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사외이사로 구성된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는 25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연임 자격에 대한 심사를 결론 짓고 표결에 부친다. /더팩트 DB |
[더팩트 | 권오철 기자] 1990년대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TV인생극장'이란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인생의 갈림길에 선 이휘재 씨가 "그래. 결심했어"라고 외친 후 선택한 길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담은 단막극 형태의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이휘재 씨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은 기쁨 또는 슬픔으로, 행복 또는 좌절로 뒤바뀌었다.
인생에 있어 선택은 언제나 있는 것이지만 때로는 한번의 선택이 평생 혹은 전체를 좌우할 때도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누가 최종 결정권을 손에 쥐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차기 그룹 회장 선임을 놓고 고심 중인 포스코는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고 볼 수 있다.
이명우 동원산업 사장 등 6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된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는 25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연임 자격에 대한 심사를 결론 짓고 표결에 부친다. 현재까지 업계의 판단은 권오준 회장의 연임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실적'으로 꼽힌다. 권오준 회장은 지난 2014년 취임 후 지난해까지 73개의 국내외 계열사를 구조조정하고 포스코 건설 지분을 매각했다. 그 결과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1조 343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4년 만의 '분기 영업익 1조 클럽' 합류다. 부채비율은 70.4%로 낮췄다.
지난해 1월 15만 원대까지 급락했던 주가는 23일 종가 기준 27만 원대까지 상승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지난 17일(현지시각) 열린 세계경제포럼은 '글로벌 지속가능경영 100대 기업'에 포스코의 이름을 올렸다. 3년 연속 해당 100대 기업에 선정된 포스코는 지난해보다 5단계 오른 35위를 기록했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권오준 회장의 연임은 설득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3분기 한껏 끌어올린 성적표를 못 미더워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3분기 호실적은 중국의 생산감축과 철강 가격 상승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해석이 그 바탕에 있다. 원료 가격이 상승한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스프레드 축소(원료와 제품가격 차이)로 시장 전망치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는 등 외부 요인에 따라 들쑥날쑥이다. 과연 이것이 권오준 회장의 경영 성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권오준 회장이 취임한 이후 포스코의 연간 매출은 2014년 65조 원대, 2015년 58조 원대, 2016년 52조 원대(전망치의 평균값)로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업이익 1조 클럽 입성이라고 낙관해도 될까 싶다. 흔히 매출은 줄고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현상을 '불황형 흑자'라 부른다. 매출 확대를 통한 성장이 아닌 계열사 및 자산 정리 등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통장의 잔고를 늘리는 것은 제 살 깎기를 통한 단기적인 현상으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 포항의 시민단체 바름정의경제연구소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권오준 회장 3년 동안 매출과 자산이 대폭 줄고 3000명 이상의 직원들을 정리해고 하고 경영진들은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하고 나쁜 경영을 오히려 경영성과라고 포장했다"고 일갈했다. 이렇듯 권오준 회장의 경영 성과에 대한 평가는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 외에도 권오준 회장의 연임을 막는 걸림돌로는 그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포레카 강탈 사건, 회장 선임 과정의 청와대 인사 개입설 등 '최순실 게이트'가 꼽힌다. 특검팀은 현재 권오준 회장을 비롯한 포스코에 대한 수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2년 결성된 시민단체 '한반도정신문화총연합회'는 권오준 회장 등 포스코 경영진 3명을 ▲포스코특수강 매각 손실에 따른 배임 의혹 ▲권오준 회장의 특허권 등재로 주주 이익 침해한 의혹 ▲포스코특수강 베트남 공장 건설 관련 리베이트 의혹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지난 16일 제출했다.
오랫동안 포스코 주주로 활동했다고 밝힌 해당 시민단체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포스코특수강은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우량 기업이다.1조 2000억 원대의 가치가 있는데 포스코가 이유 없이 4000억 원대 헐값에 팔았다"고 말했다.
CEO후보추천위원회는 최근 모여 오후 늦게까지 회의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우 사장은 '권오준 회장이 최순실 게이트 연루 관련 해명을 충분히 했느냐' '특검의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권오준 회장의 연임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옳은 것이냐' 등의 <더팩트>질문에 "오늘(24일) CEO후보추천위원회를 속개하기로 했다"라며 말을 아꼈다.
마지막까지 이명우 사장 등 CEO 추천위원회의 의미있는 장고가 거듭되기를 바란다. 포스코의 운명을 쥔 이들 CEO 추천위원회 위원들은 '포스코극장'의 주인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