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는 15일 23세 여직원 희망퇴직 논란이 거센 두산인프라코어의 희망퇴직 공고문을 입수했다. |
[더팩트ㅣ박대웅 기자] 23세 여직원이 희망퇴직 대상이 됐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실사다. 그것도 국내 굴지의 두산그룹, 그 중에서도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인 두산인프라코어의 이야기다.
바늘 구멍보다 뚫기 어렵다는 취업의 문턱을 이제 갓 넘은 20대 청춘이 희망퇴직 대상이 됐다는 소식에 '사람이 미래다'라는 카피문구를 전면에 내세웠던 두산그룹과 두산인프라코어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더팩트>는 15일 단독으로 두산인프라코어가 낸 희망퇴직 공고문을 입수해 두산인프라코어가 제시한 희망퇴직자의 처우를 확인했다. 본지 기자가 확인한 결과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사회적 책임이 있는 두산인프라코어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 처우였다.
희망퇴직자 처우는 ▲위로금 ▲전직 지원 ▲학자금 ▲경조사 ▲국민연금 ▲장기근속 포상 ▲주택 보조금 ▲지역간 이동자 주거지원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위로금' 항목이 눈길을 끈다. 연봉 월할(1/12) 기준으로 한 위로금은 근속 3년 미만일 경우 10개월이다. 즉 10개월치 월급이 퇴직금인 셈이다. 이어 근속 5년 미만은 12개월, 근속 10년 미만은 14개월, 근속 15년 미만은 16개월, 근속 20년 미만은 18개월, 근속 20년 이상은 20개월치 급여를 지급한다.
'전직 지원' 항목에서 두산인프라코어는 '재취업 및 창업 지원을 위한 전문 업체 컨설팅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미신청 시 현금지급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경조사'는 퇴직 후 3년간 재직때와 동일한 상조서비스와 결혼 화환을 받을 수 있다.
노후 자금이 될 '국민연금과 보험료' 항목에서 두산인프라코어는 회사부담분 6개월분을 일시금으로 지원한다. 재직기간 16~18년으로 명시한 장기근속 포상 대상자에게 지급할 '장기근속 포상' 항목은 정확한 금액이 명시되지 않았다. 다만 연도별 차등 금액을 일시불로 지급한다고만 적시했다.
'주택 보조금' 부문에서 기 지원받고 있는 직원 대상 최대 3년까지 일시불로 지원하고 '지역간 이동자 주거지원'은 기 지원받고 있는 직원 대상 최대 2년까지 일시불 지원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런 내용이 담긴 희망퇴직 공고문을 지난 7일 내고 지난 8일부터 오는 18일까지 사무직 직원 3000명 전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받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전체 사무직 가운데 40%가량을 내보낼 예정이다. 최대 80%까지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부서도 있고, 아예 부서가 없어지는 사례도 있다.
문제는 올해 1월부터 출근한 20대 신입 사원까지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하반기 60여명의 신입 사원을 채용했고, 이들은 1월부터 출근했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전 사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희망퇴직인 만큼 20대 사원도 포함됐다"면서 "말 그대로 희망퇴직이다. 퇴직을 강요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 자필 서명을 해야 퇴직처리가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사실상 업무지시를 하지 않거나 전혀 무관한 부서로 발령을 내는 등 희망퇴직을 종용할 방법은 다양하다. 희망퇴직 명단에 오른 것 자체가 사실상의 명예퇴직과 다름없다.
두산인프라코어가 23세 여직원을 희망퇴직 대상자로 삼아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두산인프라코어 직원들이 이용한다는 모바일 익명게시판에 이번 구조조정을 비판하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 온라인커뮤니티 |
회사 내부에서도 사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볼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두산인프라코어 직원은 취재진에 "희망퇴직 대상이 된 20대 사원들은 대부분 사원, 대리, 여직원이다"면서 "대규모로 인원을 정리하다보니 직급, 고과, 나이보다는 자르기 쉬운 사원, 대리, 여직원이 대상이 됐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면담에 들어가면 도장 찍고 나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희망퇴직이 현대판 음서제라고 이 직원은 일갈했다. 그는 "이와 중에 중역들의 자녀는 면세점같은 유망사업부로 전출됐다"면서 "힘없고 빽없는 사람만 찍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모바일 익명 게시판에는 "사원대리급 90프로 전멸했습니다"라면서 "1주일 더 남았으니 지켜봐야죠. 살아남은 중역자제들은 잘 있네요"라고 적었다. 또 다른 이는 "진짜 열받는다. 임원 자녀들 우선으로 뽑아놓고, 면세점으로 제일 먼저 구해가네. 하다못해 간호학과나, 미대, 음대 나온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영업 마케팅 전략에서 일한다"고 지적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희망퇴직을 단행하는 이유로 꽁꽁 얼어붙은 건설기계 시장을 꼽았다. 그는 "건설기계 시장이 2012년부터 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이후 전년대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특히 중국시장 침체가 결정적이다. 중국은 전 세계 건설기계 시장의 50%를 차지하지만 2012년 이후 침체 일로다. 2014년 기준 초호황기 대비 반토막 수준이고, 올해는 최악이라던 그 절반보다 더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11년과 2012년 200여명, 2013년과 지난해 각각 60여명의 신규 인원을 공개채용했다. 활황기를 맞았던 중국 시장을 겨냥한 채용이었지만, 2012년 이후 국외 건설 경기 침체 여파로 건설 기계 수요가 줄어들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두산인프라코어는 3~4년 전에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실패를 인정했다.
결국 두산인프라코어의 수요 예측 실패의 고통을 채 피지도 못한 20대 청춘들이 짊어지게 된 셈이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2011년 6796억원에서 2012년 3624억원으로 거의 반토막 났다. 지난해에는 영업이익이 4530억원으로 반등했지만, 올해 다시 3337억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순이익 역시 곤두박질 쳤다. 2012년 3933억원에 달하던 당기순이익은 2013년 1010억원으로 급락했고, 지난해에는 24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심지어 올해에는 1294억원의 적자가 예상됐다. 주가 역시 2012년 3월 한때 2만4000원까지 갔지만 15일 종가기준 5670원이다. 부채 또한 상당하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국외 사업장을 포함한 두산인프라코어의 총부채는 8조5000억원이 넘는다. 두산인프라코어의 핵심 사업부는 공작기계, 건설기계, 엔진 사업부 세 가지다. 이중 공작기계 사업부는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실적부진이 타격을 줬다.
두산인프라코어 직원들에게 올해는 잔인한 한 해다. 올해만 벌써 4번째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미 8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2월과 9월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고, 지난 11월에는 기술직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했다. 그리고 12월, 20대 사무직 청춘들마저 희망퇴직 명단에 올랐다.
한편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권 획득을 위한 부정적 여론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구조조정 시점을 12월로 늦췄다'는 풍문에 대해 취재진에 "시장을 예측할 때마다 상황이 안좋아졌다"며 "면세점 사업권 획득과 무관하게 구조조정은 진행됐던 사항"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