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현직 임원 5명의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재판이 27일 결심 공판을 끝으로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더팩트 DB |
이재용 항소심 27일 종지부…재판부 판단만 남았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재판이 27일 마지막 변론을 끝으로 재판부의 판단만을 남겨두게 됐다.
'삼성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을 두고 지난 4월 1심 첫 재판을 기점으로 8개월여 동안 쉼 없이 진행되온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삼성 양측 간 법리 다툼은 항소심이 막바지에 접어들 때까지도 여전히 평행선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가 성립돼야 한다는 특검의 견해와 애초부터 '부정한 대가 합의'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삼성 측 주장에도 변함은 없다.
변화가 있다면, 지난 3개월여 동안 진행된 항소심에서 특검이 공소장을 세 차례에 걸쳐 변경했다는 점이다. 지난 1심 때를 포함하면, 네 번째다. 특히 특검은 마지막 네 번째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결심을 단 일주일 앞으로 남겨둔 시점에 재판부에 제출했다.
수차례에 걸친 수정 작업을 거쳐 특검이 내린 결론은 크게 두 가지로 1심에서 '단순뇌물죄'로 판단한 삼성의 승마지원에 관해 '제3자 뇌물죄'를 예비적으로 추가한다는 것과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횟수가 '3번'이 아닌 '4번'이었다는 이른바 '0차 독대'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특검은 2심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2014년 9월 12일 청와대 안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했다는 내용으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
이를 두고 변호인단 측은 '백지 공소장'이라는 표현과 함께 "(피고인들의) 방어권을 철저히 무시한 기습적인 행태"라며 강한 어조로 반발했지만, 재판부가 특검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법조계와 재계 안팎의 관심은 '새로 바뀐' 공소장에 대한 2심의 법리해석에 쏠리고 있다.
'단순뇌물죄냐 제3자 뇌물죄냐'의 문제는 이미 1심 때부터 주요 쟁점으로 다뤄진 내용이다. 단순뇌물죄는 공무원이 뇌물을 수수했을 때 성립한다. 즉, 삼성의 승마지원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볼 수 있는 지가 판단 기준이 된다. 반면, 제3자뇌물죄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했을 때 성립한다. 다시 말해 '삼성→청와대→최순실'이라는 뇌물 공여자와 수수자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는 사실이 증명돼야만 한다.
'삼성의 승마지원을 제3자 뇌물죄로도 볼 수 있다'는 특검의 새 주장의 근거가 바로 '0차 독대'다. 특검은 그간 '비선 실세' 최순실 씨와 사전에 공모한 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4년 9월 15일 독대 때 이 부회장에게 승마 및 재단 출연금 지원 등을 요구했다고 주장해왔지만, 결심 직전 이 부회장이 먼저 청와대 안가에서 경영권 승계 등 현안에 관해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했다는 쪽으로 주장을 달리했다.
지난 18일 증인으로 출석한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안가 독대가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 결정적인 증거라는 게 특검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안 전 비서관이 신문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휴대전화번호를 알게 된 구체적인 경위는 물론 '0차 독대'가 이뤄진 시점조차 특정하지 못하면서 그의 진술은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더욱이 이 부회장이 청와대 안가에 출입했는지도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0차 독대'를 제외한 1~3차 독대에 관해서는 이미 1심 때에도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는 사실을 입증할만한 증인들의 진술도, 어떠한 직접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는 이 부회장의 1심 재판 당시 각각 출석과 증언을 거부한 바 있지만, 최 씨는 최근 진행된 항소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특검이 제기한 '말 세탁' 의혹에 관해 "사실이 아니다"며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
'부정한 청탁'의 존재 여부와 관련해 유의미한 진술은 되레 특검이 본건 뇌물공여 사건의 '공모자'로 지목한 최 씨의 입에서 나왔다. 삼성 측에서는 1심 때부터 적극적으로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에 관해 증인신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특검에서 뇌물을 '준 쪽'을 특정하고 유죄를 주장한다면, '받은 쪽'에 대한 철저한 신문을 통해 진위여부를 파악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직접 증거가 전무한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진술은 특검과 변호인단은 물론 법리해석을 내려야 하는 재판부에도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변호인단이 지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 재판주의'를 강조한 것 역시 '묵시적 청탁'을 확정할 수 있는 명확하고 직접적인 증거나 진술이 나오지 않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박 전 대통령의 출석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최 씨는 최근 진행된 항소심 15차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승마 특혜' 의혹에 관해 "마필과 마필운송차량의 소유권은 처음부터 삼성에 있었다"며 특검이 제기한 '말 세탁'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지난 2015년 8월 삼성이 코어스포츠와 체결한 용역계약 및 마필 매매·교환 계약이 허위라고 판단, 이 부회장에게 '범죄수익 은닉' 혐의를 적용한 1심과 다른 법리 해석이 나올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다.
한편, 이 부회장 등의 항소심을 심리하는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27일로 예정된 17차 재판에서 피고인 신문과 변호인 의견 진술, 피고인 최후진술에 이어 검찰의 구형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