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무관실 소속 김모 대령은 12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62회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밀레니엄 힐튼호텔=박대웅 기자 |
[더팩트ㅣ박대웅 기자] "어느 나라 군인이냐?"
성난 시민들의 함성에 빨간 명찰에 해병대 정복을 갖춰 입은 해병대 소속 대령은 굳게 입을 다문 채 호텔 문으로 들어섰다.
주한 일본대사관은 12일 서울시 중구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자위대 창설 62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외교부와 국방부 등에 따르면 행사는 나가미네 야스마사 신임 주한 일본대사를 대신해 스즈키 히데오 주한일본대사 총괄공사가 주재했다. 우리 측 인사로는 외교부 실무자와 국방부 국·과장급이 참석했다.
행사 시작 시간인 오후 6시30분이 가까워 질 수록 행사 참석을 위해 호텔을 찾는 각국 외교 사절단도 늘었다. 이들 중 단연 시선을 사로잡은 이는 빨간 명찰의 해병대 대령이었다.
해병대 정복을 차려입은 김모 대령은 행사 시작을 10여분 앞둔 오후 6시20분쯤 행사장을 찾았다. 그는 호텔 정문에 마련된 포토라인을 피해 호텔 옆 문으로 입장을 시도했고, 이를 알아본 취재진과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진땀을 흘렸다.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그가 해병대라는 사실에 격분했다. 시민들은 "야이, XXXX" "XXXX" 등 욕설로 울분을 토했고, "도대체 어느 나라 군인이냐"라며 질타했다.
해병대사령부는 김모 대령의 자위대 창설 행사에 대해 해병대의 공식적인 행보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해병대사령부 관계자는 "해병대의 공식적인 견해는 자위대 창설행사 불참"이라면서 "확인 결과 참석자는 외교업무를 담당하는 국방부 무관실 소속"이라고 설명했다.
12일 오후 일본 자위대 창설 62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서울 중구 소월로 밀레니엄 서울힐튼 앞에서 시민들이 행사 반대 항의를 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
정부는 이날 열린 자위대 창설 62주년 기념행사에 '정례적인 외교행사'라며 '상호 교류와 협력 차원의 참석'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자위대 창설 행사에 정부 측 인사의 참석이 적절한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바꾸고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더욱이 지난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아베 총리의 이같은 행보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때문에 이날 열린 자위대 창설 행사는 자위대의 평화 이미지를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보통 국가'를 향한 아베 총리의 행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이날 행사장에는 수백여명의 시민단체 소속 시민들과 일반시민들이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 취소를 촉구하며 항의 집회를 벌였다. 이들은 자위대 창설 행사 참석을 위해 호텔을 찾은 외국 사절단을 향해 "피스!(Peace·평화)"를 외치거나 차량의 출입을 막는 등 극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했고, 119 구급대가 출동하는 등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일본대사관과 힐튼호텔 그리고 경찰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일본대사관 관계자는 "초청장을 얼마나 누구에게 보냈는지 알려줄 수 없다"고 세부 정보를 밝히는 것을 꺼려했다. 힐튼호텔 측도 "행사장 위치 및 규모, 인원 등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고, 경찰도 출동한 경찰병력의 규모를 묻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 자위대 창설 기념 행사장에 나타난 빨간 명찰 해병대(https://youtu.be/IOdhhq0FWnw)◆
<영상=박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