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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곤의 세상토크] '사외이사'유시민, 파수꾼일까 거수기일까
입력: 2017.03.24 05:53 / 수정: 2017.03.24 15:06

보해양조는 24일 주주총회에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방침이다. /더팩트 DB
보해양조는 24일 주주총회에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방침이다. /더팩트 DB

[더팩트ㅣ명재곤 기자]시사 토크쇼 '썰전'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프로그램으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패널 유시민(59)에게 이력이 하나 더 생긴다.

'작가'로 불려 지길 바라는 그의 전·현직 호칭은 국회의원 장관 방송토론진행자 칼럼니스트 평론가 등 다양하다.

참여정부를 창출하고 국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호위무사'로도 불렸다. 2003년4월 국회의원 선서자리에서의 이른바 '빽바지 소동'이후 한동안은 '싸가지 없는 진보주의자'딱지가 붙었다.

이랬던 그가 예정대로라면 오늘(24일) 한 민간기업의 '사외이사' 명함을 추가로 갖게 된다.

의외의 외도(?)다. 아직도 시민사회에서는 그를 정치 비평가, 미래 정치인으로 인식하는 기류가 강한데 갑자기 기업 경영 조언자 및 파수꾼 역할을 하겠다니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전남·광주를 기반으로 한 호남지역 대표 주류업체 보해양조는 이날 오전 주주총회에서 유 작가를 3년 임기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유 작가는 이에 "민간기업에 관련된 일은 새로운 일이라 호기심도 있어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날 선 언어감각과 신선한 시선으로 팬덤까지 형성한 그가 '새로운 일'로 사외이사를 맡게 된 것에 정치권은 물론 재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외이사 유시민'은 낯설고 그래서 향후 사외이사 유시민의 행보를 주변에서는 궁금해 한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면서 정경유착 단절을 위한 경영 투명성 강화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제도화하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을 한다. /더팩트 DB
국내 주요 기업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면서 정경유착 단절을 위한 경영 투명성 강화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제도화하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을 한다. /더팩트 DB

12월 법인 상장기업 2052개사 중 45%정도인 총 924개사가 오늘 주총을 연다.

삼성전자 SK텔레콤 KT 롯데쇼핑 한화생명 대한항공 현대중공업 등 주요 그룹 계열사들이 일제히 지난해 경영성과 및 사업계획을 주주들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갖는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방안을 회사마다 내놓으면서 상정 안건에 대한 주주들 동의를 얻기 위한 노력이 정점에 이른다.

이날 '슈퍼주총데이' 관전 포인트중 하나는 삼성전자 등 선발 기업들이 경영 투명성 강화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느냐이다.

대통령 탄핵사태를 초래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정경유착의 적폐를 드러낸 상황에서 경영 투명성 확보는 다음 정권에서 기업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가 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국내 유수 53개 기업들이 최순실 사금고격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총 774억 원의 출연금을 내면서 이사회 의결을 밟지 않거나, 보고조차하지 않은 기업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사회 진영이 어떻게 꾸려지고 특히 사외이사직을 누가 담당하는 가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전문가들 지적이 많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선 캠프에 합류한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 감시하기 위해서는 외부주주가 추천한 독립적 사외 이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우리나라 기업 사외이사 대부분이 사실상 거수가 노릇을 하고 있다"며 "이는 재벌총수와 학연 지연 등으로 얽혀 있는 사람을 사외이시로 선임함으로써 견제와 감시라는 사외이사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재벌체제 개혁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사회이사의 책무가 강조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환경이다.

삼성전자는 경영투명성 강화차원에서 10억 원 이상의 기부등 외부 지출을 할때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명문화했다.사진은 지난해 임시주주총회 모습./더팩트DB
삼성전자는 경영투명성 강화차원에서 10억 원 이상의 기부등 외부 지출을 할때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명문화했다.사진은 지난해 임시주주총회 모습./더팩트DB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4대그룹에 속한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 올해 주총에서 신규 사외이사 총 36명을 선임한다. 주로 교수나 변호사, 전직 고위공직자 등이 많게는 연봉 1억 원 정도의 사외이사직을 꿰찬다.

사외 이사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경영에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기위해 쓰디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자리이다.

하지만 선임에서부터 지배주주의 입김에서 출발했다면 결국 '거수기' '방패막이'라는 눈총에서 자유롭지 못할 소지가 큰 게 우리 현실이다. 사외이사가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나눠먹기 자리가 되고 일종의 보험과 보은의 자리가 돼서는 안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부 부처 전관들의 임시 거처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박·최 게이트'로 투명경영이 재계의 가장 큰 과제로 부상했다.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농후한 올해 재계가 이사회 구조를 보다 선진화시키는 노력이 어느 때 보다 요구된다.

일정 금액 이상의 후원금·사회공헌기금을 집행할 때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제도화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점은 늦게나마 고무적인 모습이다.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의 경우, 이사회 의장직을 외부인사에게 넘겨 재계를 놀라게 했다. KB금융지주는 외국인 사외이사를 2명으로 늘린다.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한 기업들의 다양화 제도 마련등 새로운 실험이 진행중이다.

자기 사람으로만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회 순혈주의'탈피가 미르·K재단 망령에서 벗어나는 길일 수도 있다. 오너 경영인에게 단 소리만 하는 사외이사보다는 쓴 소리도 하는 사외이사가 경우에 따라서는 보약이 된다.

독일 경제학 석사 '사외이사 유시민'은 과연 어떤 소리를 낼까.

sunmoon41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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