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등 유통처에서 판매하는 특가 및 기획 세트 생리대 상품이 제조 일자와 제품 성분을 제대로 표기하지 않아 소비자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상품 어디에서도 제조 일자와 성분 표기를 찾을 수 없는 유한킴벌리 화이트 기획 세트. /안옥희 기자 |
LG유니참-깨끗한나라-한국 P&G 등도 정보 표기 안해…'소비자 알 권리' 침해
[더팩트ㅣ안옥희 기자] "저렴한 기획 세트라도 여성 생활필수품인데 제조 일자와 전 성분 표기는 필수 아닌가요?"
대형마트 생리대 판매대에서 만난 여성 소비자들의 주된 반응이다. 생리대는 한 여성이 평생 사용하는 개수가 무려 1만여 개에 달할 만큼 일상생활과 밀접한 제품이다. 그러나 상당수가 생리대 사용기한과 성분 등 기본 정보를 모른 채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생리대 제조업체들이 판매에만 열중하고 정작 여성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는 '나 몰라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생리대 정보 비대칭'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생리대 유해성 논란으로 환불사태와 불매운동까지 일어날 만큼 생리대 안전성 문제는 중요한 사회적 화두가 됐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생리대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몸에 접촉하는 물품인 특징을 감안하면 표시되지 않은 성분으로 알레르기 등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 생리대 제조업체들이 판매에만 열중, 중요한 정보 제공은 '나 몰라라' 지적
이 가운데 생리대 제조업체들이 대형마트 등 유통처를 통해 판매하는 특가 및 기획 세트 생리대 상품이 제조 일자와 전 성분을 제대로 표기하지 않아 소비자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으며 주 고객층인 여성의 건강권 보호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팩트>가 지난달 28일과 29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 3곳(롯데마트‧이마트‧홈플러스)을 취재한 결과 유한킴벌리, LG생활건강의 자회사 LG유니참, 깨끗한나라, 한국P&G 등 생리대 제조업체의 생리대 기획 세트 상품 상당수가 최종 포장지에 제조 일자와 모든 성분이 표기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리대 제조 일자 및 성분 미표기는 일부 업체가 아닌 업계 전반의 문제다. 상품을 단품에서 두 개 이상 묶은 기획 세트에 새로운 포장지(비닐 또는 상자)가 덧씌워지면 제조 일자와 성분 정보를 확인하기가 불가능하다. 업체들이 최종 포장지에는 제조 일자 등 정보 표기를 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제품의 전체 성분을 확인하기 위해 각 회사 홈페이지에 직접 접속해야 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안옥희 기자 |
특가 및 기획 세트는 보통 생리대 두 개 이상 상품을 비닐 또는 박스에 담아 묶음 포장 형태로 판매한다. 상품구성은 동일상품 '1+1' 또는 '2+1'부터 소형‧중형‧대형 등 여러 크기 상품을 합쳐놓는 등 업체‧브랜드마다 천차만별이다.
생리대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기획 세트를 포장해 마트에 납품한다. 기획 세트 포장과 관련해 정해진 규칙이 따로 없어 각 업체가 내용물 구성과 포장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은 단품에선 확인할 수 있었던 제조 일자와 주요 성분이 비닐 또는 박스형태의 최종 포장을 거치면 사라진다는 점이다.
기자가 시중에 판매되는 생리대를 확인한 결과 유한킴벌리 '화이트‧좋은느낌', LG유니참 '바디피트‧쏘피‧한결‧귀애랑', 한국P&G '위스퍼', 깨끗한나라 '릴리안‧순수한면' 등이 기획 세트가 아닌 단품 형태에서는 제조 일자와 주요 성분을 겉 포장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상품들이 두 개 이상 상품을 담는 기획 세트로 묶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획 세트로 포장하는 과정에서 비닐 또는 박스로 새로운 포장이 덧씌워지는데 이로인해 단품 포장지의 제조 일자 및 성분 표기 부분이 가려지는 것이다. 업체 대부분이 기획 세트용 포장지에는 제조 일자와 성분 정보를 따로 기재하지 않아 기획 세트 상품 구입할 때 생리대 정보를 확인하는 게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다.
◆ 두 개 이상 상품 기획 세트에선 제조일자와 성분 안 보이게 포장
단품의 제조 일자 및 성분 표기가 완전한 것도 아니다. 제조 일자 표기 위치가 업체와 브랜드별로 제각각이다. 또한 겉 포장지에 부직포, 펄프, 폴리에틸렌필름 등 일부 재료만 표기돼 있어 전 성분을 확인하려면 업체 홈페이지에 직접 접속해야만 한다.
A 대형마트 생리대 행사상품 매대에서 만난 30대 주부는 기획 세트 상품이 단품보다 수량이 많고 더 저렴해 자주 구매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체가 충분한 제품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는 "왜 하나같이 제조 일자와 성분을 안 보이게 포장해놨는지 모르겠다"며 "가격할인을 떠나 신체에 직접 닿는 제품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쓸 수 있도록 모든 포장지에 정보 표기가 필수라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트 생리대 기획 세트에선 제조 일자와 주요 정보를 찾아보기 어렵다. 업체들이 대체적으로 사진 속 적색 원 부분에 제조 일자를 표기하고 있으나 겉 포장지를 모두 뜯지 않는 한 확인이 불가능하다. /안옥희 기자 |
B 대형마트에서도 포장지로 인해 제조 일자와 전 성분 정보가 가려진 생리대 기획 세트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묶음 포장된 사각기둥 형태의 생리대 기획 세트에서 제조 일자 등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은 C 대형마트도 마찬가지였다.
취재진이 마트 판매 직원에게 박스에 담긴 생리대 기획 세트 상품의 제조 일자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묶음 포장돼 있어 이대로는 정보 확인이 어렵다"면서 박스를 개봉해서 제조 일자를 직접 확인해줬다. 두 개 이상 상품이 묶음 포장된 기획 세트는 대개 상품이 맞물리는 측면에 제조 일자가 찍혀 있어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포장지를 반드시 개봉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생리대 업체들은 기획 세트도 소비자가 원하면 이 같은 방식으로 정보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이 과정이 반복된다면 상품가치 훼손 우려는 물론 위생용품의 '위생'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기획 세트 제품을 구입할 때 제조일과 성분 확인을 할 수 없도록 제조 업체들이 포장한다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빨리 소진하기 위해 특가나 기획 세트로 묶어 판매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사용기한 임박 물품' 저렴 특가상품 만든 후 제조일자 확인 어렵게, '꼼수' 포장?
의약외품으로 분류되는 생리대의 정확한 사용기한은 제조일로부터 3년이다. 소비자들은 보통 대량 구매해 장기간 사용하므로 최신 제조일자를 선호한다. 직장인 최 모 씨는 "생리대는 계속 쓰는 물품이고 매번 사러가기 번거로워 특가상품이나 기획세트를 평소 대량 구매하는 편"이라며 "혹시 사용기한이 임박한 물품을 저렴한 특가상품을 만든 후 제조 일자를 확인할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포장하는 '꼼수'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생리대 업체들은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마트로 들어가는 특가 및 기획 세트는 대량 구매해서 저렴한 편"이라며 "가격경쟁력과 프로모션으로 제품 회전율이 높아 단품보다 최신 제조 일자 제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생리대 업체들은 기획 세트 등 최종 포장지에 제조 일자 표기를 누락한 것은 업계 전반의 관행이며 현행 약사법에 어긋나는 사항도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관계자도 "제조 일자 등 정보 누락은 비단 생리대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식품‧생활용품 등 다른 기획 세트에서도 흔히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생리대 제조업체들이 판매에만 열중하고 정작 여성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정보 제공 책임은 '나 몰라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옥희 기자 |
그러나 소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평균적으로 매달 3~10일 40여 년 동안 생리대를 사용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생리대는 단순한 생활용품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직장인 이 모 씨는 "다른 제품은 신체에 직접 닿지 않고 다른 제품으로 바꿀 선택의 폭이 넓다"며 "그러나 생리대는 평소 쓰던 것을 장기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점유율 1위 업체 유한킴벌리 "기획 세트 상품 제조일자 누락, 규정 위배 아니다"
지난해 8월 생리대 파동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깨끗한나라는 기획 세트 포장지의 제조 일자를 표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규정에 위배되지 않지만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현재 홈페이지를 통해 생리대 모든 성분 표기를 하고 있으며 포장에도 모든 성분 표기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생리대시장 점유율 1위 업체 유한킴벌리는 "일부 특가 및 기획 세트 상품의 제조 일자가 누락된 것은 규정에 위배되는 사항은 아니다"면서도 "소비자가 불편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해 내부적으로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10월부터 '의약외품 표시에 관한 규정' 개정안 시행으로 생리대 본품 뿐 아니라 최종 포장지에도 제조 일자와 모든 성분 표기가 의무화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 생리대 업체들은 규정에 따라 제조일자 등 정보를 표기한 새로운 패키지를 만들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약사법 개정으로 그동안 만연했던 생리대 제조사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 문제가 해소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