드론 기술을 먼저 개발한 선두주자였지만 정부의 규제로 드론 기술이 외국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는 점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2013년 실내 군집 드론 기술을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했고 2016년에 인텔과 같은 실외 군집드론 기술을 확보했다. 한국은 드론 택시의 핵심인 수직이착륙 기술도 2012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했지만 규제의 벽에 부딪혀 상용화에 실패했다.

신(新)기술에 대한 '한국판 마부의 꼼수'는 인공지능(AI) 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AI는 촘촘한 정부의 '규제 그물'에 묶여있는 상황이다. 박근헤 정부는 2016년 이른바 '알파고 쇼크'를 이겨내기 위해 ‘한국형 AI사업’을 마련해 국내 주요 정보기술(IT)기업들이 참여한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현(現)인공지능연구원)'을 출범시켰다. 당시 정부는 연간 150 억 원 씩 5년간 총 750 억 원에 달하는 연구예산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이 프로젝트는 '적폐'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예산이 모두 삭감됐다. 향후 한국을 이끌 첨단기술 프로젝트가 정권 교체로 휘청거리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첨단 기술 연구현장이 마녀사냥 당하는 표적으로 전락해왔다. 지식경제(김대중 정부), 혁신주도경제(노무현 정부), 녹색경제(이명박 정부), 창조경제(박근혜 정부) 등 거창한 구호를 내세운 과학기술계획이 등장하지만 정권교체와 함께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오죽했으면 과학기술계에서 "1990년대 정부가 추진한 'G7프로젝트'라는 첨단기술계획이 일관되게 추진됐다면 한국 과학기술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한탄의 목소리가 나왔겠는가.

미국이 세계 최고의 AI 강국이 된 비결은 간단하다. 미국은 지난 50년간 정권교체나 경기침체에 관계없이 정부가 대학교, 연구소, 기업과 손잡고 첨단기술 개발에 매진해왔다.

중국도 오는 2030년까지 모든 AI 분야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선보인 지 오래다. 한국 정책 입안자로서는 잠못 드는 밤을 보낼 것 같다.

우리가 드론과 AI 등 제4차산업혁명 최강국이 되려면 정권이 바뀌어도 과학기술만큼은 초당적(超黨的)으로 접근하겠다는 정치적 합의가 절실하다. 그러나 상생과 담을 쌓은 우리 정치사를 돌이켜보면 그런 기대를 접는 게 좋을 지도 모른다.

'경제의 최대의 적은 정치'다. 정치가 시장보다 효율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규제 인허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부는 시장의 불완전성, 불공정성을 언급하며 시장실패를 막기 위해 정치적 접근과 입법적 제한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영국 경제학자이며 '애덤 스미스 연구소'를 설립한 이몬 버틀러(Eamon Butler)는 그의 저서 '시장경제의 법칙'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은 시장 선택보다 비효율적"이라고 설파했다. 그러나 우리 정책당국이 이러한 논리에 '소귀에 경 읽기'처럼 귀를 막고 있는지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가 AI 연구개발(R&D)에 올해부터 5년간 2조2000 억 원을 투입하고 AI대학원 신설을 통해 AI 전문인력 5000명을 양성한다는 내용의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박수칠 만하다.

이제는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적 차원의 R&D는 꾸준히 밀고나가는 정치적 합의와 실천적 의지가 절실하다. 첨단 R&D 사업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뀌는 전리품이 아니다.

4차산업혁명의 거센 파도가 밀려오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조개만 줍고 있을 것인가. 자칫 한눈을 팔면 파고(波高)에 휩쓸려 표류하는 신세가 될 지도 모른다.

gentlemin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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