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사성 처음으로 총수 공백 상태로 새해 시작을 맞이한 삼성의 변화에 재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더팩트 DB |
재계 서열 1위 삼성은 지난 2017년 한 해 말 그대로 '격변의 1년'을 보냈다.
2017년 2월 회사 창립 79년 만에 총수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이후 지난해 4월부터 '새 리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집무실이 아닌 구치소와 법정을 오가는 사이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은 자취를 감췄다. 일부 삼성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입에서 '잃어버린 1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 역시 이 같은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나마 반도체 호황을 발판 삼은 반도체 부문에서 분기마다 최다 실적을 갈아치우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시장 안팎에서는 과거에 뿌린 씨앗을 수확하는 '예고된 호실적'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최고의사결정자의 부재로 신성장동력 발굴에 차질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삼성이 사상 처음 총수 부재 상태로 무술년 새해를 맞이한 가운데 재계의 눈과 귀는 올 한 해 삼성이 구상하는 '플랜 B'에 쏠리고 있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지난 1995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회사에서 제작한 무선전화 15만 대, 당시 시가 기준으로 무려 500억 원가량 물량을 직원들 앞에서 전량 소각했다. '애니콜'의 전신이었던 무선전화의 불량률이 11%에 달하자 이 회장이 직원들 앞에서 '품질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거행한 '화형식'은 오늘날까지 삼성의 '신경영 선언'의 일례로 회자되고 있다.
'탈권위', '자율경영', '실용주의'를 강조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기조는 지난해 11월 단행된 삼성전자의 정기 인사 및 조직 개편 등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
지난 2014년 이 회장의 와병 직전까지도 '신경영 선언'을 근간에 둔 이 회장의 '일등주의'와 위에서 밑으로 전해지는 전형적인 '톱다운' 방식의 경영 방식은 삼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룹의 얼굴을 자처,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면서부터 삼성의 조직문화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탈권위', '자율경영', '실용주의'를 강조한 이 부회장의 경영 기조가 그룹의 조직 개편 등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시작했고, 이 같은 삼성의 변화는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최후 진술의 기회를 얻은 이 부회장은 "계열사의 지분을 얼마만큼 확보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만큼 경영을 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병철의 손자', '이건희의 아들'이 아닌 성공한 기업인으로 대내외적으로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고 강조한바 았다. 선대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그의 경영 철학은 지난해 11월 삼성전자에서 단행한 정기 임원 인사와 조직개편에서도 상당 부분 반영됐다. 2018년도 정기 인사에서 삼성은 계열사별 '각자도생' 시스템을 도입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계열사 간 의사소통 방식에도 이재용 부회장이 강조한 '자율경영' 기조가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계열사 간 의사소통 방식에도 이 부회장이 강조한 '자율경영' 기조가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결과물은 새로 신설된 '사업지원 TF'다. 삼성전자 측에서는 새 조직이 만들어진 경위에 관해 "각 회사 및 사업 간 공통된 이슈에 대한 대응과 협력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협의하고 시너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조직이다"며 구조조정본부에서 전략기획실을 거쳐 미래전략실로 명맥을 이어 왔던 기존의 '중앙조직'과는 탄생 목적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사업지원TF의 경우 기존 미전실에서 주관한 법무, 홍보, 감사, 금융지원 등의 업무는 주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각 계열사 CEO의 주도로 추진되는 주요 경영현안이 원활하게 시행에 옮겨지도록 지원하는 서포터 역할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삼성 측은 사업지원TF의 수장인 정현호 사장의 역할을 두고 "CEO 보좌 역할을 주도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업지원TF가 실제로 어떤 업무를 맡을지는 아직 확정할 수 없지만,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으로 정체에 빠진 대규모 M&A나 연구개발(R&D) 투자 등 주요 현안에 관해 앞으로는 각 계열사 CEO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유기적이고 능동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