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가 지난 17일 자사 플래그십 세단 '더 K9'의 미디어 시승행사를 진행했다. /기아자동차 제공 |
8000만 원대 럭셔리 세단이 주는 '역동적 편안함'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기아자동차(이하 기아차)는 경차 '모닝',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쏘렌토', 미니밴 시장의 절대 강자 '카니발' 등 각 세그먼트를 대표하는 상징적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기아차에도 선뜻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킬레스건'이 있다. 바로 회사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세단 'K9'이 그 비운의 주인공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완성차 제조사마다 나름의 이유로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받은 '흥행 실패작'이 있기 마련이다.
K9은 회사 기술력이 집대성된 대형 세단이라는 상징성을 띄고 있다. 그런 '기술력의 총아'가 시장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은 기아차로서는 너무도 아픈 손가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아차가 지난 2012년 출시된 1세대 모델 이후 6년 만에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내놓은 2세대 '더 K9'은 흥행 조짐이 심상치 않다. 이 차종은 영업일수 19일 만에 3000대 이상이 판매되는 등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기아차 경영진은 "'더 K9'이 대형 세단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역대급 신차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초반 눈도장 찍기에 성공한 기아차의 '기함(旗艦)'이 회사 측 장밋빛 전망처럼 과거 오명을 씻고 대형 세단 시장의 다크호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 시그니엘 서울에서 강원도 춘천까지 '더 K9'을 타고 왕복 약 160km 구간을 달려봤다. 운전석에 오르기 전 차량의 생김새부터 살펴봤다. 첫 인상을 얘기하자면 말 그대로 '중후하다'는 표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현대차의 준대형 세단 '그랜저'에서 새어 나왔던 30대의 감성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중후한 멋을 추구하는 40~50대의 묵직한 매력이 차량이 추구하는 정체성을 대변한다. 사실 디자인 부분은 사람마다 느끼는 매력 포인트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이번 시승에서는 '더 K9'에 적용된 첨단 기술과 주행 성능에 주안을 뒀다.
운전석에 올라 시동 버튼을 누르자 새로운 기술력이 집약됐다는 점을 강조라도 하듯 전자식 계기판 디스플레이에서 나오는 화려한 포퍼먼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더 K9'은 에코, 컴포트, 스포츠, 커스텀, 스마트 등 모두 5가지 주행모드를 설정할 수 있다. 또한 각 주행모드마다 고유의 계기판 디스플레이가 적용돼 운전의 재미를 더한다. 물론 운전자가 주행 모드와 무관하게 계기판 디스플레이만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도 있다.
가속페달을 밟고 주행에 나서는 순간 5m에 달하는 거대한 차체가 부드럽게 움직인다. 최고급 세단에 걸맞게 정숙성만큼은 합격점을 주기에 충분하다. 시속 150km 이상 고속 구간에서도 조수석에 앉은 동승자와 속삭이듯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더 K9'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켜준다.
'더 K9'은 차로유지보조(LFA) 시스템이 포함된 '드라이브 와이즈' 패키지는 물론 12.3인치 UVO 3.0 고급형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이 모든 트림에 기본 적용됐다. |
동력 성능 면에서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3.3 가솔린 터보 모델은 최고출력 370마력, 최대토크 52.0㎏f.m 성능을 발휘한다. 급하게 추월을 하거나 정지상태에서 속력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머릿속에 그리는 만큼의 기민한 순발력을 발휘한다. 고속구간에서의 가속력이 인상적이다.
특히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변경하면 귀로 전달되는 엔진음은 물론 차량 움직임 자체가 달라진다. 시트 포지션도 버킷 시트와 같이 허리를 단단히 잡아주는 형태로 자동으로 바뀐다. 고속도로 구간에서 시속 180km까지 치고 올라갈 때까지 차체 떨림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급격하게 방향전환을 할 때 안정감도 수준급이다. '더 K9'은 신규 서스펜션 플랫폼이 적용해 횡강성이 전 모델 대비 30% 이상 증대했다. 횡강성은 차량이 어떠한 주행조건에서도 단단히 버틸 수 있는 정도다.
'더 K9' 시승의 백미는 단연 후측방 충돌방지 보조(BCA), 서라운드 뷰 모니터(SVM) 등 주행 편의와 안전성을 지원하는 신기술이다.
'더 K9'에는 세계 최초로 개발된 후측방 모니터(BVM)가 적용했다 이에 따라 운전자가 방향 지시등을 작동하면 해당 방향의 후측방 영상이 클러스터 화면을 통해 나타난다. /서재근 기자 |
이 가운데 세계 최초로 개발된 후측방 모니터(BVM)은 운전자가 방향 지시등을 작동하면 해당 방향의 후측방 영상이 클러스터 화면을 통해 나타난다. 이때 운전자에 제공되는 화면은 아웃 사이드미러 대비 2배 이상의 시야각을 확보해준다. 이는 큰 차체에 부담을 느끼거나 차선변경에 어려움을 겪는 운전자들에게 최고의 기능이 아닐까 싶다.
최근 현대기아차에서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반)자율주행 기능 역시 '더 K9'에서 진화한 형태로 녹아들어 있다. 실제로 핸들에서 손을 떼보니 차량이 스스로 차선을 정렬하고 직선뿐만 아니라 곡선 구간에서도 차선 중앙을 안정적이게 유지한 채 설정 속도를 맞춰 주행했다.
특히 반자율주행 기능이 적용된 현대기아차의 다른 모델들이 시스템 유지 시간이 평균 1분을 넘지 못했던 것과 달리 '더 K9'는 기능이 최대 3분가량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정밀한 시험이 아니었던 만큼 주행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차 출시가 거듭될수록 기술력이 발전한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이 외에도 GPS와 연계해 차량이 터널에 진입하기 전에 열려 있는 창문을 자동으로 닫고 공기정화를 돕는 '터널 연동 자동 제어' 기술 역시 눈여겨 볼만하다. 터널 진입 전 약 50~100m 거리에 다다르면 운전자가 별도 조작을 하지 않아도 창문이 스스로 닫히고 12.3인치 디스플레이 상단에 '터널에 진입하여 외부 공기를 차단합니다. 창문을 닫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타난다.
시승 차량은 '더 K9'의 3.3 가솔린 터보 모델 가운데 최상위 트림인 그랜드 마스터즈다. 차량 몸값만 8230만 원에 달한다. 물론 다양한 옵션이 장착됐다는 점은 최상위 트림의 특장점이다. 그러나 '더 K9'은 차로유지보조(LFA) 시스템이 포함된 '드라이브 와이즈' 패키지는 물론 12.3인치 UVO 3.0 고급형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이 모든 트림에 기본으로 적용됐다. 때문에 주행에 필요한 핵심 기능만을 추구하는 고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하위 트림에 눈이 더 쏠릴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