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이 외부 인사들의 기고문을 400쪽짜리 단행본으로 엮은 '내가 만난 그 사람, 조석래'를 지난달 31일 사내 배포했다. /효성 제공 |
[더팩트ㅣ이성로 기자] "나는 기본적으로 파이터다. 욕을 먹더라도 우리 기업, 국가 경제를 위해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 "정말 솔직하고 소탈한 분이셨다."
'내가 만난 그 사람, 조석래'는 지난 2014년 조석래 전 효성그룹 회장의 팔순을 기념해 기획됐다. 사회 각 분야 저명인사, 지인, 전임 임원 등 80여 명의 기고글을 모았다. 애초 2014년 발간할 계획이었으나 조 전 회장의 건강 등의 이유로 출판이 미뤄졌다. 올해 조 전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회장 취임을 계기로 아버지 조 전 회장의 활동을 정리하고 업적을 기려야 한다는 내외의 의견들이 많아지면서 내부 임직원을 대상으로 책을 발간했다.
조 전 회장의 경제철학을 다시 조명하는 기고집에는 발간위원장인 손병두 호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이홍구 전 국무총리, 권오규 전 부총리,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등 국내 인사뿐만 아니라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 미타라이 후지오 전 게이단렌 회장 등 해외 인사도 참여했다.
'내가 만난 그 사람, 조석래'에 참여한 80명의 인사가 보는 조 전 회장은 할 말은 하는 '파이터 경제인'이면서도 사람 냄새 '풀풀' 풍기는 '휴머니스트'였다.
효성과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했던 조 전 회장은 국가 경제를 위해 할 말은 하는 '파이터 경제인'이었다. /효성 제공 |
◆ 할 말은 하는 '파이터 경영인'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재계의 지도자였다'고 조 전 회장을 회고했다.
'세계화'를 국정 슬로건으로 제시했던 1990년대 초 문민정부 시절, 당시 손 명예회장은 세계화의 필요성이 가장 큰 분야이면서도 가장 세계화가 더딘 분야로 금융산업을 꼽았다. 세계를 무대로 무한경쟁을 벌이는 기업이 금융에 발목 잡혀 있는 한 한국 경제대전의 승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고금리'와 '꺾기 관행'을 폐해로 꼽았다.
당시 기업은 국제금리의 두 배 정도 수준인 두 자릿수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했고, 고금리로 조달된 여신을 예금, 적금 등의 명목으로 수신해 가버리는 금융기관의 횡포에 시달렸다.
어느 기업도 속 시원하게 갑의 횡포를 고발할 수 없던 시절. 조 전 회장은 국회 재무위원회 앞에서 '총대'를 맸다. 조 전 회장은 "얼마 전에 산업은행에서 얼마의 대출을 받았는데 무슨 적금으로 얼마, 또 무슨 예금으로 얼마…, 그렇게 떼이고 나니 정작 손에 쥔 것은 전반도 안됩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손 명예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조 전 회장은 재계 전체를 위해, 그리고 나라의 경쟁력을 위해 당신과 당신이 경영하는 회사에 손해가 오더라도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재계의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회장
"나는 기본적으로 파이터다. 욕을 먹더라도 우리 기업, 국가 경제를 위해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이 조 전 회장을 떠올리면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말이다. 그는 조 전 회장을 두고 "현재를 살고 있지만, 생각은 늘 한 걸음 앞서 미래를 사셨던 이타적인 기업가인 조 회장님이 재계의 원로로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은 우리에겐 대단한 선물이자 축복이다"고 말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재임 시절, 조 전 회장은 300만 고용창출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일자리 창출을 통해 사회안정과 선진국 수준의 인적자원 활용이라는 목표를 당성하고자 했다.
배 부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조 전 회장은 재계의 수장으로서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경제와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 시대를 앞서 방법을 강구하는 자세와 혜안은 그만큼 우리 경제에 대한 애정과 신념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개별 기업의 이익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거시적 안목으로 경제를 바라봤던 경영인이다"고 말했다.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
"책임감에 대해서나, 역량을 키우기 위한 혹독한 훈련의 필요성 그리고 프로의식 같은 것에 대해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 감명 깊었다."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한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 조 전 회장에 대해 한 말이다. 열악한 환경을 탓하기보다 내부에서 문제점을 찾고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조직 운영은 조 전 회장과 김 전 감독의 공통점이다.
"승리가 야구단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며 우승하지 못하면 모두 패자이다.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고 사업경쟁에서 이겨야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는 조 전 회장의 말에 김 전 감독은 공감대를 느꼈다고 한다.
김 전 감독은 "간혹 이런 태도가 오해를 살 수 있지만, 겉으로는 웃지만 뒤에서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보다 사람의 역량을 최고로 이끌어내기 위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인정받는 게 아닐까"라며 조 전 회장을 회고했다.
허례허식을 유난히 싫어했던 조 전 회장은 해외 출장 시엔 수행원 없이 움직였고, 교통 체증이 심한 곳에선 전철 이용도 마다하지 않았다. /효성 제공 |
◆ 소박하고 인간미 넘치는 '휴머니스트'
-김동섭 중앙방송(J골프) 대표
경제부 기자 시절 조 전 회장과 친분을 쌓은 김동섭 중앙방송(J골프) 대표는 "조 회장님은 끊임없이 소통의 창구를 열어놓으셨다. 대화를 즐겼고, 그 대화를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 현장에 반영하고, 정책에 수용하는 등 활발한 쌍방향 소통을 몸소 보이셨다. 그동안 많은 재계 인사들을 만났지만 대화에 적극적인 기업 총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며 조 전 회장에 존경을 표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조 전 회장은 공석과 사석을 떠나 모든 자리에서 소통을 강조했다. 기자들과도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등 어떤 결정을 내릴 때에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단한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에 따르면 조 전 회장은 상생경영을 일선에서 실천한 대기업 총수이다.
김 회장은 "조 회장님은 중고기업이 지닌 어려움을 헤아리고자 하셨고, 중소기업이 내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셨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하여금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한 발짝 더 다가서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전 회장은 지난 2008년 10월, 전경련 회장 재임 당시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선언식'을 가졌다. 중소기업중앙회 역사 46년 동안 상생 관련 선언은 처음이었고, 전경련 회장이 직접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선언문을 발표한 것도 최초였다.
김 회장이 조 전 회장을 떠올리며 감명 깊었던 것은 이뿐만 아니다. 소위 재벌 같지 않은 소탈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본래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은 성정이셨기에 돈을 허투루 쓰시는 법도 없었다. 식당에서도 꼼꼼히 따지면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셨다"고 덧붙였다.
-정철 전 효성물산 전무
조 전 회장은 무슨 일이든 직접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소통을 강조한 조 전 회장답게 실무진과 많은 토론을 했고, 임원들도 생각이 다르면 '그건 틀린 것 같다'고 건의하는 일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조 전 회장은 아무리 부하 직원이라고 해도 전문지식과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받아들였고, 반대로 잘못이나 약점을 감추려는 사람에겐 질타를 주저하지 않았다.
정철 전 효성물산 전무가 바라본 조 전 회장의 모습은 정말 솔직하고 소탈한 회장님이었다.
조 전 회장은 해외 출장에선 수행원 없이 늘 혼자 다녔다고 한다. 보통 그룹 회장의 경우 줄줄이 수행원을 대동하지만, 조 전 회장은 허례허식을 매우 싫어했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의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 전 전무가 기억하는 일화가 있다. 홍콩에 있을 때였다. 경비실에서 '미스터 조'라는 분이 찾아왔다는 연락이 왔다. 누군가 봤더니 조 전 회장이 가방을 들고 혼자 왔다. 당시 정 전무는 깜짝 놀라면서도 정말 소탈한 분이시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고 한다.
또한, 조 전 회장은 일본 출장 시, 교통 체증이 심한 도쿄에선 자동차를 고집하기보다 때때로 전철을 이용했다고 한다. 멋지고 폼 잡는 것보다는 시간 약속에 맞춰 다니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고, 전철을 이용하는 것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는 게 정 전 전무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