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딸들의 엇갈린 경영참여의 명암을 짚어 봤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 순으로 조연주, 임상민, 임세령, 최윤정(작은 사진 내 맨 오른쪽), 이서현-이부진, 정성이, 최민정-노소영, 정지이, 구지은 순. |
[더팩트ㅣ박대웅 기자] '그녀들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희비가 엇갈린 '골든 도터스(Golden daughters)'가 있다. 바로 재계의 딸들이다. 과거 이들은 아들을 통해 그룹을 승계·유지하려는 국내 대기업의 전통적인 '가풍'에 따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트릴 수 없는 장벽, 일명 '유리천장'에 가로 막혀 경영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최초·최연소' 등의 타이틀을 달고 수천 억에서 수조 원대 기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반면 여전히 유리천장에 가로막힌 이들도 있다. 재계 딸들의 엇갈린 명암을 짚어 봤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왼쪽)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이 활발한 경영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더팩트DB |
◆이부진·이서현, 삼성 최초 여성 CEO
재벌가 3~4세 중 가장 돋보이는 이는 삼성가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차녀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이다. 이부진 사장은 2010년 삼성가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이후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를 새롭게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인천국제공항, 제주국제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마카오공항 등 전 세계 주요 공항 등에서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며 호텔신라를 키워냈다. 또한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당시 탁월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이며 최고경영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처럼 냉철한 판단과 추진력, 세부적 경영사안까지 직접 챙기는 스타일로 알려진 이부진 사장은 평소 성격까지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닮아 삼성 안팎에서 '리틀 이건희'로 통한다. 이부진 사장은 재벌 3세 딸들 중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12월31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전날 종가 기준 상장주식 부호 상위 100명 중 이부진 사장은 9위를 기록했다. 그의 주식 자산은 2조2307억원이다. '언니'에 이어 10위를 차지한 이서현 사장 역시 2조2000억원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국내 여성부자 1위와 2위에 해당한다.
이서현 사장 또한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10년 한국인 최초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CFDA) 이사회 멤버가 되며 패션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이서현 사장은 2005년 국내 디자이너를 후원하기 위해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를 출범하고 유망주 발굴에 나섰고, 2012년에는 삼성의 첫 SPA브랜드 '에잇세컨즈'를 출시했다. 또 최근에는 한류를 접목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 '노나곤'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까지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과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을 병행하던 이서현 사장은 연말 인사에서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을 맡게 됐다.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한 후 13년 만이다. '에잇세컨즈' 중국 진출 등 그동안 공들인 역점사업들의 성패가 앞으로 경영능력 평가의 잣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유경 신세계 사장은 재계 딸로는 처음으로 24세라는 나이에 최연소 임원을 달았다. / 신세계 제공 |
◆신세계 정유경, 재계 '최연소' 임원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외동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은 재계 최연소 임원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정유경 사장은 24세때인 1996년 입사와 함께 등기이사에 올랐다. 1996년 조선호텔 상무보로 입사한 그는 호텔 업계 최초로 비주얼 디자인을 적용하는 등 파격적인 시도로 조선호텔의 이미지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어 2009년 신세계로 옮겨 패션 관련 사업을 맡은 정유경 사장은 '어머니' 이명희 회장 못지않은 카리스마로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정유경 사장은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신세계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정유경 사장의 강단있는 모습은 2014년 신세계백화점 본관 푸드마켓 리뉴얼 작업 당시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유경 사장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 기존 스타벅스 매장을 철수시키고 떡방을 입점하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해 결국 매출 신장이라는 결과를 이끌었다. 업계에선 정유경 사장의 이런 행보를 두고 '이명희 회장과 꼭 닮은 여장부' 혹은 '리틀 이명희' 등으로 평가했다. 지난해 기준 정유경 사장의 상장주식 자산은 2018억여원이다.
대상그룹 임상민(오른쪽) 상무는 언니 임세령 상무 대신 지주사의 최대주주로 차기 경영권 승계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 더팩트DB |
◆대상 임세령·상민 자매 희비 가른 결혼
대상그룹 임세령·상민 자매는 모두 상무로 나란히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동생인 임상민 상무는 언니보다 두 배 가까운 지분을 확보하며 경영권 승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런 차이의 배경은 결혼이다. 임세령 상무는 199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10년 8개월 만에 갈라섰다. 결과적으로 2001년부터 승계작업을 시작한 대상그룹으로서는 임상민 상무에게 더 많은 지분을 배정했다.
2009년 대상전략기획팀 차장으로 입사한 임상민 상무는 2012년 전략기획본부 부본부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임상민 상무는 대상그룹 지주사인 대상홀딩스의 최대주주다. 언니 임세령 상무보다 더 많은 36.71%를 보유하고 있다. 임세령 상무는 20.41%를 가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임세령 상무가 그룹 경영권보다 주로 개인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어 자연스럽게 임상민 상무에게 쏠리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대상은 순창, 미원, 종가집, 청정원 등을 거느린 재계 48위 기업이다.
정성이(왼쪽) 이노션 고문과 정지이 현대유앤아이 전무는 소탈한 경영참여와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 현대차그룹, 현대그룹 제공 |
◆'소탈'·'은인자중' 범현대가 정성이·정지이
범현대가의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정지이 현대유앤아이 전무는 소탈하고 튀지않는 스타일로 눈길을 끈다. 먼저 정성이 고문은 지난해 주식가치가 가장 많이 오른 주주다. 정성이 고문이 몸담고 있는 현대차 계열 광고사 이노션은 지난해 7월 상장했다. 이노션의 주식 27.99%를 보유한 정성이 고문의 지난해 주식평가액은 4098억원으로 치솟았다.
정성이 고문은 특이한 이력이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녀인 그는 1985년 9월 선두훈 대전 선병원 이사장과 결혼 후 20여년 간 전업주부로 지냈다. 이후 2003년 정몽구 회장의 부름을 받고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이사를 맡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 정지이 현대유앤아이 전무도 경영행보를 잇고 있는 재벌가 딸 중 하나다. 2004년 현대상선 재정부 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3년 만에 현대유앤아이 전무를 꿰찼다. 현정은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며 경영노하우를 습득하고 있는 정지이 고문은 2011년 평범한 집안 출신 외국계 금융사 직원과 결혼했다.
구지은 아워홈 부사장이 지난달 18일 보직해임 6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 더팩트DB |
◆돌아온 구지은, 싸움은 이제부터?
구자학 회장(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3남)의 1남3녀 중 막내딸이자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구지은 부사장이 돌아왔다. 구지은 부사장은 부사장 취임 4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구매식재사업본부장 자리에서 해임됐다. 그가 떠난 뒤 단 보름 만에 이승우 전 사장이 복귀했다. 이 때문에 원로 경영진과 불화설 등이 나돌았다. 이후 아워홈은 6개월 사이 대표이사가 세 번이나 바뀌는 대혼란을 겪었다. 지난해 1월 이승우 전 사장이 임기 2년을 남기고 돌연 교체됐고, 6월에는 CJ출신 김태준 전 사장이 취임 4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아워홈은 지난달 18일 구지은 부사장을 구매식재사업본부장으로 발령했다. 보직 해임 6개월 만이다. 이번 인사는 구자학 회장이 직접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만큼 후계구도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구지은 부사장은 2004년 아워홈 구매물류사업부장으로 입사해 2009년 아워홈에서 분할된 자회사 캘리스코 대표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자의 길을 걸었다.
이후 구지은 부사장은 유력한 경영권 승계 후보가 됐다. 실제로 장남인 구본성 씨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점과 구지은 부사장이 알짜 계열사의 최대 주주라는 점 그리고 그룹 내 입지가 확고한 점 등이 이런 관측을 뒷받침 했다. 다만 지분율에서 오빠인 구본성(38.5%)에 비해 낮은 20.67%를 보유한 점은 걸림돌이다. 장녀 구미현 씨는 19.28%, 차녀 구명진 씨는 19.6%를 보유하고 있다.
허인영 승산레저 대표는 유교적 가풍이 강한 GS그룹에서 유일하게 여성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 승산 홈페이지 |
◆금녀의 벽 깬 GS가 최초 여성 허인영
'여성의 경영 참여는 없다' 등 엄격한 유교적 가풍을 따르는 GS그룹에서 유일하게 여성으로 경영에 나선 인물이 있다. 허완구 승산 회장의 딸 허인영 승산레저 대표다. 허완구 회장은 고 허만정 LG그룹 공동 창업자의 5남으로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작은 아버지다.
허인영 대표는 승산 레저부문을 총괄하고 있으며 GS 지분 143만2886주(1.54%)를 보유하고 있다. 승산은 허만정 창업자의 고향인 경남 진주 승산마을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솔케미칼 조연주 부사장이 가장 유력한 차기 경영권 후보로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한솔케미칼 |
◆한솔케미칼 후계자 조연주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손녀이자 조동혁 명예회장의 장녀 조연주 한솔케미칼 부사장은 후계구도를 굳건하게 하고 있다. 조연주 부사장은 이건희 회장의 큰손주이자 이재용 부회장의 장조카로 범삼성가 4세에서 처음으로 지난해 3월27일 사내이사가 된 인물이다. 조연주 부사장은 2014년 3월 한솔케미칼 기획실장으로 합류해 입사 1년 만에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만큼 경영보폭도 넓다. 조연주 부사장은 현재 한솔케미칼 OCI-SNF 지분 50%를 인수하는 작업 등 투자와 인수합병을 이끌고 있다.
한솔그룹은 1991년 고 이병철 회장의 장녀이자 이건희 회장의 누나인 이인희 고문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하며 출범했다.
20대 재벌가 딸들 중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 민정(왼쪽) 씨는 해군 중위로 재벌가 오너 딸로 최초로 자원 입대해 복무 중인 가운데 어머니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마주한 채 미소 짓고 있다. / 더팩트DB |
◆경영참여보다 사회경험부터…20대 골든 도터스
경영참여보다 사회경험부터 쌓는 골든 도터스들도 있다. SK 최태원 회장은 첫째 딸 윤정 씨는 어머니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함께 아트센터 나비와 행복 나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앞서 그는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사회경험을 쌓았다. 베이징 국제학교와 시카고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재원이다.
차녀 최민정 중위는 재벌가 상속녀 중 최초로 자원해 해군 장교로 복무 중이다. 중국 베이징대를 마치고 해군 사관후보생으로 입영해 지난해 10월26일 장교로 임관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장녀 민정 씨는 최근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에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지난해 7월쯤 베인앤컴퍼니에 입사했다. 서민정 씨는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재계 20대 부호 가운데 가장 많은 상장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주식가치는 아모레퍼시픽이 중국에서 큰 반응을 얻는 것에 힘입어 지난해 기준 1700억원대를 기록했다. 차기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장녀 박하민 씨는 미국 코네넬대 인문학부에서 사학을 전공한 뒤 조기 졸업했다. 이후 매킨지코리아와 다국적 부동산컨설팅 업체 CBRE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소속으로 국외부동산 투자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생 박은민 씨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한국지사에서 주니어 컨설턴트로 근무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모두 미래에셋컨설팅 지분 8.19%를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올해 31세인 LS산전 구자균 회장의 차녀 구소희 씨도 눈길을 끈다. 그는 뉴욕 시러큐스대학교 마케팅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제통상학과를 수료했다. 2010년 LS산전 사업지원팀에 근무하다 2011년 말 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