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유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7일 팬택 인수의향서(LOI)를 접수한 3곳의 업체가 자격이 적절치 않거나 인수의향서가 유효하지 않아 후속 입찰절차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더팩트DB |
“첨단과학기술 중심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산업 전반에 접목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겠다.”
바야흐로 창조경제의 시대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벤처 기업을 육성한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이 같은 방침 아래 창조경제타운 등을 통해 창조적인 아이디어(기술)와 창업(벤처)을 육성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표적인 ‘벤처 기술 기업’ 팬택은 청산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7일 팬택 인수의향서(LOI)를 접수한 3곳의 업체가 자격이 적절치 않거나 인수의향서가 유효하지 않아 후속 입찰절차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20일 밝혔다. 팬택의 세 번째 매각이 결국 유찰된 것이다. 팬택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중이다. 매각이 성사되지 않았으니 청산이 유력하다. 결국 ‘벤처신화’는 신기루에 그치고 말 것인가.
팬택은 24년간 국내 휴대전화 업계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창업주인 박병엽 전 회장은 1991년 자신이 다니던 맥슨전자를 나와 직원 4명과 함께 창업에 뛰어들었다. 직원 다섯 명으로 시작한 무선호출기 회사 팬택은 SK텔레텍과 현대큐리텔을 인수한 후 CDMA 휴대전화로 영역을 확장하며 ‘벤처 성공신화’를 이뤘다. 팬택은 국내 3대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거듭난 후 2위를 위협하기도 했다.
이후 팬택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글로벌 기업이 약진하는 상황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펼쳐왔다. 하지만 대기업 위주의 시장에서 팬택이 설 곳은 마땅치 않았다. 결국 2011년 12월 워크아웃에서 벗어난 지 3년 반 만에 청산 체제에 들어서게 됐다.
팬택은 이마트 수서점에 팬택 서비스센터를 오픈하는 등 법정관리 기간에도 서비스 제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팬택 제공 |
상암동에 우뚝 솟은 사옥에서 마지막까지 활기찬 걸음을 내딛던 1400명의 사원들은 이제 갈 곳을 잃었다. 맨땅에서 시작해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한 우량 기업, 자부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기에 팬택의 청산은 아쉽다.
비록 실패한 마케팅과 시장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한계, 글로벌화에 대처하지 못한 잘못은 있지만, 팬택은 마지막까지 ‘진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법정관리 기간에도 대형마트에 서비스센터를 열었으며, 팬택 임직원들은 월급을 자진해서 반납했다. 고용승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팀장급 이상 임직원들은 사표를 내기도 했다. 현대카드와 손잡고 ‘브루클린 프로젝트’를 진행해 7~8월까지 회사가 살아 있는 한 신제품을 공개할 계획도 있다. 마지막 제품이 될 수도 있는 ‘베가 시크릿 노트2’는 최근 블로그를 통해 일부 공개됐다.
법원은 향후 팬택 매각은 관리인과 채권자 협의회 협의를 거쳐 결정하겠다며 4차 공개 매각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팬택의 4차 공개 매각은 사실상 성공 가능성이 낮다. 국내 창업 세계에서 성공해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팬택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이제는 ‘창조경제’를 앞세운 정부가 나설 때다. 팬택은 기술개발 인프라와 5000개의 특허를 보유한 기업이다. 최초 신화를 만든 팬택이 어차피 청산 절차에 들어간다면, 정부가 나서 사업자를 찾아주는 것은 어떨까. 벤처신화 팬택의 기술력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정부가 인수기업에 혜택을 제공할 수도 있다. 창업 신화를 다시 살려 내는 것 역시 창업 신화를 새로 쓰는 것 못지않은 ‘창조경제’일 수 있다.
팬택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청산이 유력한 상황임에도 ‘스카이’와 ‘베가’ 시리즈로 썼던 벤처 성공신화의 부활을 위해 ‘단언컨대’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국내 3위 휴대전화 제조사의 위기가 창조적으로 해결되길 바라본다.
[더팩트│황원영 기자 hmax875@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