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20일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장애인의 날'이다. 최근 대기업들은 직업생활을 통한 장애인의 생존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기본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장애인 채용에 앞장서고 있지만,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는 얼마나 높아졌을까? 2013년 '장애인의 날'부터 대기업의 장애인 전용 주차장 운영 현황을 취재해 온 <더팩트>가 35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10대 그룹 본사의 장애인 편의시설 운영 실태를 샅샅이 살펴봤다. <편집자 주>
롯데 평점 가장 낮고 이어 SK·현대차, 한진 순
정부의 지침에 따라 대기업들이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고 하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인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안전하고 편리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은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더팩트>가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서울에 위치한 10대 그룹 본사의 장애인 편의시설 현황을 직접 확인했다. 조사한 항목은 모두 9개로 서울시 의뢰로 건국대학교에서 수행한 학술용역 ‘2012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개정’을 따랐다.
그 결과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롯데, SK·현대차, 한진 순으로 평점이 낮았다.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조호근 사단법인 장애인고용안정협회 대외협력팀장은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장애인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건물을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편의성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10대 그룹 장애인 편의시설 평가 방법은 다음과 같다. 9개 항목 별로 10대 그룹 본사 정문에서 직접 살펴 해당사항에 O(우수, 1점), △(미흡, 0.5점), X(불량, 0점) 별로 단순계량해 점수(만점 9점)를 매겼다.
구체적인 평가항목은 1. 대지 내 보도 및 접근로(지체·시각장애인들이 보도에서 본사 로비로 이동할 때 문턱이 존재하는지 여부), 2. 장애인 전용 주차장(그룹별 장애인 전용 주차장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여부), 3. 장애인 출입구(휠체어를 이용해 본사 정문을 쉽게 이동할 수 있는지 여부), 4. 휠체어 이동 경사로(휠체어 이동 시 경사로가 너무 가파르거나 좁지 않은지 여부) 등이다.
또 5. 장애인 전용 승강기(휠체어 이동 시 전용 승강기 가로폭과 버튼 높이가 편리한지 여부), 6. 휠체어리프트(로비 계단에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됐는지 여부), 7. 장애인 전용 화장실(기준에 부합한 전용 화장실이 있는지 여부), 8. 손잡이(본사 로비 계단과 복도에 시각장애인용 손잡이가 있는지 여부), 9. 시각장애인 보도블록(정문, 계단, 승강기 등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록이 있는지 여부) 등을 세세하게 조사했다.
한진그룹 본사 정문은 우측에 장애인 전용 주차장과 장애인 전용 경사로를 배치했다. /서재근 기자 |
◆ 한진, 본사 승강기 절반 장애인 배려 (5점)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진빌딩은 연면적이 30,620m²로 1969년에 준공됐다. 한진그룹은 이번 장애인 편의시설 평가에서 평균 이상인 5점을 받았다. 눈에 띄는 점은 장애인 전용 승강기와 주차장 그리고 화장실이 제대로 마련돼 있었다는 것이다. 승강기의 경우 네 대 가운데 절반을 장애인에게 할애하고 있었다. 일반 버튼 밑에 전용 버튼을 마련해 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버튼도 갖췄다.
장애인 주차장은 일반인 차량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관리되고 있었다. 전용 화장실 역시 조사 기준인 가로, 세로 폭 1.6m, 2m에 맞춰 있었다. 다만 로비(1층)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안내원이 없어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보였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장애인 방문객이 올 경우 직원이 직접 내려가서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이 한진그룹 본사에 들어서면 정문 좌측에 마련된 전용 출입구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정문은 계단을 타고 올라야 하기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쉽게 이동하기 힘들다.
장애인 출입구에는 휠체어 전용 경사로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출입문이 미닫이여서 몸이 불편한 사람은 혼자 들어서기 어렵다. 손잡이도 높게 설치돼 장애인 전용 출입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럭도 설치되지 않았다. 건물 내부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시각장애인들의 안전한 이동을 위한 점자블록도 갖추지 못했다.
SK그룹 본사는 휠체어를 이용해 출입문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애인 편의시설 마련이 미흡했다. /황진희 기자 |
◆ SK, 휠체어 이동 시 진입부터 어려워 (3.5점)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위치한 SK그룹 본사(1999년 준공)는 지하 7층에 지상 35층 규모로 SK홀딩스와 계열사가 입주해 있다. SK그룹 본사는 장애인 직원들을 위한 편의시설 마련에 뒤처져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직원이 이곳으로 출퇴근할 경우 정문 통과부터 힘겨워 보일 정도다.
정문은 보도와 똑같은 높이로 지어져 일단 접근로에서는 합격점을 맞았다. 하지만 출입구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일반 출입문과 회전문 가운데 하나의 회전문만 작동돼 휠체어를 타고 1층 로비로 들어갈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로비에는 시각장애인을 배려한 보도블럭도 마련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출입문이나 승강기, 화장실 등을 가늠할 수 있는 보도블럭이 마련돼야 하지만, 이곳에는 대리석만 깔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복도 벽면에 부착되어 있어야 할 손잡이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SK그룹 본사는 장애인 전용 승강기가 마련돼 있었지만, 여러 기준을 충족시키기엔 아쉬웠다. 장애인 전용 승강기가 일반 승강기와 폭이 동일하고, 이를 이용하기 위해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도 전용 승강기 대신 일반 승강기만 도착했다.
반면 장애인 전용 주차장은 양호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지난 2013년 <더팩트>가 4대 그룹의 장애인 전용 주차장을 취재할 당시만 하더라도 기대이하로 운영되던 SK그룹의 장애인 전용 주차장은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달라져 정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장애인이 아닌 일반인이 장애인 전용 주차장을 이용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SK그룹 관계자는 "그룹 시설 및 관리 업무는 SK이노베이션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장애인 편의 시설과 관련해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불편함이 없도록 내부적으로도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정문 입구는 평지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접근하기 수월했지만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과 장애인 전용 출입구가 없다. 장애인 전용 화장실은 규격에 맞게 관리되고 있지만 승강기는 장애인 전용 버튼이 없다. /서재근 기자 |
◆ 현대차, 장애인 주차장 점령한 그들은 누구? (3.5점)
지난 1997년에 준공된 양재동 현대자동차(현대차) 본사는 연면적149,246 m²로 9개 기준 가운데 5개 항목이 미달됐다. 정문은 턱이 없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폭 1.2m를 충족하는 장애인 전용 출입구는 만들어 놓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럭과 안내 점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대차 본사는 서관과 동관으로 나뉘어 있다. 실망스러운 점은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동관에만 있다는 것이다. 이를 알리는 안내판도 없어 혼선을 빚을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용 화장실이 규격에 맞게 설치됐다는 것이다.
이곳은 휠체어 리프트는 고사하고 장애인 전용 승강기도 설치해 놓지 않았다. 버튼이 높은 위치에 부착된 탓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를 조작하기란 쉽지 않아보였다. 미려한 외형과 달리 승강기에는 시각장애인을 배려한 점자버튼도 없었다.
지하 1층에 있는 장애인 전용 주차장에는 이곳을 방문하는 영업용 차량들이 사용하고 있어 주차장 관리가 허술하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현대차는 별도의 주차타워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 승강기에는 본사에는 없는 장애인 전용 버튼이 있었다. 점자 안내판 역시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장애인 전용 주차장이 없어 장애인 승강기의 존재가 무색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주차타워는 비장애인이 이용하는데 목적이 있다. 장애인은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외부로 나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며 "앞으로 장애인 편의시설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건물에 입주한 롯데그룹 본사는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나 화장실, 휠체어 리프트, 전용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황진희 기자 |
◆ 롯데, 장애인 편의시설 ‘최악’…건물 임대 탓? (2점)
재계 5위이자 ‘유통공룡’인 롯데는 <더팩트> 현장 취재 결과 10대 기업 가운데 장애인 편의시설이 가장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더팩트>가 서울시의 장애인 편의시설 매뉴얼을 토대로 마련한 9개의 문항 가운데 롯데그룹 본사에 적용되는 기준은 단 두 가지에 불과했다.
롯데그룹 본사는 1979년 서울 중구 소공동에 지어진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본점) 뒤편에 마련된 건물에 입주해 있다. 롯데그룹 본사는 모두 26개 층인 이 건물에서 20층 일부와 24~26층을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콘트롤 타워인 정책본부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 준공 이전까지 롯데백화점 건물 일부를 임대해 사용한다.
롯데그룹 본사 건물을 방문해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은 ‘대지 내 보도 및 접근로’ 기준이다. 롯데그룹 본사 정문은 보도와 곧바로 연결돼 있어, 휠체어를 이용해 방문하더라도 별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힘껏 밀어야 하는 본사 정문의 폭은 1m를 넘지 못했고, 그나마도 한 개의 출입문을 통과해도 곧바로 또 다른 출입문이 있어 로비 진입이 어려울 정도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로비 진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곧바로 다음 관문이 남아있었다. 로비의 네 대 승강기 가운데 장애인 전용 승강기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승강기에 탑승하더라도 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기 버튼이 없었을 뿐더러, 일반 버튼 역시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누르기엔 턱없이 높은 위치에 달려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이 일반 승강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건물 내에서 이동할 수 있는 시설은 전무했다. 일반 승강기 바로 옆에는 가파른 비상계단이 있었고, 휠체어리프트나 점자가 달린 손잡이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다.
로비에 없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롯데그룹 본사 1층에는 장애인 전용 화장실을 비롯해 일반 화장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승강기를 이용해 기자실이 마련된 21층으로 이동해 화장실을 확인했지만, 그 곳에서도 장애인 전용 화장실은 없었다.
그렇다면 최근 대기업들이 마련하고 있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은 있을까. <더팩트>가 지하 2층 주차구역을 찾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은 찾을 수 없었다. 다른 기업이라면 대부분 지하층 통로 바로 옆에 장애인의 이동을 배려한 전용 주차구역을 마련하지만, 롯데그룹 주차장은 화물차 하역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롯데그룹은 보도 접근로와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럭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장애인 편의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었다. 이는 최근 롯데그룹이 장애인 등 스펙과 무관한 채용을 진행한다고 밝힌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그룹 본사 건물은 롯데백화점에 입주해 있기 때문에 장애인 편의시설 마련에 대해서는 롯데백화점에 문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장애인 전용 주차장의 경우 고객들을 위해 마련된 것은 있지만, 직원들을 위해 마련된 것은 없다”면서 “롯데그룹이 롯데백화점 건물 일부를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롯데그룹 직원들을 위한 장애인 편의시설은 없을 수밖에 없다. 장애인 고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은 백화점 안에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더팩트 | 특별취재팀=최승진·황진희·임준형·서재근·황원영·변동진·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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