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2016년 정기 임원인사를 차례로 발표하면서 각 그룹 총수의 장남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들은 모두 나이가 30대라는 점과 '초고속 승진'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더팩트DB |
[더팩트 | 김민수 기자] 기업들이 새해를 앞두고 정기 임원인사를 속속 마무리하고 있는 가운데 '30대' 재벌가 도련님들의 승진 행렬이 눈길을 끌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벌 오너가 30대 아들 중 임원이 아닌 경우를 찾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고 말했을 정도로 대부분 별을 달았다.
최근 임원 인사를 단행한 기업 중 코오롱·한화·현대중공업·GS·두산그룹에서 총수의 아들들이 일제히 상무보 이상으로 고속 승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1978년에서1985년 사이 태어났다. 한국 남성들의 평균 입사 연령이 30살 전후인 것을 따져보면 어마어마한 차이다.
나이와 직급보다 신사업 발굴과 기술 개발 등 '평가주의'에 입각한 인사 방침에 따른 결정이라고 회사 측은 주장하지만 신입사원이 상무가 되는 데는 통상 20~25년이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재벌총수 자녀들이 30대에 상무 또는 전무로 발탁된 것은 흔히 말하는 '금수저' 지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규호(31)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2) 한화큐셀 전무, 정몽준 전 의원(전 현대중공업 회장)의 장남인 정기선(33) 현대중공업 전무, 박용만 두산그룹의 장남인 박서원(36) 전무,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장남인 허윤홍(36) GS건설 전무,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장남 허서홍(38) GS에너지 상무는 기업별 정기 임원인사에서 모두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중 상무보로 승진한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이규호 경영진단실 부장은 차장으로 입사한 지 3년 만에 임원 자리에 올랐다. 이번에 승진한 재벌그룹 자녀들 중에서도 최연소다.
그는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입사해 구미공장에서 현장근무를 경험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어떤 평가를 받아왔는지, 어떤 실적으로 이번 인사에서 '별'을 달게 됐는지 회사 측은 설명하지 않았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는 지난 2월 태양광 계열사를 한화큐셀로 통합해 셀 생산규모 기준 세계 1위의 태양광 회사를 탄생시킨 후 구조조정과 생산효율성 개선을 해낸 성과를 인정받았다.
또 태양광 업계 단일계약 최대 규모인 미국 넥스트에라(NextEra)와의 공급계약등의 사업수주를 따내며 올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데 공을 세웠다는 것이 한화그룹의 설명이다.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현대중공업 정기선 기획실 총괄부문장(가운데)과 현지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알 나세르(Al Nasser) 사장(오른쪽 두번째)이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후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현대중공업 제공 |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기획총괄부문장은 상무를 단지 1년 만에 전무로 승진했다.
정기선 신임 전무는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양해각서(MOU) 체결을 주도했다.
현대중공업은 정 부문장이 해외 사업을 포함해 조선과 해양 영업을 통합한 영업본부의 총괄부문장까지 겸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동대문을 입지로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따낸 두산은 박용만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 오리콤 크리에이티브총괄 부사장에게 면세점 유통 사업부문을 맡겼다.
그동안 광고 및 마케팅업계에서 독보적 행보를 보이며 재벌가 자녀로서는 이례적인 사례로 꼽히던 박서원 신임 전무는 이번에 그룹의 중책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게되면서 아버지의 사업을 본격적으로 돕게 됐다.
또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허윤홍 GS건설 사업지원실장도 1년 만에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허윤홍 실장은 2002년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에 입사해 한때 주유원으로 근무하며 현장에서 하드트레이닝을 받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허광수 삼양인터내셜 회장의 장남인 허서홍 부장은 GS에너지 전력·집단에너지 사업부문장을 맡아 상무가 됐다. 허서홍 상무는 삼정KPMG와 GS홈쇼핑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경제 여건 악화 속에서 영업실적 부진 등의 부담을 안고 있는 기업들이 1년 만에 자녀들을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하는 것은 '혈연'으로 묶인 경영권 승계를 공고히하기 위함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재벌 3·4세들에게 신성장 동력 발굴을 직접 맡기면 이들의 능력 유무를 더 뚜렷하게 평가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기한다. 그러나 기업들이 초고속 승진을 뒷받침할 만한 사업 성과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결국 가업을 물려받기 위한 수순이라는 판단으로 귀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