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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체험기] 용산화상경마장 가보니…'레저' 아닌 '도박'입니다
입력: 2015.11.20 05:20 / 수정: 2015.11.20 01:11
용산화상경마장이 1층부터 8층까지를 주민을 위한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 박대웅 기자
용산화상경마장이 1층부터 8층까지를 주민을 위한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 박대웅 기자

[더팩트 ㅣ 박대웅 기자] "대가리! 대가리! 아오, 씨X!"

탄식보다는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경마정보지도 자칭 경마전문가라던 이들도 예상하지 못한 10번 말의 우승에 용산화상경마장 장내는 술렁였다. "씨X, 어떻게 10번이 들어오냐. 15만원 날렸네." 용산화상경마장 14층에 마련된 흡연실을 찾은 한 남성은 폐부 깊숙히 담배 연기를 빨아들인 후 분을 삭히지 못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마사회는 경마의 사행성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경마는 스포츠이며 레저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 순간 만큼은 경마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스포츠의 묘미는 용산화상경마장을 찾은 이들에게 악몽과 같다. 예측 불가능은 곧 돈을 잃는 것이다. 이들에게 경마는 레저가 아닌 사실상 도박인 셈이다.

13일 <더팩트>는 용산화상경마장을 찾아 입장권과 모바일베팅 이용가이드, 그리고 마토 구매표를 수령했다. / 박대웅 기자
13일 <더팩트>는 용산화상경마장을 찾아 입장권과 모바일베팅 이용가이드, 그리고 마토 구매표를 수령했다. / 박대웅 기자

<더팩트>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용산화상경마장을 직접 찾았다. 이날 용산화상경마장은 부산경남과 제주지역 경마장에서 펼쳐진 각각 11경기와 4경기 합계 15번의 경주를 중계했다. 입장료는 2만원으로 입장료의 세부 사항은 시설이용료 1만8000원과 입장료 2000원이다.(개별소비세 및 교육세 1300원 포함) 또 입장료에는 그날 펼쳐질 경마에 대한 정보지와 식사가격이 포함돼 있다. 오전 11시40분 부산경남 경마장의 제1경주가 첫번째 시작된다. 1경주 시작에 앞서 하나 둘 사람들이 몰렸다. 기자가 찾은 14층에는 100여석의 좌석이 손님을 기다렸고, 이 층에만 약 30~40여명의 사람들이 자리했다.

오전 11시30분. "부산경남 제1경기, 마감 10분전입니다"라는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베팅을 서두르라는 친절한 안내음성이 장내에 울렸다. 이어 "마감 5분전", "마감 30초전"이라는 안내가 이어졌고, 베팅 마감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태어나 경마장은 고사하고 경마의 '기억'도 모르는 기자도 베팅에 참여했다. 1경기당 1000원씩 1만5000원을 15경기에 나눠 베팅하기로 마음 먹고 마권을 구매했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방법을 몰라서다.

베팅 방법은 단승, 연승, 복승, 쌍승, 복연승, 삼복승으로 모두 6가지다. 먼저 ▲단승은 1등 말을 맞히는 것으로 10마리가 경기 기준으로 적중확률은 10분의 1이다. 이어 ▲연승은 1, 2, 3등 안에 들어올 말을 예상하는 것으로 적중확률은 10분의 3이다.(단, 7두 이하일 경우 1, 2등) ▲복승은 1, 2등 말을 순서에 상관없이 맞히는 것으로 확률은 45분의 1이다. ▲쌍승은 1, 2등 말을 순서대로 적중하는 것으로 확률은 90분의 1이며 ▲복연승은 1, 2, 3등 안에 들어올 말 2두를 순서에 상관없이 예상하는 것으로 확률은 15분의 1이다. 끝으로 ▲삼복승은 1, 2, 3등 말 3두를 순서에 상관없이 적중하는 것으로 확률은 120분의 1이다. 적중확률이 낮을 수록 배당은 커진다.

헤매는 기자에게 마사회 직원은 친절하게 베팅 방법을 설명했다. 마사회 직원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기자는 30%로 가장 적중확률이 높은 연승식을 선택해 베팅했다. 경주마는 이날 용산화상경마장에서 배포한 경마정보지의 추천을 따랐다.

베팅을 하기 위해서는 OMR 카드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마토'라고 불리는 구매표에 표시를 해야한다. 구매표는 서울, 부산·경남(BG), 제주(J)로 나뉜 경마장을 선택하는 박스와 예매시 표기하는 금, 토, 일이라는 요일란 그리고 경주번호와 단승, 연승 등이 적힌 베팅 방법란, 마번을 표시하는 박스와 금액을 표시하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베팅 금액이었다.

금액란은 100원, 200원, 300원, 500원까지 100원단위부터 1000원부터 5000원까지 1000원 단위로 커지는 1000원 단위 그리고 1만원부터 2만원, 3만원, 5만원, 10만원으로 커지는 1만원 단위로 모두 14가지로 세분화 돼 있다. 마토 한 장당 최대 구매상한선은 10만원이다. 마토 구매표 뒷면의 '마토구매안내'는 "마토 1인 1회 구매상한선은 10만원입니다"라고 안내하며 "도박중독은 과도한 베팅(10만원 초과)에서 출발합니다"라고 경고했다.

취재진은 13일 용산화상경마장을 찾아 직접 화상경마에 베팅을 해봤다. / 박대웅 기자
취재진은 13일 용산화상경마장을 찾아 직접 화상경마에 베팅을 해봤다. / 박대웅 기자

문제는 10만원이라는 베팅 한도가 강제보다는 개인의 자율적 의지에 맡겨진 채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구매한도 10만원은 마토발매기 한 대에 해당하는 이야기며 마음만 먹는다면 배치된 십여대의 마토발매기에서 구매한도를 훌쩍 넘는 금액을 베팅할 수 있다. 또한 베팅 방법도 간편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기자가 마토구매표를 작성하고 무인발매기에서 베팅을 마무리하는 데 까지 걸린 시간은 1분여다. 마토구매표 작성 시간을 제외한다면 1분도 긴 시간이다. 마토구매표인 OMR 카드를 넣는 순간 바로 마토가 발행된다. 그럼에도 마사회 직원은 복잡한 창구 대신 모바일베팅으로 빠르고 간편하게 마토구매를 즐기라고 권했다.

모바일베팅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앱을 이용해 계좌를 개설한다. 계좌는 마이카드라는 일종의 선불식 계좌와 당일 사용할 수 있는 일일계좌로 나뉜다. 이어 마사회 모바일페이지에 접속한 뒤 우측하단 앱 다운로드를 클릭하고 마이카드앱을 선택해 내려받으면 된다. 마이카드앱을 실행하면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로 로그인하라는 화면이 나오고 이용 동의 및 스마트폰을 등록하면 구매내역 조회, 계좌이체, 마일리지, 계좌정보, 배당률 및 경마정보 조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아울러 마토구매를 원할 경우 하단의 마토구매표 작성을 선택하고, 현재 발매 진행 중인 경주인 경우 상단의 구매하기를 선택하면 된다. 이어서 마토구매표를 작성하고 승식, 마번, 금액을 입력하면 구매내역 확인 창이 뜨고 '즉시구매'를 선택하면 구매가 확정된다. 또한 원하는 구매내역을 카트에 담아 일괄로 구매할 수도 있다.

마사회 직원은 애플리케이션을 기자의 휴대전화에 내려받기가 꺼려진다고 하자 마사회가 준비한 태블릿 PC 사용을 권하며 모바일베팅 이용의 편리성을 강조했다. 특히 모바일베팅은 한 계좌만 개설 가능하냐는 물음에 "아니다. 5~6개 복수로 등록 가능하다. 원하면 태블릿 PC를 더 빌려드리겠다"면서 "현재 행사기간이다. 30만원을 선입금하시면 마일리지도 쌓아드린다"고 말했다. 사실상 10만원 베팅 한도는 의미가 없어 보였다.

실제 십 수대의 무인발매기와 유인 창구 앞에는 마일리지 적립 행사를 알리는 알림글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어 있었다.

드디어 베팅을 마치고 첫 번째 경주가 시작됐다. '탁!' 경주마를 막고 있던 문이 열리고 10마리의 말들이 결승선을 향해 질주했다. 1분 5초 96. 첫 번째 경주 우승 말의 기록이다. 전면에 비치된 스크린에는 경주마의 역주 모습과 배당률 등 경기 관련 정보들이 쉴 사이 없이 쏟아졌다. 보고는 있지만 도통 무슨 내용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대신 1분여의 경기를 보기 위해 오전 내내 씨름한 것이 못내 허탈하고 허무했다. 이후 20여분 간격으로 경기가 계속됐다. 3번째 경기가 끝나고 화상경마장 내 마련된 카페테리아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점심 식사를 제공한 것이다.

용산화상경마장 인근 주민들은 용산화상경마장의 사행성을 우려하며 업장 폐쇄를 주장하고 있다. / 박대웅 기자
용산화상경마장 인근 주민들은 용산화상경마장의 사행성을 우려하며 업장 폐쇄를 주장하고 있다. / 박대웅 기자

메뉴는 양미리무조림, 멸치볶음, 시금치무침, 귤, 파래무침, 메추리알장조림, 오이부추, 무김치와 밥 그리고 시래기국이었다. 음식은 정갈했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용산스크린 경마장은 찾은 이들은 삼삼오오 점심을 먹으며 다음 베팅 관련 정보를 주고 받았다. 또 카페테리아에 마련된 아메리카노와 오렌지 주스, 매실주스, 옥수수수염차 등도 모두 무료로 제공됐다. 베팅 이외에 먹고 마시는 데 들어갈 부대비용은 필요 없었다. 흡연자라면 담배값 정도는 예외다.

오후 경기가 속개됐다. 용산화상경마장에는 오전보다 사람이 더 늘었다. 그만큼 열기도 더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탄식과 환호가 교차됐다. 흡연실 내 쓰레기통과 테이블 앞에는 용도폐기된 마권들이 구겨진 채 수북히 버려졌다. 제 9경기. 앞서 설명한 10번 말의 의외의 선전에 용산화상경마장 내 '불금'의 열기는 더 뜨겁게 타올랐다.

이윽고 오후 6시. 마지막 11번 경주가 마무리됐다. 이날 하루동안 진행된 경기를 복기하는 사람과 손익을 계산하는 손놀림 그리고 탄식과 진한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 등이 가득했다. 마사회 직원들은 분주하게 폐장을 준비했고, 기자 역시 정산을 위해 유인창구를 찾았다.

1만5000원을 투자한 기자가 최종적으로 손에 쥔 돈은 1만3000원이다. 기자는 15경기 중 10경기에서 이겼다. 승률 66.6%다. 웬만한 스포츠에서 최근 15경기 승률(장타율, 득점 성공률, 타율 등 어떤 말로 불러도 좋다)이 66.6%라고 하면 스포츠면 1면을 차지할 만큼 좋은 기록이다. 하지만 경마는 달랐다. 결국 기자는 최초 투자 금액의 13.3%인 2000원을 잃었다. 경마에는 초심자의 행운도 따르지 않는 모양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길게 늘어선 무리들 틈에 끼어 승강기에 올랐다. 콩나물 시루처럼 빼곡한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경마 이야기는 계속됐다. 용산화상경마장은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서울, 부산·경남, 제주에서 진행되는 경마를 중계한다. 기자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른 이들 중 상당수는 토요일도 그리고 일요일도 다시 방문할 것처럼 보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마사회 직원들은 일렬로 도열해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90도로 인사를 건넸다. 백화점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 소속 시민들이 용산화상경마장 폐쇄를 주장하며 3년 넘게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 박대웅 기자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 소속 시민들이 용산화상경마장 폐쇄를 주장하며 3년 넘게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 박대웅 기자

문을 열고 나가자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종일 비가 내리며 겨울 못지 않은 쌀쌀한 기온을 보였음에도 노란 우산을 받쳐 든 십여 명의 사람들은 용산화상경마장 폐쇄를 요구하며 화상경장을 나서는 이들에게 다시 찾지 말 것을 요구했다. 순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들었던 안내방송이 생각났다. "현재 시위대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최대한 마찰을 피해주시고 고객 여러분들이 버리는 담배꽁초 등은 시위대의 증거자료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린다"였다.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 김율옥 수녀는 기자에게 "용산화상경마장은 명백한 도박시설로 마땅히 추방되어야 한다"며 "아이들이 매일 통학하는 이 곳에 마약보다 3배나 높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는 화상경마장이 버젓이 영업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대책위 소속 소음진동피해예방 시민모임 강규수 대표도 "마사회의 용산화상경마장 사업 강행은 주민들의 교육환경과 주거환경을 짓밟는 행위"라면서 "반경 500m 이내에 6개의 유치원과 초·중·고교가 위치해 있고, 성심여고의 경우 용산화상경마장과 불과 215m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지 15m 밖에 있다는 이유로 유해시설이 아니라고 영업을 강행하는 것은 책임있는 공기업으로서 마사회의 대처가 아니다"라면서 "마사회는 경마도박이 레저라고 기만하지만 경마는 엄연한 도박"이라고 마사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날 대책위의 집회는 30여분간 이어졌으며 이렇다할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bd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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