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8일 전체회의를 열고 전자담배의 개별소비세 인상안을 다시 논의했지만 공방만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 23일 여야 합의로 조세소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이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않으면서 뒷말이 무성하게 나오고 있다. /한국필립모리스, BAT 코리아 제공 |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찌는 형태의 전자담배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해성이 기존 궐련형 담배보다 적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런 전자담배가 요즘 논란의 중심에 섰다. 궐련형 담배보다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 전자담배의 세금 인상 법안 상정이 한 차례 연기되면서 논란에 불이 붙게 됐다.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여야의원 만장일치로 궐련형 전자담배 한 갑당 126원의 개별소비세를 594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현재 4300원에 판매되는 궐련형 전자담배 1갑에 붙는 세금은 담배소비세(528원)와 지방교육세(232.2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438원), 개별소비세(126원), 폐기물부담금(24.4원), 부가가치세(391원) 등을 합쳐 약 1739원으로, 일반 담배 1갑에 붙는 세금 3347원의 절반 수준이다. 전자담배가 큰 인기를 끌자 유해성과 담배 유형 등을 지적하며 궐련형 담배와 같은 세금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국회와 기획재정부는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궐련형 전자담배도 궐련형 담배와 같은 세금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여야가 합의하면서 전자담배 개소세 인상 법안은 사실상 시행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다음 날인 23일 조경태(4선, 자유한국당 부산 사하구) 위원장이 여야가 합의한 전자담배 개소세 인상 법안을 상정하지 않으면서 제동이 걸렸다. 바로 뒷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야 합의로 소위를 통과할 경우 전체회의 자동 통과는 관례였던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조 위원장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전자담배 개소세 인상과 관련해 "해외 25개 나라는 궐련형 전자담배의 세율이 일반 담배의 50% 이하인데 우리는 100%로 동일하게 하겠다는 것"이라며 "국민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법안 처리를 보류시켰다. 여러 가지를 감안해 (의원들이) 합리적인 안을 제시해달라"고 밝혔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뒷말이 무성하다. 특정 기업이 조 위원장 측에 로비를 해서 법안 상정을 지연시켰다는 내용이다. 담배업계와 정치권의 말을 조합하면 로비를 했다는 특정 업체는 바로 전자담배 '아이코스'를 최초로 출시한 한국필립모리스다. 더구나 조 위원장의 A 보좌관과 필립모리스에서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B 부장과는 특별한 친분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조경태(왼쪽) 국회 기재위원장이 지난 23일 전자담배 개소세 인상안을 전체회의에 상정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조 위원장은 28일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전자담배 개소세 인상안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이새롬 기자 |
A 보좌관과 B 부장은 부산의 한 대학교 동문이다. 또, B 부장은 국회 보좌관 출신으로 A 보좌관과 함께 지역모임 멤버이다. 같은 대학, 보좌관 출신, 지역모임 멤버 등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는 데다 미묘한 시기에 두 사람이 만난 것이 알려지면서 '특정 업체로부터의 로비로 인한 연기'란 뒷말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A 보좌관과 B 부장은 이런 의혹에 대해 "소위에 들어갈 수 없으니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수준이었다" "(같은 모임, 보좌관 출신 등 인연으로 종종)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로비는 없었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일부에서 제기된 B 부장이 지난 22일 조 위원장 방을 오랜 시간 방문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CCTV라도 보여줘야 하나"라며 부인했다.
A 보좌관과 B 부장은 친분 관계 때문에 만나기는 했지만 전자담배 개소세 인상안과 관련한 얘기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 위원장도 불쾌한 심정을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그는 이런 의혹에 "불손하다"고까지 했다.
공교롭게도 관행을 벗어난 조 위원장의 결정에 이해당사자의 친분이 얽히다 보니 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뒷말이 나오는 것은 그동안 기업과 정치인, 그리고 보좌관 등으로 연결된 입법 로비 사건들이 심심찮게 있어왔던 것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이 서로 만날 수는 있지만, 민감한 시기에는 남들의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일반인의 상식이다. 더구나 법안이 통과되면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기업의 당사자와 법을 제정하는 국회 상임위원장 보좌관이 법안 상정을 앞두고 서로 만나서 일상적 얘기만 주고받았다는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전자담배 흡연자들은 국회의 개소세 인상은 과세 형평보다는 세수 확보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전자담배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선 인파. /이성로 기자 |
이번 전자담배 개소세 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부류이다. 첫 번째는 조세의 형평성이고, 두 번째는 세수 확보를 위한 흡연자 쥐어짜기 등이다. 이런 시선은 전자담배에 대한 조세가 세계적으로 50% 수준이거나 명확하지 않은 상황도 한 몫 한다. 또한, 지난해 갑자기 궐련형 담배 가격을 2000원이나 올린 탓도 있다.
어찌됐든 전자담배 개소세 인상안은 상임위에서 한 차례 연기됨으로써 8월 국회 통과는 어렵게 됐다. 이에 따라 경제적 이익을 보는 기업도 생기게 됐다. 옛말에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말이 있다. 오이가 익은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고 있으면 오이를 따는 것 같이 보이고, 자두(오얏)가 익은 나무 아래서 손을 들어 관을 고쳐 쓰려고 하면 자두를 따는 것 같이 보이니 남에게 의심받을 짓은 삼가라는 뜻이다.
조 위원장은 충분히 수긍할 만한 이유를 내세워 전체회의 상정을 늦췄다고 하지만, 오해를 부를 만한 정황들도 있는 건 분명하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을 생각한다면 관계자들은 처신에 신중을 기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