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51번째 재판에서는 전날(2일)에 이어 이 부회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이 진행된다. /배정한 기자 |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저는 아직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경영 승계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실상 마지막으로 얻은 발언 기회를 통해 삼성의 승마 지원 의혹을 비롯해 본건 뇌물공여 재판에서 핵심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는 그룹 경영 현안에 관한 속내를 드러냈다.
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의 51번째 재판에서는 전날(2일)에 이어 이 부회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이 진행된다. 재판에 앞서 법조계와 재계 안팎에서는 지난 4월 첫 공판기일 이후 4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입을 뗀 이 부회장이 어떤 발언을 할지에 관심이 쏠렸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지난해 재벌 총수 국회청문회 당시 국회의원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은 바 있는 만큼 이번 피고인 신문에서도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증언대에 선 이 부회장은 특검의 질문에 이따금 "죄송합니다. 질문 내용이 길어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으니 다시 한번만 끊어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라며 호흡을 가다듬는 등 시종일관 정중하고 신중한 태도로 진술을 이어갔다.
특히, 이 부회장은 특검의 공소내용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 때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것과 '비선 실세'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을 지시했다는 부분, 마지막으로 지난 2015년 성사된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물밑 청탁'이 있었다는 부분에 관해 진술할 때에는 자진해서 부연설명을 해가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 부회장은 합병 문제에 관해 "저는 아직도 합병이 저의 경영 승계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만일 합병이 안됐다 하더라도 삼성전자와 저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고객사가 저를 바라보는 시각도, 임직원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도, '삼성전자 부회장'이라는 직책에도 조금의 변화도 없을 것이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양사 합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이고 지분율은 고려대상 자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양사 합병 비율을 낮추기 위해 구 삼성물산의 주가를 의도적이게 낮춘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절대로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만일, 삼성에서 그런 행위를 했다면 지금의 삼성은 없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저의 경영 승계는 물론 저와 삼성전자의 관계에 있어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를 못 하고 있다"라며 억울한 속내를 드러냈다. /더팩트 DB |
승마지원에 관해 특검과 질문을 주고받을 때는 다소 격앙된 톤으로 북받치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부회장은 "피고인은 지난 2015년 7월 박 전 대통령과 2차 독대 때 승마지원이 미흡하다는 질책을 받고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을 불러 '더는 승마에 신경 쓰지 않게 해달라'라고 한 것은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니냐"라는 질문에 "체육 단체 일로 집무실에서 두 번이나 회의한 것은 처음"이라며 "스포츠지원에 더 신경을 써달라고 전달하는 것 외에 더이상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지난 2014년 9월 박 전 대통령과 첫 단독면담 때 '정유라 지원'이 아닌 일반적인 승마 지원에 관해 얘기하면서 굳이 '독대'한 이유에 관해 묻자 이 부회장은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께서 와병 전까지 저는 단 한 번도 대통령과 면담한 적도 없었다"라며 "당시 박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저에게 있어 첫 경험이었고, 그때까지 정부 요청이 어떤 루트로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비교 대상 자체도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속 가능한 기업의 발전은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과 끊임없는 연구개발 등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지 특정 정부의 도움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저는 승계와 관련해 대통령에게 어떤 요청도 한 적 없고, 정치권력과 항상 거리를 둬왔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