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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초점] 각종 의혹에도 버티던 권오준 회장 '외풍'에 흔들렸나
입력: 2018.04.19 00:00 / 수정: 2018.04.19 00:00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임시 이사회를 마친 뒤 공식적으로 사의를 밝혔다. 사진은 권 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임시 이사회를 마친 뒤 공식적으로 사의를 밝혔다. 사진은 권 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권오준 회장 "젊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경영 넘겨야"

[더팩트ㅣ장병문 기자] 정부와 '불화설(說)', '사퇴설' 등 수많은 소문이 따라다녔던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권 회장이 구체적인 사임 배경을 밝히지 않아 다양한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외부 요인이 작용했는지 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권 회장은 18일 오전 8시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임시 이사회를 마친 뒤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젊은 사람에게 회사 경영을 넘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이사회도 승낙했다"며 공식적으로 사임의 뜻을 밝혔다. 다만 사임 배경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권 회장이 불과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회장직을 지키겠다는 뜻을 내비쳤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사임 발표는 '예상 외'라는 분위기다. 그는 지난달 31일 포스코 창립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사퇴설에 대해 "정도에 입각해 경영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며 경영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던 권 회장이 한 달도 채 안 돼 사퇴로 마음을 바꾼 것에 대해 숱한 의문을 낳고 있다. 권 회장 사퇴설이 불거진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동행하지 못하면서부터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미국을 시작으로 11월 인도네시아, 12월 중국, 올해 3월 베트남 등에 경제사절단을 꾸려 순방에 나섰지만 권 회장은 사절단 명단에서 제외됐다.

재계 순위 6위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대통령 해외순방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현 정부와 권 회장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권 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포스코는 미르와 K스포츠에 49억 원을 출연했고 광고계열사 포레카를 매각해 최순실 씨 등 비선실세에게 이권을 넘겨주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특히 권 회장 선임 과정에서 최 씨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권 회장은 지난 2016년 11월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지난해 3월에는 최 씨와 안종범 전 수석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근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판결에서 박 전 대통령이 포스코에 배드민턴팀 창단을 강요했다는 혐의를 유죄로 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수사도 권 회장에게 부담 요소로 꼽힌다. 권 회장이 추진한 포스코 자원 개발사업에 MB 정부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또 전날 황창규 KT 회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것도 권 회장이 마음을 바꾸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이다.

경찰은 KT 전·현직 임원들이 2014∼2017년 국회의원 90여 명의 후원회에 법인자금으로 4억3000여만 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에 대해 황 회장이 직접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등 관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황 회장이 KT 안팎에서 퇴진 압박을 받고 있어 권 회장에게도 적잖은 부담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권 회장 사임이 경영 외적인 요소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는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거뒀다. 실적으로 봤을 때 최고경영자가 물러날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4조6000억 원대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포스코는 지난 2000년 10월 정부가 갖고 있던 마지막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하면서 완전 민영화됐다. 현재 포스코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이다. /더팩트 DB
포스코는 지난 2000년 10월 정부가 갖고 있던 마지막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하면서 완전 민영화됐다. 현재 포스코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이다. /더팩트 DB

◆ 포스코 외풍 차단막 필요

정부는 정치적 외압으로 권 회장이 사퇴했다는 시선이 달갑지 않다. 포스코는 지난 2000년 10월 정부가 갖고 있던 마지막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하면서 완전 민영화됐다. 현재 포스코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11.08%)이며 외국인 지분율은 57%에 달한다.

권 회장 사임으로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장이 바뀌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역대 포스코 회장 7명 모두 정권과 불화로 임기 못마쳤다. 전임 회장들 사임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그 시기가 정권 교체와 맞물려 있다는 게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정부가 포스코 최고경영자를 사퇴에 이르게 했다고 볼 수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게 중론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 KT 등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들은 특성상 주인이 없다 보니 외풍에 취약한 구조를 갖는다.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들이 교체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일이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권이 간섭할 수 없도록 강력한 대주주를 만들거나 정권과 관계에서 자유로운 인물을 선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권 회장이 정치적 배경 외에도 각종 비리 의혹 때문에 임기를 채우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권 회장은 MB 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포스코의 비리의혹과 포스코건설 사옥 헐값 매각, 국세청 세무조사에도 회장직을 놓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 2016년 포스코건설의 인천 송도사옥을 부영에 수의계약으로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각한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또 국세청의 세무조사도 강도 높게 진행 중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권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의 수사가 집중되자 임기 끝까지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특히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황 회장이 수사기관 조사를 받은 것을 보고 사퇴 의사를 밝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에서도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한 것이 권 회장 측근으로 구성된 이사회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 시민단체는 "포스코 이사회는 권 회장 측근으로 구성된 거수기"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jangb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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