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 일자리 창출과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그리고 이를 위한 정부와 기업 역할을 주제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문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이 청와대에서 맥주잔을 들고 건배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오는 17일,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째를 맞는다. 재계는 문재인정부의 '더불어 잘 사는 경제'에 발맞추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재계 안팎에서는 법인세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정규직전환 등 전례 없는 고강도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며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와 혁신을 예고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7~28일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를 청와대로 초청, 일자리 창출과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그리고 이를 위한 정부와 기업 역할을 주제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공유하는 등 파격적인 '소통'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 정부가 17일 출범 100일째를 맞는 가운데 재계 안팎에서는 "정부가 기업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업계의 애로 사항에 귀 기울이고, 기업들이 제대로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써 주기를 바란다"라며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팩트 DB |
◆ 재계 "文 정부, 기업인들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과거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 행보에 재계에서도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발맞춰 상생을 강조하는 상생 모델을 꺼내 들며 초반 '힘싣기'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올해 채용 규모를 지난해보다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고, 현대차그룹은 오는 2021년까지 5년 동안 미국에 31억 달러(약 3조7000억 원) 규모를 투자하는 것은 물론 5000여 곳의 2·3차 부품 업체를 위한 상생 기금 500억 원 출연, 1000억 원 규모의 2·3차 협력사 전용 대출 프로그램 신설 등을 골자로 한 등을 골자로 한 '선순환형 동반성장 5대 전략'을 발표하며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투자 계획을 발표한바 있다.
SK그룹 역시 그룹의 수장 최태원 회장을 선두로 협력업체와 상생 강화를 위해 1600억 원 규모의 전용 펀드를 조성하고 기존에 4800억 원 규모로 운영하던 동반성장펀드 역시 1400억 원 증액해 6200억 원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이 외에도 한화그룹은 오는 9월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직무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직원 85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두산과 CJ그룹에서도 비정규직·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을 공언한 바 있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한화그룹 등 다수 대기업은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발맞춰 상생을 강조하는 상생 모델을 꺼내 들며 초반 '힘싣기'에 동참하고 있다. |
새 정부의 정책 기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기업 총수 구속,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발 무역 보복, 완성차 업계에 최대 이슈로 떠오른 통상임금 소송전에 이르기까지 잇단 악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만큼 정부가 재계의 애로 사항에 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민감함 반응을 보이는 쪽은 완성차 업계다. 국내 완성차 업계 '맏형' 현대기아차는 이달 내 선고를 앞둔 통상임금 소송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무역 보복 직격탄을 맞은 데 이어 현대차 노조의 부분파업에 이르기까지 창사 이래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는 부정론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통상임금 소송에서조차 회사 측이 패소할 경우 수조 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과 협력업체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후폭풍에 대한 우려로 이렇다 할 대응책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계에 불어닥친 위기는 이미 회사와 노조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라며 "최근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이 생산라인을 국외로 전환하겠다는 견해를 드러낸 것 역시 작금의 위기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정부에서 중재자 역할에 나서지 않으면, 부작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자 및 IT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200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풀며,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전면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지만, 일부 기업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글로벌 파트너사와 영업 일선에서 대면해야 하는 총수가 구속 상태에 놓여있고, 다른 기업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자본력 앞에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 고질병으로 지목돼 온 프랜차이즈 업계에 만연한 '갑질' 문화를 근절하기 위한 강도 높은 개혁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 유통업계 '갑질' 근절 공감…"현실적인 대안 수반돼야"
유통업계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분위기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 고질병으로 지목된 프랜차이즈 업계의 '갑질' 문화를 근절하기 위한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물가 인상을 이유로 가격 인상을 단행한 치킨업체 BBQ가 가격 인상을 철회하고, '치즈통행세', '보복 출점' 논란으로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이 기소되는 등 문 대통령 취임 이후 국내 유통업계는 말 그대로 '물갈이' 수준의 개혁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특히, 김상조 공정위원장 취임 이후 개혁의 강도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실제로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대형유통업체와 중소 납품업체 간 거래 관행 개선방안 기자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은 "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행위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배수를 올리거나 3배를 못 박는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라며 정부 차원의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치킨업체 BBQ가 가격 인상을 철회하고, '치즈통행세', '보복 출점' 논란으로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이 기소되는 등 유통업계는 말 그대로 '물갈이' 수준의 개혁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
최저 임금 인상안,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발의 등 유통업계 전반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강도 높은 개혁 움직임에 업계 안팎에서는 "비난의 소지가 많았던 악습을 없앤다는 점에서는 공감하면서도, 가맹점주들이 떠안게 될 인건비 부담 등 현실적인 고민과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현안 사이의 괴리감에 대한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라며 걱정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잘못된 관행을 없애겠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복합쇼핑몰 영업 규제를 비롯한 대대적인 제재 방안은 대형 아웃렛 등을 운영하는 대기업과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협력업체들 간 이어져 있는 사업구조와 상충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만, 앞으로 양측이 서로 더 많이 대화에 나서고 업계의 고충에 관해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