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개별소비세를 인상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흡연자들은 청와대에 청원서까지 보내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이성로 기자] 지난 8월부터 시작된 '찌는 담배'인 궐련형 전자담배의 세금 인상 움직임이 결국 현실화되고 있다. 가열 전자담배를 출시한 업계 관계자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고 일부 흡연자들은 청와대에 국민 청원서까지 제출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20일 전체회의를 열고 궐련형 전자담배 개별소비세(이하 개소세)를 인상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개정안이 다음 달 9일 열리는 국회 본회마저 통과된다면 12월 중순부터 인상된 세금이 적용될 예정이다. 현재 한 갑당 126원인 궐련형 전자담배의 개소세는 일반 담배(594원)의 90% 수준인 529원으로 오르게 된다.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등 담배에 붙는 세금도 동일한 수준으로 인상된다면 궐련형 전자담배 전용 연초는 최대 6000원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은 단단히 뿔났다. 청와대에 궐련형 전자담배(아이코스)의 세금 인상을 철회해 달라는 국민 청원서까지 제출한 상태다. 지난 20일 시작된 청원은 24일 오전 1시 현재 274명이 동의한 상태다.
청원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정부 때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세금을 대폭 인상했음에도 흡연자는 줄지 않았는데 조금이라도 덜 해로운 궐련형 전자담배의 세금은 일반 담배보다 상대적으로 낮추어서 연초 흡연자율을 줄이도록 권장하는 것이 정말로 목적에 맞는 처사가 아니냐'고 토로하고 있다.
이어서 '담뱃세로 확보한 세금을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를 위해 사용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금은 늘어나고 있고, 금연구역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흡연구역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비흡연자가 간접 흡연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할 권리만큼이나, 흡연자가 흡연함으로써 행복할 권리도 중요하다'며 '단순히 세금 늘려보려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정책이 아니라, 정말 실질적으로 국민들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의 시행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궐련형 전자담배 흡연자들은 지난 20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궐련형 전자담배(아이코스)의 세금인상 철회와 담뱃세의 흡연자/비흡연자 모두를 위한 사용을 청원합니다'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24일 오전 1시 현재 274명이 동의한 상태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은 "세금을 또다시 올리면 소비자로선 큰 부담이다", "세금을 올린다고 금연자 수가 늘 것 같지는 않다", "2년 전 담뱃값이 올랐는데 담배로 늘어난 세금이 어디에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길거리에 변변한 흡연실도 보기 힘들다"며 정부에 불만과 불신을 토로하고 있다.
아이코스, 글로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세금 인상 소식을 전해 들은 카페 회원들은 '건강에 더 나쁜 담배를 강요받는다', '더 해로운 일반담배로 다시 갈아타야 하나', '흡연자들이 봉인가', '흡연자가 돈줄인가' 등 불만의 댓글이 폭주하고 있다.
대부분 카페 회원은 담뱃값이 올라도 금연하거나 일반 연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정부 정책에 불만은 커져만 가고 있다. '아이코스 코리아'에선 '히츠 가격 인상에 대한 당신의 선택은?'이란 여론 조사를 했는데 투표에 참여한 99명 가운데 54명(54.55%)의 궐련형 전자담배 흡연자는 '세금이 인상돼도 필 것이다(더러워도 그냥 핀다)'고 답했다. '일반 연초로 돌아간다'가 20표(20.20%), '이번 기회에 금연에 도전한다'는 25표(25.25%)를 받았다.
아이코스와 글로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엔 정부의 세금 인상에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이코스코리아, 글로코리아 캡처 |
관련 업계 역시 울상이다. 세금 인상이 확정되면 수익성을 위해 가격 인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자칫 수요 감소 및 시장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됐던 결과지만, 세금 인상이 현실화되자 업계 관계자들은 난감하기만 하다.
국내 담배 업계에서 가장 먼저 궐련형 전자담배를 출시한 한국필립모리스 관계자는 <더팩트>와 전화통화에서 "현재 개소세 인상만 논의된 상황이다. 지방세와 건강증진부담금 등에 대해선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확정되면 본사와 협의 하에 가격을 결정할 것이다"며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세금 인상안이 진행 중인 만큼 가격 인상에 대해선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다.
지난 8월 글로를 출시한 BAT 코리아 측은 가격 인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예상은 했다. 가격 인상에 대해선 기존 입장과 같다. 고려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지금 당장 가격이 '오른다', '오르지 않는다'고 확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향후 상황을 지켜보고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고 밝혔다. BAT 코리아 관계자는 지난 8월 글로 출시 행사에서 '세금이 올라가면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음 달 궐련형 전자담배 '릴' 출시를 앞두고 있는 KT&G 관계자는 "정부 정책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다. 기기나 담배 가격에 대해선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정부의 궐련형 전자담배 세금 인상 소식에 관련 업계는 난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성로 기자, 더팩트 DB |
현재 4300원에 판매되는 궐련형 전자담배 1갑에 붙는 세금은 담배소비세(528원)와 지방교육세(232.2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438원), 개소세(126원), 폐기물부담금(24.4원), 부가가치세(391원) 등을 합쳐 약 1739원으로, 일반 담배 세금(3318원)과 비교해 절반 수준이다.
여·야가 합의를 마친 개소세를 비롯해 지방세, 건강증진부담금 등도 일반 담배와 비슷한 수준으로 조정된다면 궐련형 전자담배에 붙는 세금은 현재보다 1247원 오른 2986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금 인상 후 판매 가격은 제조사의 몫이지만, 가격 인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아이코스를 내놓은 필립모리스나 글로를 출시한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는 궐련형 전자담배 연구·개발에 각각 30억 달러(약 3조4000억 원), 15억 달러(약 1조7000억 원)란 거금을 투자했다. 연초 제조원가 역시 일반 담배 연초와 비교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업계에선 연초 가격이 최소 5000원대에서 최대 6000원대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편,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아이코스와 글로 등 궐련형 전자담배의 시장 점유율을 약 1%로 보고 있다. 특히, 서울 지역 내 편의점 기준으로 아이코스의 전용 연초인 '히츠' 점유율은 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