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5억 원 이상 등기임원 보수 공개 지난달 31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들은 일제히 연봉 5억 원 이상 등기임원들 연봉을 공개했다. / 더팩트 DB |
대기업 등기임원 최고 연봉, 직원 평균 연봉 최대 '142배'
만우절인 1일자 신문들은 온통 대기업 임원들의 연봉으로 도배됐다. 지난달 31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들마다 일제히 연봉 5억 원 이상 등기임원들의 연봉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신문에 보도된 날짜가 만우절과 겹쳐서 그런지 공개된 액수가 거짓말처럼 느껴진다는 말들도 나왔다.
재벌 총수와 전문 경영인(CEO)들의 연봉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다. 그 베일이 벗겨지는 만큼 세간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막상 액수가 공개되니 그 '숫자'의 차이는 애초 예상했던 격차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시가총액 상위 30대 기업 소속 CEO의 최고 연봉과 일반 직원 평균 연봉의 최고 차이는 무려 '142배'를 넘어섰다.
재계 서열 1위 삼성전자의 신종균 IT모바일 부문 대표이사는 지난해 모두 145억 70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삼성전자의 경영방침에 따라 2013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 달성에 대한 보상이 반영됐다하더라도 일반 직원 1인 평균 연봉 1억200만 원보다 무려 142.8배가 많은 액수는 낯설게 느껴진다. 물론 일반 직원의 평균 연봉이 억대라는 사실도 놀랍다.
연봉 격차가 두 번째로 큰 현대제철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제철로부터 모두 115억 6000만 원을 받아 직원 1인 평균 연봉 8700만 원과 무려 132.8배의 격차를 벌렸다.
재계 서열 1위 삼성전자의 신종균 IT모바일 부문 대표이사는 지난해 모두 145억7000만 원의 연봉을 받았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제철로부터 모두 115억6000만 원을 받았다. / 자료 출처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물론 기업 내 역할과 비중을 고려한다면 이들이 일반 직장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액수의 보수를 받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경기 불황과 전셋값 폭등에 '내 집 마련'이라는 근본적인 의식주 해결조차 힘겨워지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요즘에 수백억 원에 달하는 고액 연봉 소식이 반갑게 들리지만은 않을 듯싶다.
더욱이 등기임원 공개 실태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본래의 취지가 '경영투명성 제고'가 아닌 '위화감 조성'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연봉 5억 원 이상 등기임원들의 연봉 공개는 애초 금융감독원이 기업들의 경영투명성을 높이겠다며 지난해부터 시행한 제도다.
그러나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국내 239개 주요 그룹사 가운데 15.5%, 37개 그룹 오너 일가는 보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이 연봉 공개가 의무화된 2013년 11월 이후 개인사정 등을 이유로 등기임원직에서 사임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연봉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면 등기임원직에서 내려오면 그만인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 수백억 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논란이 불거진 기업 전·현직 총수들이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았다. '100억 원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사정 당국의 수사 타깃에 오른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지난해 포스코로부터 모두 39억9600만 원의 연봉을 받았고, 비자금을 조성해 국외 원정 도박 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역시 회사로부터 14억25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물론 연봉을 공개한 수많은 등기임원 중에는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성실하게 일해 그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노고까지 비하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기업의 수장이라는 위치, 총수라는 지위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등기임원' 명단에 이름 석 자만 올라 있으면 일반 샐러리맨들이 평생을 모아야 모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규모의 연봉을 챙기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으니, 어찌 월급쟁이들이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본래의 취지는 실종된 채 씁쓸한 기분만 남긴 등기임원 연봉공개제도라면 더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등기임원 명단에 없다 하더라도 실제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으면 보수를 공개하고, 경제범죄 등 범법행위를 한 사람에 한해서는 연봉 수령의 타당성 여부를 따져 물을 수 있는 그런 식의 제도 수립이 필요하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likehyo85@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