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그룹이 발표한 지배구조 재편안에 대해 4일 보도자료를 내고 "주주를 비롯한 이해 관계자를 위한 추가조치가 필요하다"며 개입 의사를 드러냈다. /더팩트 DB |
'주주 이익' 강조한 엘리엇.. 현대차 지배구조 재편 걸림돌 될까
[더팩트 | 서재근 기자]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지배구조 재편안에 대해 "이해 관계자를 위한 추가조치가 필요하다"며 개입 의사를 드러냈다.
이미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 합병 당시 양사 간 합병 비율 산정 문제를 두고 법정 공방까지 벌인 바 있는 엘리엇의 '깜작 등장'이 앞으로 전개될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추진 과정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 2015년·2018년 '공통 화두 = 주주 이익 극대화'
엘리엇 계열 펀드의 투자 자문사 엘리엇 어드바이저스 홍콩은 4일 보도자료를 내고 엘리엇 측이 현대모비스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에 10억 달러(약 1조500억 원) 이상의 보통주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대차그룹 출자구조 개편안은 고무적이지만 회사와 주주를 포함한 이해 관계인들을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이 지난달 28일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 대주주와 그룹사 간 지분 매입·매각을 통해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겠다"며 지배구조 재편안을 밝힌 지 불과 일 주일 만에 '주주로서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엘리엇은 지난 2015년 5월 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양사가 각각 이사회를 열고 제일모직이 기준주가에 따라 산출된 합병비율인 1:0.35로 삼성물산 주식 전량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합병을 진행한다고 발표한 지 일주일여 만에 기습 보도자료를 낸 바 있다. 엘리엇은 당시 "양사 합병 조건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현저히 불리하다"며 합병 반대 견해를 내비쳤다.
물론 엘리엇이 삼성과 노골적으로 대립각을 세웠던 3년 전과 비교하면 차이점이 있다. 엘리엇은 이번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재편과 관련해 "지속가능한 기업구조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며 환영하는 목소리를 냈다. 아울러 엘리엇은 현대차 측에서 지배구조 재편 일환으로 제시한 합병안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엇 측이 합병 대상이 되는 회사 주주로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것을 주문한다는 점에서는 과거 삼성 때와 상황이 닮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달 28일 정몽구 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 대주주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기존 4개의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내놨다. |
◆ '삼성물산·제일모직'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데자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재편안 핵심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의 투자 및 핵심부품 사업과 모듈·AS부품 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해 모듈·AS부품 사업 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0.61대 1 비율로 합병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합병 현대글로비스 신주가 추가 거래되는 7월 말 이후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이 기아차(16.9%)와 현대제철(0.7%), 현대글로비스(5.7%)가 보유중인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 전부를 매입해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4개 순환출자고리를 모두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시장 관심은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갖고 있는 엘리엇의 향후 행보다. 양사 분할합병은 오는 5월 29일로 예정된 각사 임시 주주총회에서 승인여부가 결정된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엘리엇 요구에 "기업가치와 투자자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속해서 노력하고 국내외 주주들과 충실히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주총을 앞두고 엘리엇 측이 '현대모비스에 주주 이익' 논리를 앞세워 합병 비율 조정 등을 요구하며 반대 견해를 밝힐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날 엘리엇 측은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보통주를 1조500억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회사별 지분액은 제시하지 않았다. 세 회사 시가총액이 70조 원을 웃도는 만큼 업계에서는 엘리엇이 확보한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2%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시 주총에서 분할합병 건이 통과하려면 '의결권 있는 주식 보유 주주 3분의 1 참석, 참석 지분의 3분의 2 찬성'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에 따라 2%에 못 미치는 엘리엇 측의 반대표만으로는 합병을 막을 가능성은 사실상 크지 않다. 그러나 엘리엇이 외국인 투자자와 소액주주들을 상대로 설득에 나선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합병 당시 일부 소액주주들을 설득해 주권을 위임받은 것은 물론 외국계 주주들을 설득해 법정 공방에 나선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