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하(왼쪽 위) 한샘 회장이 지난해 사내 성폭행 사건 이후 대대적인 조직문화 혁신을 약속했지만, 채용 관련 문제가 잇따라 불거져 논란이 되고 있다. /한샘 제공·더팩트DB |
연이은 '채용 갑질'로 취업준비생 두 번 울려…
[더팩트ㅣ안옥희 기자] 가구업체 한샘이 잇따른 '채용 갑질' 논란에 휩싸여 구설에 올랐다. 한샘은 정규직 신입‧경력 수시 채용 모집 공고를 내고 1차 합격자들에게 '계약직'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려 취업준비생을 속였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샘은 지난 4월 신입‧경력 수시 채용 모집 공고를 내면서 고용 형태에 정규직으로 표기했다. 하지만 한샘이 1차 면접 전형 이후 합격자들에게 계약직 채용이란 사실을 통보해 거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채용공고 사이트 잡코리아에 올라온 당시 모집 공고를 보면 고용 형태가 정규직으로 돼 있다. 한샘 관계자는 "원래 회사 방침이 '정규직 채용'이 아닌 '정규직 및 계약직 채용'"이었다며 중간에 말을 바꾼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한샘 측은 최초 채용 공고 사이트 '사람인'에만 공고를 게재했는데 인사 담당자 실수로 '정규직 채용'으로 잘못 노출됐고 이 사실을 파악한 즉시 공고 내용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 '사람인'에 게재한 수정되기 전 한샘 채용 공고를 잡코리아가 그대로 '정규직 채용'으로만 표기하면서 오해가 생겼다는 게 한샘 측 설명이다.
이에 대해 취업 준비생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정규직으로 알고 두 달 가까이 전형을 치러 왔기 때문이다. '정규직 채용'으로 잘못 표기된 잡코리아 채용 공고에는 108명이 지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샘은 고용 형태뿐 아니라 월 급여가 최저임금보다 6000원 많은 158만 원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통보했다. 고용 형태 표기 실수도 문제지만 예상 밖의 열악한 처우까지 알려지자 취업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1차 면접 합격자라고 밝힌 지원자들은 "정규직인 줄 알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계약직이라니 황당하다", "한샘의 채용 갑질로 두 달 간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성토했다. 한샘 최종 면접을 포기하겠다는 글도 속속 나오고 있다.
두달 전 채용공고 사이트에 올라온 한샘의 신입·경력 수시채용 공고문에는 고용 형태가 '정규직'으로만 표기돼 있다. 한샘은 당초 '정규직 및 계약직 채용'이었는데 인사 담당자 착오로 '정규직 채용'으로 잘못 표기돼 나갔다고 해명했다. /잡코리아 갈무리 |
◆ 한샘 "인사 담당자 실수…최종 합격자 정규직 채용", 지원자 "황당한 갑질"
논란이 커지자 한샘은 표기 착오였다며, 최종 합격자를 모두 정규직으로 뽑겠다고 다시 공지했다. 그러나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에 비유될 정도로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고통 받는 취업 준비생들을 두 번 울렸다는 '채용 갑질' 논란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샘의 신입사원 채용 관련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특히 한샘은 수습사원들에게 수습 기간 과도한 매출 목표를 할당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샘은 2016년 청년인턴(SC영업관리직)을 뽑고 정규직 전환 조건으로 인턴 기간 월 매출 목표를 6500만 원으로 제시했다. 한샘은 인턴 사원에게 다소 무리한 매출 목표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지급하는 급여가 당시 최저임금(6030원)에도 못미쳐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샘은 지난해 말에도 수습사원들에게 정규직 전환을 명분으로 월 매출 6000~5000만 원 목표 달성을 요구하며 실적이 부진하면 휴일 산행이나 교육을 실시해 갑질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또한 지난 달에는 영업직 수습사원 6명이 수습 기간 목표 매출 6000만 원을 채우지 못해 채용 4개월 만에 해고되는 등 과도한 매출 목표로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대해 한샘 관계자는 "해고가 아니라 수습 해지"라며 "영업직 수습사원은 매출 달성이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오직 실적만 보는 게 아니라 역량 등 다른 여러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일부 매출 목표가 높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 목표를 달성한 신입사원들이 다수 있다는 점도 주목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한샘의 영업 압박이 지나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가구업계 관계자는 "한샘이 동종업계 대비 급여가 많은 편도 아닌데 매출 목표가 너무 높아 이직률이 높은 회사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한샘 영업직은 총 916명이다. 이는 전체 직원 3000여 명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주요 직군이지만 평균 근속연수는 다른 직군에 비해 턱없이 낮다.
2014년부터 최근 4년간 한샘 전체 직원 수는 2000여 명에서 3000여 명으로 약 1000명이 늘어날 정도로 외형 성장을 거듭했다. 같은 기간 영업직도 총 600여 명에서 점차 늘어 지난해 900여 명으로 증가 추세다. 평균 근속연수도 1년 5개월에서 지난해 2년을 넘어섰다. 영업직 평균 근속연수는 남자 2년, 여자 2년 4개월이다. 이는 평균 근속연수가 4년, 6년 이상인 관리‧연구직 직원에 비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올 3월 기준 한샘 영업직 사원 수는 총 916명으로 전체 직원 3000여 명 중 3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평균 근속연수는 다른 직군에 비해 턱없이 낮다. 여성 고위직·일반 사원 수와 이들의 평균 근속연수도 남성보다 적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
이에 대해 한샘 관계자는 "단순 수치로만 보면 영업직 근속연수가 짧은 것 같지만, 신입사원이 대폭 늘어 평균 근속연수가 내려간 것"이라며 "회사가 최근 몇 년 간 급성장하면서 영업직을 대거 채용했다"고 설명했다.
◆ '조직 혁신' 약속 최양하 회장, 성폭행 사건 이어 이번엔 채용 논란
한샘은 채용 문제 논란이 잇따르자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한샘은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개별기준)에서 각각 1조9739억 원, 1575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6.4% 늘었지만, 영업익은 전년과 동일한 수준이다. 특히 한샘은 지난해 4분기에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9% 줄어든 4699억 원, 영업익은 28.8% 감소한 348억 원에 그쳤다. 4분기는 사내 성폭행 사건 여파로 인한 불매 등으로 홈쇼핑 판매가 중단된 시기로 매출 타격이 컸다.
지난해 사내 성폭행 사건 이후 매출 직격탄을 입은 한샘은 최양하(69) 회장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조직 정비를 통한 체질 개선 및 브랜드 이미지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
최양하 회장은 조직 혁신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한샘은 지난해부터 최 회장 직속으로 기업문화실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한샘은 6개월간 준비 끝에 최근 기존 매뉴얼을 개정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새로운 '성차별, 성희롱, 성폭력 예방과 대응 지침'을 완성했다.
그러나 성폭행 사건에 이어 채용 갑질 논란이 잇따르면서 최 회장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이 주도하는 기업문화 혁신 작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관련 업계도 한샘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한샘은 여성을 주 고객으로 하는 가구회사로 모성보호제도, 출퇴근 탄력제, 직영 어린이집 등 여성친화적 근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채용 갑질이 용인되는 보수적 기업문화와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유리천장이 여전히 두텁다는 분석이다.
전자공시 상 등기임원 9명이 모두 남성이며 미등기 임원 38명 중 여성은 4명에 불과하다. 낮은 여성 임원 비율 뿐 아니라 여직원 급여와 평균 근속연수도 남성 직원보다 낮다. 생산직 여성 직원 7명도 남성 직원보다 적은 급여를 받고 있다. 특히 기술직은 유일하게 여성 직원 급여가 더 높았지만, 여직원이 단 1명뿐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