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과 르노삼성자동차가 올해 '신차부재·실적하락·수장교체'의 평행이론을 걷고 있다. 사진은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 도미니크 시뇨라 르노삼성차 사장 예정자, 박동훈 르노삼성차 사장, 제임스 김 전 한국지엠 사장(왼쪽위부터 시계방향). /한국지엠, 르노삼성자동차 제공 |
[더팩트ㅣ이성로 기자]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자동차(이하 르노삼성차)가 하반기에 약속이라도 한 듯 부침을 겪고 있다. 두 업체 모두 올해 신차 부재로 인한 실적 하락 견디지 못해 수장을 외국인으로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차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지엠은 지난달 역대급 최악 성적표를 받았다. 9월 한 달간 총 4만264대(내수 8991대, 수출 3만1273대)를 판매했는데 내수 시장에서 전년 동월(1만4078대)과 비교해 36.1%나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1월(9279대) 이후 처음으로 1만 대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달 소형 SUV인 트랙스를 제외한 모든 차종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르노삼성차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달 모두 2만6182대(내수 7362대, 수출 1만8820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93.1%, 수출만 놓고 보면 334.1% 증가했지만, 내수 시장은 20.2% 떨어지며 국내 완성차 업계 최하위 성적에 그쳤다. 볼륨 모델인 SM6의 실적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고, 지난 7월 페이스리프트를 마친 QM3 역시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1년 만에 내수 판매 최하위로 돌아간 르노삼성차는 수장 교체를 선언했다. 르노삼성차는 20일 '31일 자로 현 박동훈 대표이사가 사임하고 도미니크 시뇨라 CEO가 다음 달 1일자로 새로운 대표이사를 맡게 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4월 대표이사직에 오른 박동훈 대표는 SM6와 QM6를 성공적으로 출시시키며 전년과 비교해 두 배 이상의 내수 실적을 달성했으나 올해 계속된 성적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사임하게 됐다.
한국지엠 역시 지난 8월 임기를 마친 제임스 김 사장에 이어 카허 카젬 당시 GM 인도 사장을 한국지엠 사장 겸 CEO로 임명했다. 카젬 신임 사장은 인도에서 GM 철수 작업을 이끈 인물이다. GM의 한국 시장 철수설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카젬 사장은 취임 이후 노조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동시에 "한국은 전 세계 쉐보레 시장 중 다섯 번째로 큰 시장이자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가운데 하나이다"며 한국지엠 철수설을 반박했다.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차는 각각 카허 카젬(왼쪽), 도미니크 시뇨라 대표이사로 수장을 교체하며 새롭게 출발했다. /한국지엠, 르노삼성자동차 제공 |
업계에선 두 업체의 부진이 예상된 결과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두 업체 모두 마땅히 눈에 띄는 신차가 없어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지엠은 올해 신형 크루즈와 볼트EV를 내놓았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크루즈는 기존 준중형 세단과 비교해 높은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았고, 전기차 볼트EV는 출시 초기만 해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지만, 물량 확보가 쉽지 않으면서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르노삼성차 역시 신차 가뭄에 시달렸다. 지난해 SM6, QM6의 연이은 출격으로 내수시장 3위에 오르며 파란을 일으켰으나 올해엔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올해 6월 소형 전기차 트위지를 내놓았으나 기대했던 모델은 아니었다.
애초 르노삼성차는 전 세계에서 1300만대 이상 팔린 소형 해치백인 클리오에 많은 기대를 했다. 박동훈 사장은 2017 서울모터쇼에서 "클리오의 사랑스러운 디자인과 감성으로 촉발되고 새로운 유행으로 번질 것"이라며 클리오의 목표 판매량을 7000대로 설정했다. 하지만 유럽 공장에서의 물량 확보가 쉽지 않아 내년으로 연기한 상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역시 두 업체의 부진을 눈에 띌만한 '신차'와 '킬러 모델' 부재로 꼽았다.
김 교수는 <더팩트>와 전화통화에서 "한국지엠, 르노삼성차 모두 올해 신차가 없었고, 회사를 대표하는 '킬러 모델'이 없었던 것이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다"고 밝혔다.
르노삼성차의 경우, 클리오 출시 연기가 뼈아팠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SM6를 이을 후속 모델로 클리오가 기대됐다. 애초 6월에 출시됐다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출시가 계속 연기되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고 말했다.
김필수 교수는 르노삼성차와 한국지엠의 부진 원인으로 신차 부재를 꼽았다. 르노삼성의 클리오는 유럽 현지 물량 부족으로 출시가 늦어지고 있고, 한국지엠의 신형 크루즈는 동급 차량과 비교해 높은 가격으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르노삼성차 제공, 더팩트 DB |
한국지엠에 대해선 "올해 신형 크루즈가 나왔는데 가격이 다소 높게 책정됐다. 동급 차종과 비교해 가격, 성능 면에서 어느 하나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 가성비를 높게 생각하는 최근 소비자들의 마음을 가져가기엔 여러모로 부족하다. 중형 SUV인 에퀴녹스를 도입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한국지엠을 대표할 모델로 성장하진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난관에 봉착한 르노삼성차와 한국지엠. 김 교수가 생각하는 돌파구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르노삼성차에 대해 "내년에 클리오가 출시된다면 반등의 기회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완성차 업계에서 마케팅에 관해 귀재라고 불리던 인물인 박동훈 사장의 부재가 아쉬울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외국인 사장이 빠르게 국내 시장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지엠은 경영 효율화가 우선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현재 한국지엠은 악재가 누적되고 있다. 노사 갈등을 비롯해 2년 연속 적자 경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엠의 의무경영도 끝난 마당에 마땅한 '킬러 모델'도 없는 상태다. 현재로선 경영 효율화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고정 비용을 줄이는 게 급선무인데 공장·인력 구조조정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지엠본사는 2002년 당시 대우차를 인수하면서 15년 동안 경영권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16일 이후로는 지분 보유 의무가 없어졌다. 악재가 끊임없는 한국지엠의 철수설이 나도는 배경이다.
김 교수는 두 업체의 수장 교체에 아쉬운 마음을 나타냈다. 그는 "사실 현지인이 대표를 맡아서 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자국인 사장은 아무래도 현지 정서에 익숙하고 시장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은 쉽지 않다. 외국인이 취임하면 현지 상황을 파악하는데 최소 6개월은 걸릴 수 있어 자칫 허송세월을 보낼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평행이론을 나타내는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차가 수장 교체 이후 반전을 마련할 수 있을 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