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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의 눈] 정부의 '빚' 탕감과 생계형 '단가 4원' 노동
입력: 2017.08.01 05:00 / 수정: 2017.08.01 05:00

정부가 10년 이상 1000만 원 이하 장기 연체를 탕감하겠다고 밝히며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개당 단가 4원의 옷 가격 부착 옷핀 작업 모습. /이철영 기자
정부가 10년 이상 1000만 원 이하 장기 연체를 탕감하겠다고 밝히며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개당 단가 4원의 옷 가격 부착 옷핀 작업 모습. /이철영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개당 4원을 받는 일감을 아내가 가져왔다. 알고 지내는 한 분이 소소하게 아르바이트로 하는 것을 보고 본인도 하겠다고 가져온 것이다. 개당 4원에 불과한 이 소소한 일거리는 옷의 가격표를 부착할 때 쓰는 줄에 옷핀을 고정하는 작업이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아내는 불과 50개를 넘기기도 전에 "아, 정말 힘들다. 그런데 단가가 개당 4원이라니. 너무 적은 것 같다"라며 포기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는 아내의 모습이 보기 안스러워 도와주기로 했다고 한다. 약 2시간 가까이 일에 몰두한 끝에 200개를 마무리했다. 필자 친구 부부는 2시간 동안 800원을 벌었다. 2시간을 아내와 함께 작업하며 이 일을 누가 하고 있는지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고 털어놨다.

어떤 사람들이 개당 4원을 받으며 이 일을 하는지가 대화의 주제였다고 한다. 친구 아내는 이 일을 준 그분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를 했다. "어떤 분은 한 달에 10만 원만 하는 분도 있데. 아이 학원비가 10만 원 드는데 월급은 정해져 있고 해서 이 알바를 한다고 하던데." "이걸 생계로 하는 분들도 많다고 하더라고. 그분들 생각하면 단가가 너무 적어."

친구와 사석에서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는 최근 정부의 장기 연체 탕감 정책으로 이어졌다. 필자는 극빈층을 고려했을 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친구는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등에 문제가 있다며 정부의 연체 탕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6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포용적 금융 추진배경 및 향후 계획'을 발표하며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0년 이상 1000만 원 이하 채권에 대해 정리하겠다고 기존에 말씀드렸고 그 이상을 민간이 가지고 있는 것까지 하겠다"라고 밝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6일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만큼 그 부분에 면밀히 유의를 해서 하겠다고 밝혔지만, 부채 탕감을 둘러싼 찬반논쟁은 앞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새롬 기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6일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만큼 그 부분에 면밀히 유의를 해서 하겠다"고 밝혔지만, 부채 탕감을 둘러싼 찬반논쟁은 앞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새롬 기자

장기 연체자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공공·민간부문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신속한 정리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이달 중 국민행복기금과 금융공공기관 뿐 아니라 대부업체 등 민간이 보유한 장기소액연체채권에 대해 상환능력 평가를 전제로 채무자 재기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에 따르면 혜택을 받는 사람이 40만 명 이상이다. 물론, 상환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를 거친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만큼 그 부분에 면밀히 유의를 해서 하겠다. 여러가지 자료를 통해 철저히 상환능력 심사를 하고, 상환이 어려워 보이는 계층에 대해서는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과감히 채무 정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도덕적 해이' 지적이 쏟아졌다. 금융위도 이를 의식한 듯 "국민행복기금 등이 보유한 장기소액 연체 채무자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채무를 전액 감면하는 게 아니다"며 "면밀한 상환능력 평가를 거쳐 상환능력 유무에 따라 처리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진화하고 나섰다.

금융위가 면밀한 검토를 통해 채권 소각에 나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상자 중에는 극빈층도 있고, 상환할 수 없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각각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정부가 이런 것들을 충분히 고려해 대상자를 선정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도 친구는 금융위의 이번 연체 탕감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 어렵게 살면서도 은행 이자와 원금을 갚고 있는 수많은 사람과의 형평성도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방금 우리가 했던 개당 4원 단가를 받으며 생계를 꾸리는 사람도 있는데,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수 있는 1000만 원 장기 연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은 좀 그렇다."

정부의 부채 탕감 정책에 많은 국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도덕적 해이 형평성 등이라고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달 19일 문재인정부 국정과제 보고대회 당시. /사진=청와대
정부의 부채 탕감 정책에 많은 국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도덕적 해이' '형평성' 등이라고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달 19일 문재인정부 국정과제 보고대회 당시. /사진=청와대

친구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친구는 "지금도 하루에 돈 몇천 원을 벌고 그걸 모아서 힘들게 살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사람들도 많다. 차라리 이자를 탕감해주고 원금은 갚도록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렇게 탕감해주면 누가 돈을 갚으려고 하겠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17년 6월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가구당 평균 금융부채는 올해 3월 말 기준 5800만 원이었다. 이는 빚이 있는 가구의 평균 금융부채(4400만 원)보다 32% 많은 수준으로 40대 평균 금융부채(5000만 원)보다도 높다. 한국인 대부분은 은행 빚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은 힘든 상황에서도 줄이고 또 줄여가며 원금과 이자를 갚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독이 깨진 탓에 채워도 채워도 절대 채워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한 지인이 동생의 빚 문제로 몇 년을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인의 동생은 신용불량자였던 적이 있다. 당시 학생이었던 그 동생은 어쩌다 이래저래 빚이 많았다. 지인은 형으로서 이자와 원금을 갚아준 적도 수십 차례였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었다. 옆에서 지켜본 바, 지인은 동생이 정신을 차리고 자립하기를 몇 년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동생은 무엇인가를 해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지인의 동생 사례를 예로 든 것처럼 친구가 말한 '도덕적 해이'는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더불어 잘사는 경제'의 방향은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한 일자리 경제'가 그 첫 번째이다. 따라서 장기 연체자들에게 이자 감면과 함께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원금을 갚을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더는 물을 붓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아닌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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