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이 은행연회장에 내정됐지만 금융권에서는 '밀실 인사'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더팩트DB |
[더팩트ㅣ박지혜 기자]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이 은행연합회장에 내정된 것으로 전해지자 은행권안팎에서 '낙하산 인사' '밀실인사' '보은인사'라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은행연합회장 후보를 추천하는 은행연합회 이사회 일부 인사들조차 하 전 행장의 은행연합회장 내정 소식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외부압력에 불편해하는 모습들이다.
금융계 노조들은 "금융 당국이 은행연합회 이사회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고 성토하면서 "은행권이 자율적으로 회장을 선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 전 행장이 은행연합회이사회 의결등 일련의 절차도 없이 은행연합회장으로 낙점된 것으로 알려지자 금융권 노조를 중심으로 금융당국의 일방적 조치에 대한 반감이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성명서를 내고 차기 은행연합회장의 투명한 선출 절차를 요구했다. 금융노조는 "아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는데 특정 인사가 은행연합회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있다"며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 인선으로 차기 회장 임기 시작 전부터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KB금융이 낙하산 인사의 내홍으로 혼란을 겪은 일이 불과 한두 달 전"이라며 "금융 당국이 KB국민지주 회장 선출에서 낙마한 하영구 씨에게 사실상 보은성 인사를 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금융노조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부끄럼없이 반복하는 금융 당국(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은행연합회지부는 "금융 당국이 하영구 씨에게 보은성 인사를 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
금융소비자원도 "금융 당국이 관피아 문제로 관료출신 내정이 불가능 하다고 판단, 이제 관변의 인물로 뽑을려구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금소원은 "아직도 금융을 관피아의'먹잇감' 정도로 생각하는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면서 "이사회의 선출논의가 없는 가운데 내정 사실을 알리는 상식 이하의 처리를 즉각 중단하고 은행업계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연합회 노조도 "구시대적인 밀실 회장 인사를 당장 중단하라"며 반대투쟁 모드에 돌입했다. 은행연합회 노조는 "회장 선임을 위한 이사회와 총회도 개최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특정인물이 회장으로 내정됐다는 보도들이 나올 수 있는지 황당하다"며 "이는 정부의 꼭두각시를 내려 보내려는 관치금융의 결정판"이라고 꼬집었다.
은행연합회는 신한·국민·하나·우리·씨티·스탠다드차타드·산업·농협·전북은행 등 10개 은행장, 은행연합회 회장과 부회장 등 12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후보를 추천하고 추천된 후보에 대해 총회 의결을 받는 절차를 거친다. 별도 회장후보추천위원회 없이 이사회에서 후보를 추천하고 정한다.
그러나 정작 하 전 행장을 내정했다는 시중은행장들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회장을 선출하기 위한 이사회 역시 오는 24일 열리지만, 이사회가 열리기도 전에 내부 의견수렴절차도 없이 회장 내정자가 불쑥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하 전 행장의 내정이 금융 당국과 청와대의 밀실 인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KB금융회장 후보에서 떨어진 하 전 행장을 금융권과 정치권이 배려했다는 것이다.
실제 하 전 행장은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2007년 1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씨티은행 부행장을 지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당시 하 전 행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바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과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10월 국민은행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하 전 행장이 KB금융 회장으로 나선 배경으로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다양한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하 전 행장은 KB국민은행의 '내부 인사 중용' 원칙에 의해 KB금융 회장에서 탈락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시중은행들의 임금협상 등의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은행연합회장에 바로 내정됐다. 은행연합회장은 22개 금융기관을 대표하는 명예직으로 연봉도 금융관련협회들 가운데서도 가장 높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오는 24일 열리는 은행연합회 이사회에서 하 전 행장이 회장으로 선출된다면 이번 논란에 대해 반드시 해명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하 전 행장은 금융권에 몸 담은지가 15년이 다 돼가는 인물"이라며 "능력면에서는 인정을 받지만 항상 정치권과 결탁됐다는 무성한 소문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은행연합회장에 내정된 것이 정당한 인선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직접 해명해야한다" 고 지적했다.
또다른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연합회장은 사실상 금융 당국과 정치권에 임명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그동안 이사회의 역할 및 기능은 존중돼왔지만 이번 일은 이사회가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꼬집었다.