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가 아동 사망사고를 일으킨 '말름서랍장'에 대해 한국 리콜 거부는 물론 지금도 해당 제품 판매에 나서고 있어 소비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더팩트DB |
[더팩트ㅣ변동진 기자] “이케아 제품도 불매운동해야 한다. 한국을 봉으로 아는 악질기업들 어떻게 혼내줄 방법 없나?”(네이버 누리꾼 ever****)
글로벌 가구 공룡 이케아의 ‘배짱 영업’에 국내 소비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미국에서 어린이 6명의 목숨을 앗아간 ‘말름 서랍장’에 대한 국가별 차별적 ‘리콜’ 조치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렇다 할 손을 쓰지 못한 채 제품 수거 계획서를 제출하라는 ‘권고’만 외치고 있다.
이케아는 사망사고 발생후 미국에서 2900만 개, 캐나다에서 660만 개의 서랍장에 대해 자발적 리콜 및 판매중지를 실시했다. 중국에서도 리콜을 결정했다. 하지만 10만 개나 팔려나간 우리나라에 대해선 판매중지는 커녕 리콜도 거부한 채 21일 현재도 해당 제품을 버젓이 판매중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안중에 없다는 식의 '배짱 영업'이다.
물론 국내에선 아직 아동 사망 및 부상 사례가 보고되진 않았다. 이같은 이유 때문인지 이케아 측이 뒤늦게 꺼내든 카드는 ‘환불’이다. 이마저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그저 고객센터에 문의하고 항의하는 이들에게만 환불 사실을 알렸다.
왜 이케아는 한국에서만 배짱 영업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내용을 살펴 보면 우선 제도적인 이유가 있다.
이케아는 아동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랍장에 대해 미국에서 2900만 개, 캐나다에서 660만 개의 자발적 리콜 및 판매중지를 실시했만, 한국에서는 환불만 하고 있다. /더팩트DB |
◆이케아 '배짱 영업', 안전관련 규정 세분화 부족도 문제
예컨대 미국의 경우 ASTM(미국재료시험협회규격) 일부를 손질하면서 소비자 중심으로 제도를 변경했다. 해당 규정에 따르면 지지대 등 다른 구조물 없이 서 있는 서랍장은 빈 서랍의 문을 다 열어 앞쪽으로 무게가 쏠리더라도 안전하게 서 있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또 서랍에 물건이 있거나 아이가 매달리는 등의 상황을 고려해 서랍당 약 50파운드(23kg 안팎)의 납이나 쇳덩이를 얹었을 때도 엎어지지 않아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통합인증(KC)이란 제도가 있지만 서랍장 안전성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서랍이 넘어지는지, 모서리가 너무 뾰족하지는 않은지 등에 대해 통과하면 판매에 문제가 없다.
특히 리콜을 권고한 한국소비자원 역시 ‘권한’만 있을 뿐 ‘강제’할 수는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지난 5일 서랍장의 국내 환불 및 제품 수거 계획 등을 담은 ‘제품 수거 등의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강제적으로 리콜을 시행하려면 안전성 조사 등을 거쳐야 한다.
즉, 리콜을 강제하기 전까지 계속 판매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셈이다.
폭스바겐은 정부가 요구한 리콜 계획서 ‘임의조작 인정’을 명시하지 않는 까닭에 대해 행정소송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하며 리콜 및 배상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더팩트DB |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없는 한국, 그 뒤에 숨는 글로벌 기업
이와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부재 또한 원인으로 꼽힌다. 일명 ‘디젤 게이트’를 일으킨 폭스바겐이 우리나라와 미국에 대한 차별적 대응을 보면 이해가 빠르겠다.
환경부가 지난해 11월 말 배출가스 조작을 확인했음에도 폭스바겐 측의 리콜은 약 8개월 정도 지체되고 있다. 더구나 “한국에서 배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대로 미국은 지난달 말 차량 소유주들에게 1인당 최고 1만 달러(한화 약 1160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키로 결정했다. 더불어 이미 판매한 차량을 되사주기로 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을 무서워하는 까닭은 실제 피해를 준 것보다 훨씬 큰 액수로 배상해야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 법원은 지난 5월 존슨앤드존슨(J&J)의 탈크 기반 파우더를 사용해 난소암이 발병한 60대 여성에 5500만 달러(한화 약 62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피해배상금은 500만 달러였지만 ‘징벌적 손해배상금’은 무려 5000만 달러에 달했다.
폭스바겐이 행정소송을 운운하며 정부가 요구한 리콜 계획서 ‘임의조작 인정’을 명시하지 않는 이유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부재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소비자들이 집단 소송을 하더라도 대법원까지 가는 과정 중에 소비자들과 합의할 수 있어 패소에 따른 피해보상 부담이 적다. 무엇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다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잃을 거 없는 장사가 된다는 지적이 늘상 제기됐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기업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숨을 수 있고, 그 피해는 오롯이 소비자의 몫이 된다. 이는 곧 한국 소비자는 ‘호구’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셈이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심지어 이번 이케아 말름 서랍장 사례의 경우 이미 유아 6명이 사망하는 등 안전과 관련해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앞서 우리는 옥시를 비롯한 여러 기업 만행으로 큰 피해를 봤다. 언제쯤 ‘호갱’이 아닌 대접받는 ‘고객’이 될 수 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케아의 '살인 서랍장'이 미국 등과 달리 국내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판매 강행되고 있는 상황을 당국은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외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