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열린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선고 재판에서 재판부로부터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이덕인 기자 |
[더팩트 | 서울고등법원=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세상과 격리됐던 1년여 동안의 수감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부회장의 석방 여부가 달린 '운명의 날' 법정에 총집결한 삼성 수뇌부들은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확정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이날 오후 2시 이 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등 삼성 전현직 임원 5명의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선고 재판이 치러지는 법원 청사에는 정현호 삼성전자 사장과 이인용 삼성사회봉사단장을 비롯해 삼성전자 임원진 등 회사 수뇌부가 집결했다. 이 가운데 재판정에 마련된 지정석에 앉아 재판을 지켜보던 이 사장 등은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각각의 혐의에 관해 양형 이유를 설명할 때마다 귀를 기울이며 긴장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피고인들의 표정에서도 이날만큼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재판 시작 10여 분 전부터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이 부회장은 재판 시작 때까지 말없이 정면을 응시한 채 경직된 자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된 지 20여 분이 흐르고, 재판부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에 대한 증거가치에 관해 설명하면서부터 분위기는 달라졌다. 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이뤄진 대화 내용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가 되기 위해서는 (안 전 수석의) 수첩 내용 자체의 진실 여부가 매우 중요하지만, 재판과정에서 이는 밝혀지지 않았다"며 "독대 당시 대화 내용을 사실로 인정할 증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뇌물죄' 성립의 근거로 판단한 삼성의 '포괄적 현안'과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잉의 '부정한 청탁'에 관해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며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성락 기자 |
이 외에도 재판부는 특검이 항소심에서 공소장을 변경, 예비적으로 추가한 제3자뇌물죄 부분은 물론, 1심 때부터 핵심 쟁점으로 다뤄진 '포괄적 현안·묵시적 청탁'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이 포괄적 현안으로서 (이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인지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원심에서 유죄로 판단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과 재산국외도피 부분 역시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뇌물공여를 비롯해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 상 횡령 ▲특경가법상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5가지 혐의 가운데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한 부분은 삼성전자가 코어스포츠에 용역비로 보낸 36억 원과 마필 및 마필 운송 차량에 관한 '사용 이익'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무죄 판단했다. 국회 위증 혐의의 경우 일부 진술 내용에 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정 부장판사는 "특검에서 주장하는 포괄적 현안과 부정한 청탁 모두 존재를 확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며 "일부 개별 현안의 경우 이 부회장 개인에게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이 역시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판단을 달리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의 석방이 확정되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삼성 관계자들 가운데 일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현호, 이인용 사장 역시 재판 결과에 관해 묻자 "감사합니다"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안도감을 감추지 못했다. 외부 상황도 급박하게 돌아갔다. 법정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회사 관계자들은 재판정에서 나오는 이 부회장 등을 보좌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이 부회장과 함께 뇌물공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 박상진 전 사장에게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황성수 전 전무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