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17일 현재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장은 총 31곳으로 국민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사진은 16일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직원들이 판매 적합판정을 받은 달걀을 판매대에 진열하고는 모습. /임세준 기자 |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올해는 붉은 닭의 해인 '정유년'이다. '살충제 달걀' 파문이 불거지면서 다시 한번 올해가 닭의 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2016년 겨울부터 시작한 AI(조류인플루엔자)가 끝나지 않은 채 2017년을 시작한 터다. 그래도 붉은 닭의 기운이 좋을 일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고 다들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닭의 해인 올해는 유독 닭과 관련한 논란과 파문이 끊이지 않는다. 닭의 해가 맞긴 맞는 것 같다. 닭은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먹는 식자재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닭이 올해는 AI로 시작해 통닭 가격 인상을 지나 현재는 살충제 달걀 파문으로 이어졌다.
최근 벨기에산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사실이 알려지며 유럽 국가들이 큰 충격에 휩싸인 바 있다.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살충제 달걀 문제는 벨기에에 국한하지 않고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덴마크, 스위스 등에서 유통되거나 회수됐다. 심지어 마요네즈와 제빵 제품에서 살충제인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에서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살충제 달걀 파문은 최근 국내에서도 발견되면서 논란이 확산일로에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17일 전국 1239개 농가 중 876개 농가를 검사한 결과, 피프로닐과 비페트린 성분이 검출된 농가는 총 31곳이다. 31개 농장을 지역별로 보면 ▲울산 2곳(울주군 언양읍·울주군) ▲경기 16곳(양주시·화성시·이천시·남양주시·연천군·파주시·여주시·광주시·평택시 등) ▲대전 1곳(유성구) ▲충남 5곳(논산시·아산시·홍성군·천안시 등) ▲경북 1곳(칠곡군) ▲경남 3곳(창녕군·합천군 등) ▲강원 1곳(철원군) ▲광주시 1곳(광산구) ▲전남 1곳(나주시) 등이다.
달걀에 표시되는 지역번호는 서울(01), 부산(02), 대구(03), 인천(04), 광주(05), 대전(06), 울산(07), 경기도(08), 강원도(09), 충북(10), 충남(11), 전북(12), 전남(13), 경북(14), 경남(15), 제주(16) 등이다.
피프로닐이 검출된 농가는 경기 남양주 마리농장과 강원 철원 지현농장, 충남 아산 덕연농장, 경기 이천 정광면, 경기 양주 유천농장, 경기 파주 노승준, 경기 평택 조성우, 강원 철원 왕영호 등이다.
비펜트린 성분이 초과 검출된 농장은 울산 울주 미림농장, 한국농장, 충남 논산 서영농장 박명서, 충남 홍성 구운회, 경북 칠곡 지천영농조합법인, 경남 창녕 농업회사법인벧엘농장㈜, 연암축산, 경남 합천 온누리농장, 경기 화성 김순도, 김준환, 경기 양주 오동민, 경기 여주 농업회사법인조인 가남지점, 양계농장, 경기 광주 이석훈, 경기 파주 고산농장(주윤문), 경기 평택 박종선, 경기 이천 신둔양계, 광주 광산 병풍산농원(유창헌) 등 총 21곳이다.
농식품부는 이들 농장의 달걀에 대해서는 전량 회수·폐기 조치할 방침이다.
국산 달걀의 살충제 성분 파문이 확산하는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내 식당에서 영양사가 당분간 달걀 제공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는 내용의 알림 표를 붙이고 있다. /국회=이새롬 기자 |
문제가 된 피프로닐 성분은 벼룩·진드기 등 해충을 없앨 때 쓰는 맹독성 물질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은 이 성분이 인체에 무해하다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사람이 피프로닐을 다량 섭취할 경우 신장·간·갑상선 등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사람들이 살충제 달걀에 불안감을 드러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살충제 달걀 파문은 당장 식탁에 불어 닥쳤다. 소비자들은 불안감에 달걀 구매를 꺼리고 있다. 이번 파문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달걀을 생산하는 농가, 그리고 요식업계라 할 수 있다.
달걀은 김밥, 순두부찌개, 빵, 분유, 마요네즈 등등 식재료로 수없이 많이 사용한다. 살충제 달걀 파문으로 당장 요식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김밥집에서 김밥에 달걀이 빠졌고, 순두부찌개 집도 달걀이 반죽의 주재료인 빵집도 손해가 막심한 업종이다.
요식업계 대부분은 프랜차이즈이다. 그렇지 않아도 프랜차이즈 업계는 문재인정부가 갑질 대수술에 나서며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살충제 달걀 파문은 엎친 데 덮친 격이나 다름없다.
편의점 도시락, 덮밥류에서도 달걀이 대부분 사라졌다. 6세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는 "달걀에서 살충제가 검출됐다고 해서 가능한 먹이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먹인다고 특별하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괜히 불안한 마음이 생겨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살충제 달걀' 논란으로 요식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16일 '더팩트' 취재진이 찾은 식당들은 살충제 달걀과 관련해 긴 한숨을 내쉬는 등 매출 하락을 우려했다. /구로=이성로 기자 |
제빵업계 관계자는 "이달 초까지 납품받은 달걀은 자체 식품안전센터에서 품질검사를 해왔다. 잔류 농약, 피프로닐 모두 불검출 결과로 나왔다. (달걀 수급은) 사나흘 정도는 문제가 없는 상태"라면서도 파문이 장기화할 경우 상당한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살충제 달걀 파문이 확산하자 더불어민주당, 정부, 청와대는 16일 회의를 하고 대책 마련을 논의했다. 당정청은 "검출된 모든 달걀에 대해서는 회수, 폐기하는 것으로 결정했고, 정부에서는 기준치 이하가 나왔을지라도 국민 안전 먹거리를 위해서 회수, 폐지를 원칙으로 했다"고 밝혔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문제 없는 것으로 판명된 달걀이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됐고, 모레는 100%가 유통될 것"이라고 말했다.
살충제 달걀 파문은 정부의 이런 발표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달걀에 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요식업계의 피해는 더욱더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문제의 시작은 분명 살충제를 사용한 농가에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관련 부처와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농식품부와 식약처는 국민 불안감이 최고조에 있음에도 16일에는 경기도 양주를 경기도 광주로 발표했고, 17일엔 살충제 달걀이 추가로 검출된 농가의 수를 총 29곳이라고 발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31곳으로 정정됐다. 그야말로 우왕좌왕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식의 대처이다.
식재료는 생산자의 관리가 우선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생산자 관리·감독과 함께 제품 품질의 사후 관리는 정부 몫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이미 유통된 살충제 달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조차 없는 지경이다. 농장만 알렸을 뿐 달걀 고유 코드도 제대로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그래서 달걀 코드가 뭐냐" "코드를 알려줘야 알 것 아니냐"고 따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국민은 불안하고 요식업계는 발만 동동 구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요식업계는 말 그대로 날벼락을 맞은 격이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요식업계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과연 이들의 피해는 또 누가 보상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